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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전문가들은 흔히 “ESG의 시작과 끝은 거버넌스(Governance)다”라고 이야기한다. 다양한 주체들의 참여를 바탕으로 한 투명하고 공정한 의사결정 체계가 갖춰질 때, 환경 문제 대응과 사회적 가치 향상 나아가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국내 최초로 설립된 유엔(United Nations, UN) 본부 기관인 유엔거버넌스센터 심보균 원장을 만나 거버넌스의 가치와 지향에 대해 들어보았다.

날로 확대되는 거버넌스의 역할

유엔거버넌스센터(The United Nations Project Office on Governance, UNPOG)는 2006년 6월, 아시아 태평양과 동아프리카 지역 국가들의 공공 거버넌스 역량 강화를 목표로 설립됐다. 지속가능발전목표(2030 Agenda for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s)와 국제사회에서 합의된 개발 목표를 각 국의 제도와 전략, 프로그램에 반영하기 위해서였다. 이에 설립 직후인 2006년부터 유엔거버넌스센터는 잰 걸음으로 활동을 이어왔다. 2006년부터 2015년까지, 1기 동안은 정부 혁신과 전자정부에 중점을 두고 아시아·태평양의 31개 국가를 대상으로 역량개발과 연구, 정책분석, 네트워킹 활동에 힘을 쏟았다. 이어 2016년 2기로 접어든 후에는 동아프리카 17개국을 추가하며 데이터 거버넌스, 공공서비스 디지털 혁신, 기후변화, 효과적인 거버넌스 등을 주제로 활동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따라 디지털 혁신을 적극 추진해온 셈이다. 특히 2020년 2월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이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으면서 유엔거버넌스센터의 역할은 한층 커졌다.

“현재의 코로나19 팬데믹 위기 해결은 물론 17개의 지속가능 발전목표 달성까지, 몇몇 국가나 몇몇 사람의 힘만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정부는 물론 시민, 관련 전문가 등 모두가 참여하는 거버넌스가 필요합니다. 문제는 거버넌스 역량을 끊임없이 강화하고 혁신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안토니우 구테흐스(Antonio Guterres) 유엔사무총장은 ‘지금은 거버넌스의 위기’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유엔거버넌스센터의 제6대 원장으로서, 어마어마한 무게감과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실제로 대통령비서실, 전라북도 행정부지사, 행정안전부 차관 등을 역임한 심보균 원장에게도 취임 이후의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글로벌 상황이 시시각각 변하면서 매주 2~3회씩 유엔 본부와 관련 국가, 전문가들과의 화상회의에 참여해야 했다. 국내 공공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등의 자문 요청도 줄을 이었다. 거버넌스의 역할이 그만큼 커졌다는 반증이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향한 예술

‘거버넌스’가 대체 무엇이길래 위기의 시대일수록 더 중요해지는 것일까. 유엔은 거버넌스를 ‘한 국가의 여러 업무를 관리하기 위한 정치, 경제 및 행정적 권한의 행사를 동반하는 의사결정 과정(Process of Decision-making)’이라고 정의했다. 이어 2018년 유엔경제사회처(the United Nations Department of Economic and Social Affairs, UN DESA)에서 추인되고 전문가위원회(Committee of Experts on Public Administration, CEPA)에서 제정한 바에 따르면, 공공 거버넌스는 효과성(Effectiveness)과 책임성(Accountability), 포용성(Inclusiveness)을 두루 갖추고 있어야 한다.

“거버넌스의 정의, 공공 거버넌스의 요소 등과 함께 비전과 전략도 필요합니다. ‘누구를 위해 할 것인가?’가 정리되면 해야 할 일이나 추진 전략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 탄소중립 목표를 예를 들어볼까요? 탄소중립은 인류 전체를 위한 것이니, 국제기구나 정부, 민간 분야만이 아닌 시민 개개인도 적극 참여해야 합니다. 따라서 저희 같은 국제기구와 각국 정부는 보다 많은 이들이 동참할 수 있는 거버넌스를 만들어야겠죠. 탄소중립위원회와 탄소중립법 제정, 각국 지도자의 탄소중립 가치 언급 등이 그 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심보균 원장은 ‘공공 거버넌스 구축’은 결국 시스템과 사람을 바꾸는 일이라고 말한다. 시스템과 프로세스, 이를 실천하는 주체인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효과성과 책임성, 포용성 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개발도상국 정부의 행정 효율화를 위해서는 디지털 정보 시스템만 제공해서는 안 된다. 시스템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제도와 규칙은 물론 국가 지도자와 시스템을 사용하는 공무원의 자세가 뒷받침되어야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민간과 적극 협력하는 것도 필수다. 정부는 행정 효율화의 토대를 닦고, 새로운 기술과 이를 실행할 인력은 민간에 맡길 때 스타트업 등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다. 이렇듯 다양한 주체들의 합의와 동참을 이끌고 이를 시스템화 시키는 과정은 지난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렵고 힘든 과정 끝에 탄생한 거버넌스는 인류를 ‘지속가능한 발전’의 길로 이끈다. 그래서 심보균 원장은 “거버넌스는 예술”이라고 말한다.

대한민국 거버넌스 발전에 기여할 것

유례없는 위기 속에서 원장으로 취임했지만, 심보균 원장은 자신만의 색깔을 더해 발전을 꾀했다. 대표적인 예는 국가별 수요에 맞춘 ‘자문 서비스(Advisory Service)’다. 말라위에는 공무원 윤리 향상 방안을, 캄보디아에는 지방정부 공무원 역량 강화를, 부탄에는 공무원 성과 평가와 관련한 컨설팅을 요청받고 추진 방안을 협의 중이다. 이 과정에서 그는 또한 우리나라 공공 거버넌스의 우수성도 새삼 발견했다.

“우리나라는 데이터 거버넌스 분야에서 아주 뛰어납니다. 인터넷 확산에 대응해 사이버 보안, 개인정보 보호, 데이터 활용 등과 관련한 법률과 행정, 공유 체제를 잘 갖추고 있지요. 제가 행정안전부 차관 재임 시절 이런 부분에 기여했다는 것에 보람을 느낍니다. 그리고 최근 민간의 참여를 통한 거버넌스 사례로는 한국수자원공사(K-water)의 합천댐 수상태양광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처음에는 지역 주민들의 반대가 거셌지만, 현지 확인과 과학적 실험, 데이터 분석 결과를 공유하며 주민 동의를 얻어 결실을 맺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투명한 운영을 위해 주민 거버넌스를 만들고, 수상태양광 사업에 주민 투자를 유치해 최대 10%까지 수익배당을 할 수 있도록 한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한국수자원공사의 예를 들며 심보균 원장은 공기업의 거버넌스 구축 방향성도 조심스럽게 제시했다. 투명성과 포용성, 공정성을 갖추는 것은 기본, 지속가능경영보고서나 ESG보고서를 만들어 국민은 물론 직원들과 적극 소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LX한국국토정보공사에는 보다 다양하고 정확한 국토정보를 디지털 트윈 등을 통해 공유함으로써, 산업 생태계 확장과 환경문제 해결, 사회적 가치 확산과 투명하고 효과적인 거버넌스 구축에 기여해 달라는 기대를 전했다. 동시에 유엔거버넌스센터의 노하우와 자문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라도 달려가겠다는 약속도 잊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선진국이 됐습니다.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세계 일류국가가 되려면 전반적인 인식 변화가 필요합니다. 글로벌 체제를 이해하고 국제 표준에 맞추려는 노력은 물론, 우리가 새로운 국제질서를 창출하겠다는 비전을 세웠으면 합니다. 앞서 강조한 것처럼, 비전이 뚜렷하면 거버넌스도 한층 명확하고 투명해지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유엔거버넌스센터와 제 역량이 도움이 된다면, 적극 힘을 보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