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를 746조 개의 작은 네모 상자로 나누고, 각 칸마다 고유의 닉네임을 붙여주었다. 세상의 모든 위치를 2개의 단어와 1개의 숫자로 정의한 ‘지오닉’의 정밀위치정보는 사람은 물론 기계와의 소통에도 능하다. “너 지금 어디야?”라고 물었을 때 “‘즐거운, 우리, 회사’에 있어”라고 대답하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 인포씨드의 권요한 대표를 만났다.

746조 개의 공간을 위한 새 주소

여의도한강공원의 주소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로 330’이다. 한강 공원 입구도, 입구에서 한참을 걸어 도착한 강변의 벤치도 동일한 주소를 가진다. 지도 앱을 이용해 현재 위치를 파악해 공유한다 해 도, 정확도가 떨어질 뿐만 아니라 데이터 통신이 안 되는 지역에서 는 이마저 무용지물이다. 그런데 인포씨드에서 개발한 ‘지오닉’을 통 하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지오닉’은 지오그래픽(Geographic) 과 닉네임(Nickname)의 합성어다. 그러니까 세상의 모든 지리적 공 간에 닉네임을 붙여주는 것이 지오닉의 핵심 기술이다. 지구 전체를 가로 1m, 세로 1m 크기의 정사각형 조각 약 746조 개로 나눠 각각 의 공간에 고유한 주소를 부여한다. 위치표시를 위한 지오닉의 표현 방식은 ‘정밀위치@지역’의 형식을 가진다. 정밀위치는 무작위의 단 어 2개와 숫자 하나로 구성되는데, 해당 공간과 연관성은 없어도 되 지만, 746조 개에 달하는 조합이 절대 중복되어서는 안 된다. 이를테면 ‘여의도한강공원 편의점 옆 벤치’가 놓인 가로세로 1m 지 점의 지오닉은 ‘바람, 녹색, 32@여의도한강공원’이 되는 식이다. 게 다가 746조 개에 달하는 지오닉 주소를 약 50메가에 전부 담았기 에, 데이터 통신과 상관없이 지오닉 주소만으로 정확한 위치를 찾을 수 있다.

세월호 참사가 내려놓게 만든 공간정보 전문가의 자부심

사람과 기계가 각자의 언어로 같은 위치를 상호인식, 소통할 수 있 는 정밀주소 서비스 ‘지오닉’. 그 시작은 2014년 4월로 거슬러 올라 간다. 인포씨드의 권요한 대표는 공간정보 분야에서만 25년을 종사 한 공간정보 전문가다. 부산 UIS(Urban Information System, 도시정 보시스템) 기본계획을 비롯한 다수의 UIS에 참여, 한국 최초 전자해 도 구축, 한국 최초 PCS폰 위치추적 서비스, 한국 최초 폰일체형 휴 대폰 내비게이션, 세계 최초 공간정보 유출방지 보안 솔루션, 공간정 보 코드패턴 등 공간정보와 관련된 수많은 프로젝트에 참여해 다양 한 경험과 지식을 축적해왔다. 우리나라 공간정보산업의 시작과 성장을 함께 해온 만큼, 공간정보 산업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누구보다 깊다고 자부했고, ‘이론과 실무 를 겸비한 최고의 전문가’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그런데 2014년 4월 16일, 방송을 통해 세월호 사건을 지켜보던 그는 그 자신감이 ‘자만’ 이었음을 깨달았다. “세월호는 바다 위에 있었습니다. 희생자 대부분은 GPS가 내장된 스마트폰을 소지하고 있었고, 마지막 순간까지 메신저를 사용했으니 데이터 통신도 가능한 위치였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배가 가라 앉는 그 순간에, 자신의 정확한 위치를 알고 도움을 청할 수 없었습니 다. 바다뿐일까요? 우리가 생활하는 대부분의 장소에는 정밀한 위치 표시가 없습니다. 공간정보가 아무리 정확해져도 사람이 위치를 말 하고, 읽고, 쓸 수 없다면 그것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권요한 대표는 ‘세월호가 가라앉는 순간 누구도 자신의 위치를 얘기 할 수 없었다’는 사실에 그동안의 모든 자부심을 버렸고, 남은 생에 서 이것만은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2015년 1월, 인 포씨드의 설립과 함께 ‘세상 모든 곳의 정밀위치 표시’라는 도전을 시작했다.

든든한 동료들과 함께 ‘지오닉’ 개발에 성공하다

명확한 목표와 단단한 사명감을 가지고 시작했지만 과정은 쉽지 않 았다.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것인 만큼, 과정마다 실험과 실패, 새로 운 도전을 반복해야 했다. “이전까지 공간정보산업은 ‘지도’라고 표현되는 공간을 사람 중심, 시각 중심으로 발전시켜 왔습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나 자율주행 과 같은 기술 발달로 앞으로는 기계 중심, 기계인식(센싱) 중심으로 발전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기계 중심의 공간정보가 모든 산업군에 서 활용되는 미래 사회에서 사람과 기계가 정밀한 위치를 공유 하려면 정밀위치표시 장치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래야 어떤 공간, 어떠한 상황에서도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자신의 위치를 얘기 할 수 있을 테고요.” 권요한 대표는 새로운 정밀위치표시 기술 개발을 위해, 공간정보 전 문가들을 모았다. 그 결과 인포씨드 설립의 취지와 도전 과제에 공 감한 12명의 멤버들이 불확실한 도전에 기꺼이 동참했다. “2018년에 LX공간정보연구원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강애띠 박 사님을 처음 알게 됐어요. 덕분에 올해 1월부터, 함께 일하게 됐습 니다. LX공간정보연구원과는 현재도 ‘LX 주소혁신 플랫폼’ 연구 과 제를 함께 진행하는 등 꾸준한 협력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데요. 앞 으로도 LX와 함께 다양한 공간정보 분야를 개척해가고 싶습니다.” 지구 전체에 적용될 수 있어야 하고, 최대한 짧은 표현이어야 하며, 변하지 않는 형태이면서, 정밀하고, 음성인식이 잘 되고, 장소가 아 닌 사물에도 주소를 부여할 수 있으며,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것 등. 권요한 대표는 최고의 동료들과 수많은 제약조건을 모두 해결할 수 있는 형태로 지오닉을 계속해서 발전시켜왔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좌절하기도 하고, 더 나은 서비스를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연구하 는 과정을 거쳐, 2019년 말에 드디어 전 세계에 소개해도 부끄럽지 않은 지오닉을 선보이게 됐다.

권요한 대표는 ‘세월호가 가라앉는 순간 누구도 자신의
위치를 얘기할 수 없었다’는 사실에
그동안의 모든 자부심을 버렸고, 남은 생에서 이것만은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2015년 1월, 인포씨드의 설립과 함께
‘세상 모든 곳의 정밀위치표시’라는 도전을 시작했다.

더 나은 세상을 열기 위한 열쇠, 지오닉

그렇다면 지오닉은 우리 삶의 어느 분야에서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 까? 권요한 대표는 망설임 없이 “모든 분야”라는 답을 내놓았다. “지오닉의 타겟 시장을 정하기 위해 다양한 전문가들과 오랜 시간 브 레인스토밍을 했어요. 그리고 ‘지오닉의 최대 강점은 타켓 시장에 대 한 제약이 없이 모든 분야에서 무궁무진하게 확장될 수 있다는 점’이 라는 결론을 내렸죠.”
실제로 인포씨드는 서울시 한강사업본부와 함께 ‘어디야 한강’이라는 앱을 개발, 지오닉을 활용해 내 위치를 공유하거나 목적지를 정확히 안내를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가까운 응급실이나 자동심장충격기(AED) 위치를 확인하고 전화나 문자메시지로 119에 신고할 수도 있는 기능을 추가하는 등 지오닉 개 발의 최초 목적도 잊지 않았다. 여행사와의 협업도 진행 중이다. 세 상 곳곳에 숨어 있는 다양한 여행 정보를 더욱 쉽고 정확하게 서비스 하는 것은 물론, 지오닉의 my.geo.nick(마이 지오닉) 기능을 활용해 자신이 좋아하는 위치에 직접 주소를 부여하고 공유할 수 있게 할 예 정이다. 나아가 3차원 공간에서 특정 위치를 찾아는 방법, 인간과 인 공지능 간 정밀위치 정보 소통을 위한 언어에 대해서도 연구 중이다. 현재 개발 중인 영상이나 사진 속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는 기술은 자 연재해나 사고로부터 안전을 지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 대된다. 권요한 대표는 또한 사물인터넷(IoT), 드론, 자율주행차, 라스 트마일딜리버리(Last Mile Delivery, 상품이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의 전 과정) 등 사람과 기계가 위치를 통해 빈번히 소통하게 될 절대적 흐름 속에서 각 분야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열어갈 계 획이다. 이를 위해 무료 API 사이트를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지 오닉 서비스는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제공되고 있지만, 세계인들이 지 오닉을 활용할 수 있도록 언어를 꾸준히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글로벌 정밀위치표시 플랫폼 지오닉은 단독 제품이 아닙니다. 다양 한 서비스와 제품에 사용되어 효율을 높이고 불편함을 해결할 수 있 는 인프라이며, 부품인 동시에 소재입니다. 골드러시 시대에 금을 찾 아 서부로 달려간 사람들에게 청바지가 효율적인 도구가 되었듯, 지 오닉도 4차 산업혁명시대에 신기술을 향해 달려가는 스마트한 이들 에게 널리 활용되기를 기대합니다.”
권요한 대표의 최종 목표는 하나다. “제가 아내에게 전화해서 ‘지금 어디야?’라고 물었을 때, ‘하늘, 바람, 32@코엑스’라는 닉네임으로 대 답하는 날. 더 나아가 위험에 빠진 누군가가 지오닉에 힘입어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공유하는 시대를 여는 것. 그날을 위해 지 금까지 그랬듯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