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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년대에 폭발적으로 건설된 서울시의 기반 시설은 2020년 기준 대부분 20년 이상 사용되었으며 10년 이후에는 대부분의 시설이 30년 이상 사용되어 심각한 노후화 문제를 겪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러한 기반 시설물 노후화는 서울시뿐 아니라 대한민국, 나아가서는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에서도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시설물 노후화에 대한 고찰은 아직 면밀히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기반 시설물 유지관리 기술의 지능화 및 고도화는 다양한 기술의 융합 발전을 요구하며,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한 분야이다. 따라서 체계적 기술발전 로드맵과 더불어 민·관·산·학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할 것이다.

기반시설물과 도시 발전

21세기 초까지 발전의 척도는 기반 시설이었다. 사람들은 크고 아름다운 건축물의 이미지로 도시를 떠올렸고, 빠르고 편리하게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성장의 목표였다. 다시 말해 거주성과 이동성을 확보할 수 있는 도시계획이 국가적 전략이었다. 선진국들은 20세기 중반부터 기반 시설의 건설에 투자를 집중하였고, 건축물과 도로시설물로 포화된 대도시들은 지금에 이르러서는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IT 신기술로 발전의 초점을 이동시키고 있다. 실로 빠른 기술의 발전 안에서 이제는 사람이 기술에 적응을 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하였다. 하지만 지금, 눈부신 발전을 주도한 기반 시설은 노후화로 인해 해결해야 할 또 다른 문제를 낳고 있다. 일본과 미국 등 70~80년대에 집중적인 발전을 이룩한 선진국들은 50년 넘게 사용한 노후화 시설물의 관리 문제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한국전쟁으로 그들보다 발전 속도가 약 20년 정도 더딘 상황이다. 아직까지는 선진국들에 비해 그 문제가 심각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수많은 도로시설물의 노후화 문제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가까운 미래에는 주요 선진국들이 현재 겪고 있는 문제에 직면할 것이다.

성능중심 유지관리의 필요성

구조물은 준공과 동시에 열화가 시작되고, 손상이 발생하였을 경우 적절한 보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결국 문제로 이어진다. 또한 오래된 구조물일수록 손상이 발생할 확률이 높은 것은 자명한 탓에, 공용 연수가 30년을 넘어가는 구조물은 ‘노후화 구조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노후화 구조물이 꼭 더 세심한 관리를 요구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교량을 예로 들면, 재료부터 구조 형식까지 서로 다른 형태를 띠고 있을뿐더러 각기 노출되는 환경 조건이 다르다. 또한, 과거 수십 년간 수행된 보수보강의 질과 양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손상의 정도와 빈도는 교량의 나이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사용된 지 10년도 되지 않은 교량에서 심각한 손상이 일어날 수도 있으며, 40년이 넘은 교량이라 할지라도 중대한 결함이 발생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더군다나 관리가 잘 이루어진 교량의 수명은 약 75~80년 정도로, 공용 연수 30년은 노후화 기준으로 이른 감이 없지 않다. 결론적으로, 도로시설물의 관리는 수명이나 공용 연수가 아닌 성능에 기준을 두고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성능에 대한 정량적 지표를 단일화하여 결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교량의 경우 공용 내하력이 하나의 지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취약화 시점이나 원인을 파악하는 방법은 아니므로 유지관리와 연관 짓기 어렵다. 상태를 평가하거나 모니터링할 수 있는 별도의 방안이 필요하다.

모니터링 기반 구조물 상태평가

구조물의 설계에서는 지지해야 할 하중을 가정하고 계산을 통해 이를 저항할 수 있는 부재를 결정한다. 이때 부재의 재료나 기하학적 형상, 지지 조건 등은 이상적인 상태로 가정하게 된다. 다시 말해 설계 단계에서 모든 계산은 구조 시스템과 환경 변화가 모두 ‘아는 값(Known Value)’이 된다. 반면 유지관리에서는 이러한 모든 값들이 알 수 없는 변수가 된다. 하중의 크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며, 준공 이후 수십 년이 지난 재료의 물성치(물질의 물리적, 전기적, 열적 특성 수치)는 변화했을 가능성이 클뿐더러 준공 모델이 실제 모델과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구조물의 상태는 기술자가 깊은 지식과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판단해야 하는 고급 영역이다. 구조물의 성능이 확보되었다는 것은 환경 변화에 대하여 예측된 범위 내의 응답을 보여주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구조물의 상태는 구조물의 응답을 분석함으로써 역추정할 수 있다. 여기서 필요한 기술은 응답의 측정과 데이터 분석이다. 다행히 지금은 구조물의 응답 물리량을 측정할 수 있는 계측 장비들이 많이 개발되어 있다. 구조기술자는 이를 활용하여 구조물의 상태를 예측하는 솔루션을 개발하고 활용하면 된다. 이러한 방법에 대한 연구는 계측기기가 발전하기 시작한 2000년대 초부터 도입되었다. 때문에 관련 기술은 주로 연구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역해석이나 빅데이터 분석, AI 등 다양한 방법이 제시되어 몇몇은 실증 가능한 수준에 있다. 서울기술연구원에서는 한강교량 중 1개소에 직접 개발한 계측기기를 설치하고 이로부터 데이터를 받아 교량의 형상을 추정하는 연구를 수행하였으며, 현재에도 모니터링은 지속되고 있다.

손상 탐지 자동화 기술 필요

현재의 유지관리는 주로 손상을 탐지하고, 그 종류와 정도를 기준으로 안전 등급을 산정하여 보수보강을 실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덕분에 작은 손상까지 관리하여 더 큰 사고를 방지하는데 기여하고 있지만, 손상 이후의 대처라는 한계점을 지닌다. 수년 전부터 선제적 유지관리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이유다. 이는 성능 중심 유지관리의 일환으로 현재의 상태와 과거의 이력을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고, 다가올 문제에 미리 대비하는 것으로 상당히 고도의 기술력을 요구한다. 다행히 꾸준한 연구에 힘입어 가까운 미래에는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선제적 유지관리 기술이 완벽히 마련된다 하더라도 현재로서는 손상 탐지를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균열이나 박리, 녹이나 누수 등 많은 형태의 손상은 발생 시점에는 구조적인 성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구조물의 응답 특성 만으로는 손상 부위와 정도를 쉽게 추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현재 시행되고 있는 안전점검이나 정밀점검은 모니터링 기반 상태 평가 기술이 정착된 이후에도 꾸준히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문제는 시설물 관리에 소요되는 인력과 예산이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안전진단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면서 계측 기반 상태 평가가 이루어진다면 이는 관리자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성능기반 관리를 위한 상태 평가가 수행되기 위해서는 현재의 업무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현재 손상 점검은 대부분 육안검사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부분은 이미지 기반 손상 탐지 기술로 대체될 수 있는데, 레일 로봇이나 드론 등에 고해상도 카메라를 탑재하여 인력을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이 실용화 단계에 있다. 그러나 몇몇 손상 유형에 대한 완성도는 상당히 높은 수준이지만, 레일 로봇은 초기 비용 부담이 크고, 드론의 경우에는 근접 비행이나 교량 하부 점검이 어렵다는 한계를 가진다.

데이터 기반 유지관리 플랫폼

요컨대, 시설물 유지관리 기술의 고도화는 상태 평가와 안전점검 자동화 기술 도입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러한 기술들은 기존과 달리 점검과 기록이 아닌 데이터 획득과 분석의 형태를 띠는데, 대부분의 이력들이 디지털 정보로 처리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따라서 다량의 정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활용할 하나의 플랫폼이 필요하다. 유지관리는 구조물 생애 주기 전반에 걸친 자료의 저장과 열람, 활용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에는 축적되는 데이터의 형태가 디지털화되지 않아 저장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 어려웠으나, 향후의 기술들은 이러한 점이 대폭 개선될 전망이다. 빅데이터의 활용은 자료의 접근성을 높이는 데서 출발한다. 현재 유지관리 단계에서 이를 가장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도구로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ing)이 각광받고 있다. 다만, 현재까지는 특정 프로젝트에 이용되거나, 설계 단계에서 3D 모델을 활용하는 정도로만 활용되고 있다. BIM은 3D 모델과 정보의 연동을 의미하며, 이는 모델 자체가 색인(Index)의 역할을 한다는 의미가 된다. 관리자는 3D 모델상에서 손쉽게 필요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으며, 상태 평가를 위한 모니터링 데이터와 현장에서 얻어진 손상 정보 등은 하나의 플랫폼 위에서 구동될 수 있을 것이다.

스마트 유지관리 시스템 도입

앞서 설명한 각각의 기술들은 연구단계에서 충분히 검증되었거나, 실무 적용 단계에 이르렀다. 특히 현재의 기술발전 속도로 미루어볼 때 이들은 가까운 미래에 완성되어 적용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적극적 활용을 위해서는 몇 가지 준비가 필요하다. 첫째,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 마련이다. 현재의 유지관리 업무들은 상당히 엄격하게 짜인 매뉴얼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으며, 신기술의 적용이 인정되기 어렵거나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또한 신기술과 관련된 적절한 품셈이 마련되지 않아 기술자들에게 진입장벽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제도가 기술 발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술이 충분한 신뢰도를 가지는 것도 중요하나, 기술에 대한 필요성을 자각하는 인식 개선 또한 중요하다. 둘째, 기술 정착에 필요한 시간과 예산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몇몇 신기술들에는 초기 비용을 과감히 투자해야 할 것이다. 경제적 손익 분기점까지는 이들을 꾸준히 유지하고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빅데이터에 의존하는 기술들은 과거에 축적되지 않은 정보로 인하여 초기에는 정착이 어려울 수 있다.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려는 시도는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으나, 필수적인 요소들에 대한 자료의 부재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메꿔 나가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단일화된 플랫폼 개발에 대한 적극적 의지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대책 마련이다. 요소 기술 각각의 완성도가 충분히 확보되었다 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이들을 통합해 관리해야 한다. 따라서 기술 하나하나의 목적에 집중하기보다는 기술들이 이루어내는 각각의 성과물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 플랫폼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일례로 서울시는 2021년 11월, 도로시설물 스마트 유지관리 플랫폼 개발 사업을 착수하였다. 여기에서는 앞서 말한 계측 기술, 점검 기술, 데이터 관리 기술들의 효용성 검증과 하나의 플랫폼으로서 적용 가능성 여부를 실증하게 된다. 유지관리 기술과 플랫폼이 개발된 이후에도 다양한 기술은 쏟아져 나올 것이다. 더 나은 기술을 유연하게 수용하기 위해서는 관리자와 기술자의 적극적 협력과, 이로 인한 제도적 발전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