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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라는 단어에는 이미 익숙해졌지만, 정확한 정의와 가능성에 대해 말하기란 쉽지 않다. 메타버스 시대의 초입에 서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오히려 다행일 수 있다. 메타버스 플랫폼이 단순한 기술을 넘어, 인류 삶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앞당긴 ‘메타버스’ 세상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실제 현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전기차 업체 테슬라와 미국의 민간 우주 개발기업 스페이스X의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는 2016년 한 행사에서 “미래 인류가 가상세계 아닌 진짜 현실에서 살 확률은 10억 분의 1에 불과하다. 매해 발전하고 있는 기술은 인류를 VR(가상현실)과 AR(증강현실)의 세계로 데려다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2016년, 일론 머스크가 이 얘기를 꺼낼 때만 해도 사람들은 그가 ‘미쳤다’라고 이야기했지만, 2020년 이후 우리는 ‘메타버스’라는 말을 당연한 듯 사용하게 됐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절대적인 영향 덕분이다. 바이러스가 오프라인의 일상을 차단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경제활동을 해야 했고 집 안에서도 놀 거리를 찾아 헤맸다. 정답은 가상세계였다. 가상세계에 출근하고, 모두 함께 게임을 즐겼다. 이 같은 행위를 통칭해 ‘메타버스’라고 부르지 않았을 때에도 우리는 이미 메타버스를 경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메타버스란 무엇일까? 메타버스는 가상세계다. 메타(Meta)는 ‘무엇인가를 초월했다’는 의미다. 버스(Verse)는 우주와 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에서 따왔다. 즉 ‘유니버스를 초월했다’→‘현실을 초월했다’ → ‘현실을 초월한 것은 가상세계’라는 순으로 뜻이 확장된다. 그리고 2022년 현재, 사람들은 창의성을 발휘해 만든 자신만의 아바타로 소통하고 게임과 엔터테인먼트를 즐기며 가상공간에서 회의를 하는 것 등을 ‘메타버스’라 총칭하고 있다.

생활 전 분야로 들어온 가상세계

대표적인 메타버스 플랫폼은 미국의 게임 로블록스(Roblox)와 네이버제트의 제페토(ZEPETO)다. 로블록스에서는 레고 모양의 아바타를 만든 후 수천만 개에 달하는 게임방 어디에나 접속해서 즐길 수 있다. 실제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게임>이 대성공을 거두고 난 뒤 전 세계 사람들이 로블록스에 모여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을 즐기기도 했다. 제페토에서는 나를 닮은 아바타로 친구들과 만나서 대화를 하고, 좋아하는 아이돌의 팬사인회에서 사인을 받을 수 있다.

즉, VR이나 AR 기기나 플랫폼을 활용하는 것 자체가 메타버스 경험이다. 예를 들어 VR 기기를 쓴 사람들이 빌딩 숲 사이의 허공에 놓인 다리를 건넌다. 발을 잘못 디뎌서 허공에서 낙하하면 “으악” 하는 단발마의 외침이 절로 나온다. 메타(페이스북)의 오큘러스 퀘스트(Oculus Quest)2 등 VR 기기를 쓰면 눈앞의 진짜 현실은 차단되고, 빌딩 사이의 허공 위에 놓인 사다리를 걷는 나만 남아있기 때문이다. VR 기기를 쓰고 차단된 세계에 들어가 그 안에서 경험하는 모든 순간이 메타버스다.

메타버스의 시대에는 출근도 가상세계로 한다. 부동산 중개 유니콘 기업 직방은 2021년 초 비대면 업무 플랫폼인 ‘게더타운(Gather.town)’ 플랫폼을 이용해 전직원에 대한 원격근무를 시작했다. 게더타운에서는 2D로 된 아바타 캐릭터로 실제 사무실과 유사하게 꾸며진 사무실 자리에 착석해 일을 한다. 다른 캐릭터에 가까이 가면 실제현실의 내 얼굴이 카메라에 비치며 대화창이 열린다. 이처럼 물리적인 공간에 있는 회사로 출근하지 않고도 가상세계에 출근하는 모습이 메타버스다.

더 직관적으로 이해해 보자. 요새 초등학생들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메타버스 공간은 다름아닌 바로 카카오톡 프로필 배경화면이다. 배경화면에 나의 성격을 드러내는 MBTI 결과를 넣고, 내가 좋아하는 사진을 업로드하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설정한다. 2000년대 초 싸이월드에서 미니홈피 스킨을 꾸미고, 미니룸을 채우고, BGM을 넣는 것에서 달라지지 않았다. 나만의 가상의 공간에 나를 꾸며두는 일, 그것 자체가 메타버스다.

인류의 기술적 성취의 총합

이렇듯 메타버스는 이미 허상이 아닌 실재가 되었다. 1992년 SF소설 『스노우크래시(Snow Crash』를 통해 처음으로 메타버스라는 단어가 알려진 이후 수많은 자본과 인력과 에너지가 응축돼왔다. 이 응축된 결과물이 바로 메타버스다. 메타버스라는 단어를 다른 말로 하면 인류가 만들어 온 모든 ‘기술적인 성취의 총합’이다.

매일 전 세계 4,800만 명이 로블록스 게임에 접속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정보기술(IT) 인프라가 필요하다. 가상세계에서 수천만의 사람들이 동시에 상호 소통할 때 끊김이 있어서는 안되고, 데이터 센터의 클라우드에 문제가 있어서는 안된다. 결제와 환전 등 가상경제 체제가 해킹으로부터 안전하게 작동할 수도 있어야 한다. 클라우드, 5세대 이동통신, 보안 등 수많은 기술적인 진보 위에 이룩할 수 있는 게 바로 메타버스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메타버스가 허상이라고 하기 어려워진다. 따라서 기술이 발전할수록 메타버스의 미래는 가까워진다. 전 세계를 기반으로 사업을 펼치는 빅테크 기업들이 이 사업에 진심인 이유다.

가장 눈에 띄는 회사는 ‘메타(Meta)’다. 전 세계 35억 명의 유저를 보유한 페이스북은 회사 이름을 메타로 바꾸고, 지난해만 12조 원의 손실을 내면서도 사업을 키우고 있다. 메타는 메타버스 시대의 한 축으로 분류되는 VR 시장을 손에 쥐고 있다. 메타의 VR 기기인 ‘오큘러스 퀘스트2’는 2020년 4분기에 출시된 이후 지난해 1분기에는 전 세계 메타버스 기기 출하량의 75%를 차지하며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다. 지난해 말까지 출시 1년 만에 1천만 대가 팔렸다.

1천만 대라는 매직 넘버는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띤다. 메타에서 메타버스 총괄을 맡고 있는 임원인 비샬 샤는 지난해 말 회사 이름을 메타로 바꾸면서 “1천만 대 이상의 가상현실 헤드셋이 보급되기 시작하면 메타버스의 급격한 성장 시대가 도래할 것” 이라고 내다봤다. 매직 넘버가 1천만 대라는 것인데, 그 이상 숫자가 되면 콘텐츠와 가격 측면에서 규모의 경제가 생길 것이라는 이야기다. 스마트폰 이후의 시대를 메타버스가 주도하기 위해서는 결국, 새로운 기기가 일상에 파고들어야 한다. 그 역할을 메타의 VR 기기가 시작할 것이라고 관측한다.

MS가 82조 원 들여 블리자드(Blizzard)를 인수한 것도 메타버스 사업의 일환이다. MS는 블리자드 인수를 발표하면서 “게임은 가장 역동적이면서 흥미로운 플랫폼일 뿐 아니라 메타버스 플랫폼 개발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라고 밝혔다. 게임회사와 메타버스는 어떤 관계일까. 메타버스의 본질은 ‘게임’이다. 이용자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어야 사업을 지속할 수 있다. 수많은 소비자가 특정 엔터테인먼트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실제로 재미있어야 한다. 가상세계로 사람들을 이끄는 답이 곧 ‘재미’라는 의미다.

메타버스는 클라우드, 5세대 이동통신, 보안 등 수많은 기술적인 진보 위에 이룩됐다.
말 그대로 인류가 만들어 온 모든 ‘기술적인 성취의 총합’이다. 따라서 기술이 발전할수록 메타버스의 미래는 가까워진다. 전 세계를 기반으로 사업을 펼치는 빅테크 기업들이 이 사업에 진심인 이유다.

메타버스의 궁극적인 목표는 제페토, 로블록스, 포트나이트Fortnite 등 이용 가능한 모든 플랫폼을 연결하는 것이다. 각각의 플랫폼들은 떨어져 있는 ‘멀티버스(Multiverse, 다중 우주)’다.
각각의 멀티버스들을 연결하는 범용 플랫폼 공간이자 통합된 공간이 바로 메타버스다.

궁극적인 지향점은 멀티버스

메타버스의 궁극적인 목표는 제페토, 로블록스, 포트나이트(Fortnite) 등 이용 가능한 모든 플랫폼을 연결하는 것이다. 각각의 플랫폼들은 떨어져 있는 ‘멀티버스(Multiverse, 다중우주)’다. 각각의 멀티버스들을 연결하는 범용 플랫폼 공간이자 통합된 공간이 바로 메타버스다. 흩어져 있는 멀티버스의 세계를 하나의 줄기로 연결시키면 누구나 이용가능한 메타버스 공간이 열린다. 통합된 생태계를 유지시키는 경제 체계는 암호화폐 즉 코인으로 작동된다.

이 코인은 블록체인 기술로 만들어지고, 메타버스 공간들을 연결시키는 방식도 블록체인 기술로 이뤄질 것이다.메타의 암호화폐 ‘디엠(Diem)’과 같이, 세계 유저들이 쓸 수 있는 몇 가지 암호화폐가 가상화폐로 자리 잡았다고 가정해 보자. 엔씨소프트(NCSOFT)의 ‘리니지W’ 게임 속의 아이템인 ‘집행검’을 디엠으로 구매한다. 남은 디엠으로는 대형 마트 앱에서 장보기 탭을 눌러 저녁 반찬거리를 구매한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디엠 잔액으로는 편의점에서 우유를 하나 더 살 수도 있다. 이처럼 오프라인과 온라인이 모두 통합된 하나의 세계가 바로 메타버스의 궁극적인 지향점이다.

지금의 현실을 외면한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과거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스마트폰을 외면한다고 해서 피처폰의 시대로 복귀할 수는 없다. 애플과 구글, 메타, MS 등 빅테크 기업이 싫다고 해서 우리가 그들의 플랫폼을 이용하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다. 이미 새로운 시대가 왔고, 기술 진보의 물결대로 삶은 흘러간다. 새로운 세상의 초입에 와 있다.

메타버스가 글로벌 이슈가 된 이래, 수많은 사람들은 장및빛 미래를 전망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간과할 수 없다. 먼저 우리 정부의 정책과 관련한 부분이다. 이에 지난 3월 3일, 온라인으로 열린 제12차 콘텐츠미래융합포럼에서 현 정부의 메타버스 정책 방향 수정 및 차기 정부의 메타버스 정책 구체화 필요성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포럼 의장을 맡은 한국게임학회 회장인 위정현 중앙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메타버스 신산업 선도전략 정책과 관련해, Δ모호한 사업 체계 Δ기존 실감 콘텐츠(AR·VR) 사업의 명칭 변경 수준 Δ타 부처 사업과 중복 Δ실현이 어려운 사업 목표 제시를 문제점으로 짚었다. 우윤택 카이스트 교수 역시 “많은 IT 기업들이 일상과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는 가상세계인 메타버스 3.0을 향해 가는데 현재 정부의 계획은 2세대 메타버스에 맞춰 준비하고 있다”라며 우려를 표했다. 메타버스 법 제도에 대해 발표한 이승민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게임형 메타버스와 비게임형 메타버스를 분리해서 바라볼 것을 제시하면서도 국내 게임 규제 정책을 글로벌 표준에 맞게 완화할 것을 제시했다.

이외에도 전문가들은 메타버스와 관련한 다양한 법 문제를 짚고 있다. 첫째, 메타버스의 정체성 문제와 경제 시스템에 관한 부분이다. 메타버스를 게임으로 규정할 경우, 코인과 NFT 등의 경제 시스템을 현금화할 수 없다. 하지만 게임물관리위원회에서는 로블록스와 같은 C2E(Create to Earn) 방식은 허용하고 있다. 다만 게임을 만든 대가로 보상을 받는 것은 가능하지만 게임 콘텐츠를 소비하며 얻은 재화를 환전하면 불법이 된다. 둘째, 현실의 다양한 문제들이 메타버스로 옮겨오고 있다는 점이다. 디지털 소외 계층을 더욱 고립시킬 우려가 있고, 아바타를 통한 외모지상주의의 재생산 문제다. 셋째, 기술과 윤리 부분이다. 이전까지 수집되지 않았던 정보들이 수집되고, AI를 인격체로 대할 수 있는가에 관한 논의도 필요하다. 저작권료 정산 기준, AI가 만든 창작물의 권리 등에 대한 규정 마련도 필요하다.

출처: “메타버스 너무 좋아”…하지만 그들이 말하지 않는 4가지(중앙일보 2022년 3월 7일자) 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