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은 ‘로봇(Robot)’이라는 용어가 탄생한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1920년 체코 출신 극작가의 희곡에서 처음 언급된 로봇은 100년 후 ‘몸’이 되어 빌딩과 길 사이를 누빈다. 그는 몸 안에 치킨, 피자, 도시락 같은 따끈한 음식을 품고 있다. 때론 편지와 소포를, 호텔 룸서비스 비품을 싣고 달린다. 휴대폰 앱은 그의 이동과 도착을 시시각각 알려준다. “띵동” 배달로봇이 문 앞에 왔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앞당긴
배달로봇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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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로봇의 등장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각종 로봇 전시회와 산업 기술박람회에 빠짐없이 등장해 셔터 세례를 받는 주인공이 바로 배 달로봇과 서빙로봇 아니던가. 실제로 식당에서 주문자의 테이블까 지 최적의 경로로 음식을 싣고 가고, 호텔과 리조트에서 룸서비스 비품을 객실 문 앞까지 배달하며, 병원에서 코로나 확진자의 환자복 과 의료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리 장소로 옮기는 배달로봇은 이미 일 상 곳곳에서 활약 중이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거리를 활보하는 배달 로봇을 마주하기란 쉽지 않다. 법을 포함한 각종 정부 규제와 안전 에 대한 우려, 높은 비용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실외 배달로봇 시대 를 앞당긴 것은 역시 ‘코로나19’다. 비대면 문화의 확산이 배달로봇 을 우리 일상과 거리 속으로 재빠르게 소환한 셈이다.
배달로봇은 현행 도로교통법상 차와 같은 운송 이동수단에 해당해 보도나 건널목을 이용할 수 없다. 승강기 탑승 안전 기준도 마련되 지 않아 승강기 이용도 원천적으로 금지해왔다. 상용화하기 어려웠 던 가장 큰 이유다. 그런데 지난 9월 23일, 자율주행 배달로봇에 관한 ‘ICT(정보통신기술) 규제 샌드박스 실증특례’가 승인됐다. 용어는 다소 어렵지만 일정 기간 기존 규제를 면제해주고 안정성을 시험하고 검증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이번 실증특례 승인을 통해 특정 도시 공간에서 보행자와 유사한 속도로 주행하는 배달로봇이 보도로 다니 거나, 실내 배달로봇의 승강기 탑승도 가능해졌다. 보행자의 속도보다 빠르게 이동하는 배달로봇이라면 자전거도로 등에서 주행할 수 있도 록 제도를 개선하는 방향이 단계별로 진행될 예정이다.
우리 정부는 이러한 규제혁신을 거쳐 2023년까지 ‘글로벌 4대 로봇강 국’으로 부상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2021년에는 로봇산업 관련 예산 을 32% 증액한 1,944억 원으로 편성하고, 제조로봇과 함께 4대 서비 스로봇(물류, 의료, 웨어러블, 돌봄)을 집중 육성하겠다는 방침이다.


국내최초 실외 배달로봇 등장
세종시, ‘자율주행 로봇 규제자유특구’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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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ICT 규제 샌드박스 실증특례를 이끌어 내며 실외 배달로봇을 현실화시킨 주역은 ‘배달의민족’으로 유명한 우아한 형제들이다. 이 들이 선보인 자율주행 배달로봇 ‘딜리드라이브’는 수원 광교 주상 복합 아파트 단지와 건국대학교 캠퍼스 일대를 누비며 시범 서비스 를 진행하고 있다. 주문자가 배달 앱을 통해 음식을 주문하면 배달 로봇이 음식점에서 조리된 음식을 싣고 단지 내 인도와 골목길을 보 행 속도인 시속 4~5km로 달려 배달하는 것이다. 고도화된 센서 기 술로 사람과 장애물을 알아서 피해 가고, 사람들의 이동경로나 노면 상태를 반영해 스스로 길과 목적지를 찾아가도록 설계됐다. 또한 주 행 중 외부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에어백을 차체 전체에 적용했 다. 현재는 아파트 1층이나 광장 내 야외 테이블 지정 위치에 음식을 배달하지만, 내년 상반기에는 실내외 통합 자율주행과 승강기 연동 기술을 더해 주문자의 현관 앞까지 배달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딜리드라이브와 함께 배달로봇 시범 운영에 박차를 기하고 있는 곳 이 우정사업본부다. 코로나 이후 택배 물량 폭주로 업무량이 가중된 가운데 우편물류 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 의지가 반 영된 결과다. 우정사업본부는 세 가지 핵심 기술로 무인 우편·배달 서비스 시대를 예고한다. 실내에서 지정된 장소로 수취인에게 우편 물을 전달하는 ‘우편물 배달로봇’과 무거운 짐을 싣고 집배원과 함 께 우편물을 배달하는 ‘집배원 추종로봇’, 자율주행차를 활용한 ‘이 동식 무인 우체국’이다. 이 서비스는 현재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에 서 시범 운영 중이지만, 앞으로 스마트시티 국가시범도시이자, ‘자율 주행 실외로봇 규제자유특구’로 선정된 세종시의 대학과 대단지 산 업시설 등으로 권역을 확대할 예정이다.
세종시는 개별 시범운행 중심으로 진행되는 기존 샌드박스 사업과 달리, 지역 내 실증로봇 통합관제를 구축하고 충전과 주행 체계 개 발 등 자율주행 실외로봇에 관한 통합 서비스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 를 모은다. 도시 전체가 비대면 서비스 배달과 코로나 방역, 보안순 찰용 자율주행 실외로봇에 대해 안전성과 상용화 검증을 진행할 수 있도록 야심 차게 변모하는 것이다.


누가 누가 앞설까 유통 패러다임
바꾸는 배달로봇

코로나19 팬데믹과 각종 규제 샌드박스로 전 세계 배달로봇 시장 성장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실외 배달로봇의 상용화 검증을 서두 르는 우리나라처럼 해외 기업들도 앞다투어 배달로봇 시범 운행 과 개발에 열을 올리는 중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마켓앤마 켓》은 전 세계 배달로봇 시장이 2018년 1,188만 달러(약 132억 원) 에서 2024년 3,399만 달러(약 379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MarketsandMarkets, 2019.1).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 발표된 조사 인 만큼 배달로봇 시장의 실제 규모는 이보다 더 빠르고, 더 크게 우 리 현실에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
선두에 서고 있는 미국의 스타십테크놀로지는 지난 2015년 영국을 시작으로 미국의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 워싱턴DC 등 이미 100개 이상의 도시에서 10만 건 이상의 배달을 성공시켰다. 실외 배달로봇 디자인의 선구자 격인 ‘스타십 배달로봇’은 아이스박스가 포함된 차 체에 6개의 바퀴가 달려 평균 시속 6km로 움직인다. GPS와 360도 전방위 탐지가 가능한 9대의 카메라 센서가 있어 장애물을 피해 다 니며, 위치 추적은 물론 야간 주행도 가능하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인 아마존 역시 작년 1월부터 배달로봇 시장에 뛰어들었다. ‘스카우트’로 불리는 아마존 배달로봇은 약 8개월 동안 시애틀에서의 시범 운행에서 식료품 등의 정기 배송과 소형 택 배 물품을 성공적으로 배송하며 시범 서비스 지역을 확대하고 있다. 실리콘밸리 무인배송 스타트업인 누로가 개발한 ‘R2’는 올해 초, 미 국 도로교통안전국으로부터 캘리포니아 공공도로에서 시범 운행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아냈다. 인도를 이용한 기존 배달로봇과 달리 도 로에서 시속 40Km의 자율주행하며 190Kg의 무거운 중량까지 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누로는 최근 미국의 대형 약국 체인업체인 CVS 와 협력을 맺고, 병원 처방전을 앱에 입력하면 R2를 이용해 약을 배달하는 ‘원격 처방’ 서비스 시범 도입을 알렸다. 도로주행에 이어 헬스케어 분야까지 진입한 R2의 행보는 배달로봇의 진화와 확장이 과연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지 그 가능성에 관해 다시금 주목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