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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비앤비의 광고 문구인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가 전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국내 여행으로 눈을 돌린 이들의 새로운 숙박 수요 덕분이다. 2015년 사업을 시작한 제주 빈집 재생 스타트업 ‘다자요’는 이런 수요에 한발 앞서 대응한 곳이다. 하지만 사업 개시 초반부터 다자요는 수많은 일을 겪어내야 했다. ‘빈집’을 콘텐츠로 삼은 ‘스타트업’이라는 측면에서는 빈집 문제 해결의 대안으로 떠올랐지만, 스타트업의 한계에 부딪힌 탓이다. 덕분에 다자요 남성준 대표는 로컬 크리에이터의 관점에서 빈집과 스타트업 문제 나아가 사회적 가치 확대에 대한 생각까지 거침없이 풀어냈다.

빈집 문제의 핵심에 집중해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다

부동산과 관련해 국민 대다수의 관심이 집값 폭등에 집중돼 있지만, 빈집 문제도 그에 못지않게 심각하다. 이에 정부는 2017년 2월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빈집특별법)을 제정해 다양한 활성화 사업을 펼쳤음에도 실생활에서 체감하기는 쉽지 않다. 바로 이런 점에서 제주 빈집 재생 스타트업 ‘다자요’를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제주 토박이 출신으로 다자요를 창업한 남성준 대표는 “결코 만만치 않은 과정이었다”며 창업 당시를 회상한다. 사실 다자요는 숙박 중개 플랫폼으로 출발했다가 지방 스타트업의 한계를 고스란히 겪은 지 1년만에 숙박업 자체로 방향을 전환했다. 제주를 찾는 여행객들이 ‘시설이 좋고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동시에 제주만의 특징이 살아있는 숙소’를 원한다는 것을 파악한 덕분이다. 남성준 대표는 특히 빈집에 주목했다.

“젊은 세대는 직장이나 학교를 찾아 대도시로 떠나고, 부모 세대는 불편한 옛집 대신 시내 아파트를 선호합니다. 뿐만 아니라 ‘조상 대대로 살던 고향집’을 비어있다는 이유로 팔기도 쉽지 않죠. 빈집 문제는 결국 ‘거주할 수도 없고 매매할 수도 없는’ 애매한 지점에서 생긴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빈집을 활용하면 여러 가지 문제가 해결될 수 있으리라고 판단했죠.”

마중물이 된 것은 남성준 대표 고향 후배의 부모님이 가지고 있던 100년 된 빈집 두 채였다. 2017년 리모델링을 시작해 2018년 4월, ‘도순 돌담집’이 공개되자 뜨거운 반응이 이어졌다. 빈집 문제로 고민하던 지방자치단체에서 협력 문의를 해왔고, 빈집 제공을 제안하는 일반인들만 100명이 넘었다. 다자요가 집주인들에게 제시할 조건이나 실제 완성된 공간은 물론 자금을 마련한 방식까지, 모든 과정이 빈집 문제 해결의 새로운 대안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먼저 다자요는 집주인에게 무상으로 빌린 집을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공간으로 리모델링해 최소 10년 간 숙박시설로 운영한 다음 집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에 집주인들은 폐허에 가까웠던 집이 꾸준히 관리된다는 점에 더해 은퇴시점에 쾌적한 고향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특히 반겼다. 와디즈 크라우드 펀딩으로 리모델링 비용을 충당한 것도 화제가 됐다. 2017년부터 총 다섯 차례, 와디즈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한 결과, 일반인 투자자 500명의 투자 금액(총 8억여 원)이 기관 투자자의 투자 금액을 초과한 것이다. 다자요는 이 투자금으로 빈집 4채를 제주의 감성이 살아있는 숙박시설로 재탄생시켰다.

제주의 속살을 경험케 하는 다자요 규제 넘어 ‘함께 성장’으로

제주를 찾는 여행객들에게 다자요 숙소는 제주의 속살을 경험하는 공간이다. 집이 켜켜이 쌓아온 감성에 트렌드와 편의성을 결합시켰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애월에 있는 봉성돌담집 양옥하우스 거실에서 고개를 들면 집의 최초 시공일을 새긴 붓글씨를 읽게 된다. 옥상에 올라가면 중심에 있는 큰 나무부터 돌담들까지 제주 고유의 풍경을 간직한 봉성마을의 풍경은 물론 멀리 한라산까지 보인다. 봉성돌담집 한옥하우스 폴딩 도어를 열고 마루에 앉아 육지와는 다른 종류의 나무들로 채워진 작은 정원을 보며 제주의 바람을 맞을 수도 있다. 숙소에서의 경험은 자연스레 바깥으로 확장된다. 숙소에 머무르며 즐긴 티백이나 커피 드립백을 비롯한 어메니티(Amenity)들은 마을 주변 적어도 제주도 내에서 생산된 것이기 때문이다. 다자요의 숙소는 동시에 라이프스타일 제품의 쇼룸이기도 하다. 편안한 침대와 소파, 성능 좋은 스피커와 공기청정기 등은 대부분 스타트업에서 생산된 것으로, 여행객들에게는 사용 기회를 주고 생산업체에는 활로 모색의 기회를 제공해왔다. 이렇게 빈집 주인부터 스타트업까지, 많은 이들과 함께 성장하던 2019년 6월, 다자요의 모든 영업이 갑자기 중단됐다. 현행법을 어겼다는 것이 이유였다.

“저희 플랫폼은 숙박업 카테고리 중 그 어느 곳에도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결국 인원을 줄이고 사무실 한 켠을 공유오피스로 내놓으면서 버텼습니다. 사업을 접고 싶을 때면 피 같은 돈을 투자해주신 일반인 투자자들을 떠올렸어요.”

다행히 2020년 9월, 정부의 신산업 갈등 조정 매커니즘인 ‘한걸음 모델’의 첫 사례에 선정되면서 다자요는 앞으로 2년 간 5개 지방자지단체에서 50곳의 빈집을 활용해 사업을 할 수 있게 됐다. 물론 매출의 1.5%를 마을에 기부하는 등 규제가 풀린 대신 지켜야 할 조건들도 꽤 많다. 하지만 남성준 대표는 처음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마을과 더불어 성장하겠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마을의 고민에 적극 귀를 기울이고 함께 해법을 찾아왔다.

“얼마 전, 마을에 있는 빈 연립주택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겠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세를 줘도 자꾸 떠난다는 것이 이유였죠. 그래서 저는 스타트업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시면 어떻겠냐는 답을 드렸어요. 마을에는 젊은 사람들이 필요하니까요. 사실 마을 분들은 당장 정착할 사람을 찾고 싶어하시지만, 거기에만 매달리면 빈집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짧은 여행이 한 달 살기가 되고 한 달 살기가 평생 살기로 이어지도록 천천히 스킨십을 유도하자는 것이죠. 보통 이사 갈 곳을 고를 때도 아는 곳을 우선 순위에 두게 마련이니까요.”

스타트업의 고민에 귀 기울이면 크고 작은 사회문제 해결할 수 있을 터

다자요는 올 연말까지 7채의 빈집을 추가로 리모델링한 후 더 멋지게 영업을 재개할 예정이다. 따라서 앞으로 해야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많다. 실제로 현재 다자요에는 자신의 빈집을 제공하고 싶다는 개인들과 지방자치단체 등의 협업 문의는 물론 투자 의사를 밝히는 기관과 개인의 연락이 쇄도하고 있다. 빈집 리모델링에 참여하고 싶다는 업체와 숙소에 비치할 제품을 제공하겠다는 스타트업들의 제안도 꾸준하다. 하지만 남성준 대표는 섣불리 들뜨지 않는다.

“현재 개인의 취향을 담아 빈집을 재생하는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있어요. 저희가 예산을 제공하고 주주나 유명인들이 각자의 취향에 맞춰 리모델링하는 것인데, 첫 번째 작업에는 배우 류승룡 님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다양한 구상을 하고 있지만 중심만은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투자자들이 더 투자하고 싶은 곳, 숙박객들이 더 머무르고 싶은 곳 그리고 저희 직원들에게는 끝까지 함께 하고 싶은 회사로 만들어 가겠습니다.”

힘든 시간을 지나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자요는 규제와 갈등, 해법 모색 등 스타트업이 마주하기 마련인 다양한 과정을 겪어냈다. 덕분에 다자요의 성공 사례를 통해 우리는 빈집 문제, 지방 소외 문제 나아가 사회적 가치를 확대할 수 있는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이 대목에 대한 남성준 대표의 생각도 명확하다.

“스타트업은 대개 사소한 문제에서 출발합니다. 제가 ‘고향 제주의 빈집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으로 다자요를 창업한 것도 마찬가지죠. 그렇게 각자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스타트업이 생겨나고 성장한다면 지방 소외 문제도 해결되지 않을까요? 다만 스타트업의 시도를 사회적 가치 측면으로만 한정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 역시 마을이나 다른 스타트업과의 상생을 꾀하고 있지만, ‘희생’을 우선에 둘 수는 없습니다. 이윤보다 희생을 앞에 두면 기업으로서 지속할 수 없으니까요. 그러니 스타트업이 추구할 사회적 가치는 ‘좀더 가치 있게 돈을 버는 방법’ 정도로 정의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