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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가 세계적인 대세로 자리매김하면서 두 번째 키워드인 ‘사회적 가치(Social Value)’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정부와 공공기관, 민간기업 등은 특히 단순한 사회공헌에서 탈피해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높일 수 있는 방안 마련에 한창이다. 이에 2021년 현재, 사회적 가치와 관련해 국내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인물인 사회적가치연구원(CSES) 나석권 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보이지 않는 가치를 화페화하기 위한 도전

2018년 4월 출범한 사회적가치연구원(Center for Social value Enhancement Studies, CSES)은 SK그룹 계열사들의 사회공헌기금으로 운영되는 조직으로, SK그룹 최태원 회장이 이사장을 맡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가치연구원은 ‘SK’를 표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실질적인 운영 또한 기획재정부 국장, 뉴욕 재경관 등을 거친 나석권 원장이 도맡고 있다. 무엇보다 나석권 원장을 필두로 한 30여 명의 연구원들은 돈을 벌기는커녕 인센티브로 배분하기에 바쁘다. 나석권 원장은 바로 이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방식’을 연구하는 것이 사회적가치연구원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저희 연구원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가치를 측정해서 화폐화시키는 연구를 합니다. 사회적 가치가 중요하다는 건 다들 알고 있는데 왜 실질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는 속도는 느릴까요? 각자의 삶이 바쁘고 구체적인 이윤과 직결된 다른 문제들이 먼저 보이기 때문입니다. 기업의 경우도 마찬가지죠. 새로운 기술과 제품, 서비스를 통한 경제적 이익은 명확하게 보이니 몰두하게 됩니다. 반면 선한 행동을 통해 향상된 기업 이미지는 화폐로 쉽게 환산되지 않습니다. 바로 이런 부분들을 측정하고 화폐화시켜서, 경제적 이익과 사회적 이익을 동시에 추구하는 기업의 수를 늘리는 것이 저희 연구원의 목표입니다.”

사회적 가치를 화폐로 환산하는 것이 가능하냐는 질문에 나석권 원장은 기다렸다는 듯 “비재무 영역을 측정하기 위한 체계를 만들어 고도화 중”이라고 답했다. 2018년 비재무 보고서나 공시 조직의 측정 체계는 물론 국내외 학계, 컨설팅업체들의 연구 결과 등에 기반해, 국내 최초로 사회적 가치의 화폐화 측정 기반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기반일 뿐, 사회적 가치 확대를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화폐화하려면 거쳐야 할 과정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비재무적 가치의 값을 이론적으로 정한 논문들을 찾고, 논문이 없을 경우 제조 원가를 확인하거나 이마저 불가능하면 고객 서베이 등을 통해 지불의사(Willingness To Pay)을 조사해야 한다. 그제서야 연구원을 소개하며 나석권 원장이 농담처럼 던진 “저희 연구원의 모토는 ‘지금까지 이런 연구원은 없었다’입니다”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사회적 기업의 선순환 생태계를 돕는 SPC 사업

사회적가치연구원의 이런 연구를 실험하는 무대는 SPC (Social Progress Credit) 사업이다. 앞서 언급한 ‘사회적 기업을 발굴해 인센티브를 지원하는 일’에 해당한다. SPC 사업 2015년부터 SK그룹이 추진해온 것으로, 사회적가치연구원에서는 대상 기업을 선정하고 육성한다. 선정 기준은 당연히 사회적 가치 창출 여부다. 다만 기업의 형태가 꼭 사회적 기업일 필요는 없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성과를 내고 있는 조직이라면 어느 곳이든 SPC 사업 대상에 지원할 수 있다. 인센티브 즉 지원 금액 또한 고정적이지 않다. SPC 산출 기준에 근거해, 자신들의 제품과 서비스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많이 창출한 기업에게는 더 많은 인센티브가 제공하는 식이다. 동기부여를 하기 위해서다. 덕분에 기업들에게 지원한 인센티브도 매년 증가했다.

“2020년 기준으로 288개 기업이 이 사업에 참여했습니다. 연평균 40~60개 기업이 선정된 셈인데요. 이 기업들은 평균 2억 7천 만 원에 가까운 사회적 가치를 증대하며 평균 5,000만 원 가량의 인센티브를 받았습니다. 전체적으로는 288개 기업이 714억 원의 사회적 성과를 창출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문제가 해결되고 있다는 반증이니, 흐뭇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SPC 사업은 해외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2020년 1월부터 하버드대학 경영대학원(Harvard MBA) 내에서 비즈니스 케이스로 선정됐고, ESG 투자 분야의 권위자인 조지 세라페임 등 유명 교수들의 수업에도 활용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덕분에 나석권 원장과 사회적가치연구원의 발걸음은 한층 바빠졌다. 더 많은 경제주체들이 동참할 수 있도록 SPC 프레임워크를 제도화하고 거래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 중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협력도 활발하다. 중국 국유자산관리감독위원회와 중국 국유기업의 사회적 가치 측정 체계를 만드는 공동연구를 진행했고, 2020년 연말에는 국유자산관리감독위원회와 SK그룹이 공동으로 중국에 SV랩도 설립해 운영 중이다.

눈덩이 전략으로 사회적 가치 내재화해야

이러한 성과들에 비춰, ‘사회적 가치 분야의 팬덤을 만들겠다’는 취임 당시의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한 것 아니냐고 묻자 나석권 원장은 “아직은 출발 단계”라며 한발 물러 섰다. 행동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 ‘BTS(Build, Trust, Standard)’한 조직 즉, 역량을 키우고(Build), 사회적 가치 측정 수치의 신뢰성을 높여(Trust), 기준(Standard)을 만드는 연구원이 되려면 갈 길이 멀다는 뜻이다. 그러나 사회적 가치 확산을 위해서는 정부와 공기업 등도 적극 동참해야 한다. 이에 나석권 원장에게 25년 간의 공직생활 경험에 비춰, 공기업의 역할에 대해 조언해 줄 것을 부탁했다.

“공기업은 태생적 목적 자체가 공공성 즉 사회적 가치 확대입니다. 그러니 본업을 잘 해서 비용을 절감하고 접근 대상을 넓히는 것이 우선이겠지요. 그 다음으로는 트렌드로 떠오르는 과제를 소명의식을 갖고 업무에 내재화시키기 위해 고민해야 합니다. LX한국국토정보공사의 업무과 연관해서는, 좀더 친환경적으로 국토정보를 생산하는 방안이나 현장 안전성 확보, 다양한 계층을 위한 일자리 창출 등을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다만 처음부터 너무 큰 목표를 잡을 필요는 없습니다. 작은 것부터 쌓아가는 ‘눈덩이 전략’을 세워야 꾸준히 실천할 수 있을 테니까요.”

나석권 원장은 특히 4H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머리(Head)로 이해하고 마음(Heart)로 공감하며 행동(Hand) 변화로 연결시켜, 구성원 전체를 위한 건강한 생태계(Health)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민간기업이나 공기업 등을 향한 전언만은 아니다. 사회적가치연구원이 반발 앞서 길을 만들겠다는 약속이다.

“저희의 꿈은 아주 큽니다. 아무도 하지 않았던 사회적 가치를 측정해서 기업과 정부, 개인이 사회적 가치 확대에 당연한 듯 동참하는 역사를 만드는 것인데요. 예를 들어, 언젠가는 사회적 가치도 재무재표의 항목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당대에 이루지 못할 수도 있죠. 하지만 저희의 노력이 주춧돌이 된다면 이후 세대가 대를 이어가며 현실로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런 꿈이 있어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사회문제를 해결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