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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크라우드 펀딩 업체 와디즈에 재미있는 펀딩 프로젝트가 공개됐다. 펀딩을 하면 제주에 있는 스마트팜 내 바나나 나무를 분양받아 3개월 간 게임을 하며 키운 후 친환경 무농약 바나나를 배송받을 수 있는 ‘바나나하우스’가 그 주인공이다. 펀딩을 통한 시민참여, 게임과 현실 속 스마트팜 연동, 탄소총량중립 등을 구현하며 거버넌스와 메타버스의 신선한 모델을 제시한 바나나하우스의 사례를 살펴본다.

스마트팜과 게임 연동시킨 최초 사례
크라우드 펀딩으로 날개 달다

지난 7월, 투자를 기다리는 아이템들로 가득한 와디즈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 재미있는 프로젝트 하나가 공개됐다. 스마트폰 게임을 통해 가상으로 나무를 키우면 3개월 후 친환경 무농약 바나나를 집으로 배송해주는 ‘바나나하우스’ 프로젝트였다. 현실의 농장과 게임을 연결해 직접 작물을 키우다니,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
(주)셈스게임즈 안정훈 대표는 “현실과 가상을 연결하는 스마트팜(Smart Farm) 기술 덕분”이라고 말한다. 스마트팜은 비닐하우스, 유리온실, 축사 등에 정보통신기술(Information Communication Technologies, ICT)을 접목해 원격 및 자동으로 작물이나 가축의 생육 환경을 적정하게 유지하고 관리할 수 있는 농장이다. 4차 산업혁명 기술 발달에 힘입어 스마트팜의 수가 증가해왔지만, 이를 게임과 연동시킨 것은 ‘바나나하우스’가 거의 최초다.
‘최초’의 시스템인 만큼, 안정훈 대표는 펀딩을 진행할 플랫폼을 찾는 데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첨단 콘셉트를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소비자들이 포진한 곳이라야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고, 마침내 와디즈를 택했다. 그의 판단 그대로, 혁신적인 프로젝트와 얼리어답터 간의 생태계를 탄탄히 구축해온 와디즈는 바나나하우스에 걸맞은 최상의 플랫폼이었다. 와디즈 측의 역할도 컸다. 프로젝트 별로 배정된 담당 PD들이 ‘서포터’라 불리는 펀딩 참여자가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를 작성에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것이다. 그 결과, 바나나하우스는 1천2백5십만 원을 목표 금액으로, 2021년 6월 13일 프로젝트를 오픈한 이래 1달이 채 되지 않아 104%를 달성했다.
서포터들에게 스마트팜 초대권을 제공한 것도 주효했다. 주로 가족단위인 서포터들은 전화예약을 통해 제주도 김녕에 있는 ‘스마트 R&D’와 서귀포 ‘팜랩올레’를 방문해 ‘나의 바나나 나무 찾기’, ‘바나나를 활용한 브런치 만들기’ 등의 체험 프로그램을 즐기며 열띤 반응을 보였다.

현실과 가상을 잇는 바나나하우스,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농생명에 대한 이해도 높여

‘바나나하우스’에는 (주)셈스게임즈의 철학과 비전이 그대로 담겨있다. 2012년 10월 창립한 이래, (주)셈스게임즈는 어린이 대상 게임과 교육용 앱을 개발해왔다. 특히 게임이나 앱 단독으로 서비스하는 것은 물론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AR)을 활용해 실제 완구나 교구와 연동시키거나 고객의 요청에 따라 디지털 콘텐츠를 실물로 만들어 제공하는 시스템 구축에 힘썼다.

“저희 회사는 창업 이래 꾸준히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융합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 왔습니다. 온라인 서비스가 가진 확산과 파급 효과에 오프라인이 가진 진정성과 휴머니즘의 접점을 찾는 것이 목표였죠. 바나나하우스는 이전까지의 작업에서 한발 더 나가기 위해 작년 초에 시작한 실험 프로젝트입니다. 직접 바나나 나무를 키우는 과정에서 농·생명과 정보통신기술(ICT)에 대해 사용자가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면 저희에게도 의미가 클 것 같았습니다.”

안정훈 대표는 “제주도에서 1천 그루의 바나나 나무를 재배하면 약 23톤의 탄소를 저감할 수 있고, 약품 처리를 하지 않아 향과 맛이 뛰어나다는 점에 동감했습니다”라며 ‘바나나’를 첫 작물로 선택하게 된 배경을 설명한다. 마침 (주)셈스게임즈에는 농장과 게임을 연결하는 데 힘이 될 만한 파트너도 있었다. 제주에서 바나나 스마트팜을 운영해온 (주)제이디테크 김희찬 대표다. 휴대용 DJ기기 사업을 하다 고향 제주로 돌아간 김희찬 대표는 2년여에 걸쳐 스마트팜과 관련한 기술을 공부했다. 그리고 2019년부터 1만여 평 규모의 스마트팜을 열었고 그중 1천 평의 온실은 R&D팜으로 운영 중이다. 덕분에 (주)셈스게임즈는 바나나하우스를 통해 현실과 가상을 잇는 메타버스, 시민 참여를 통한 크라우드 펀딩, 탄소 총량 중립을 동시에 실현해냈다. 하지만 바나나하우스가 뜨거운 지지를 받은 것은 ‘가치’와 ‘재미’를 동시에 추구한 덕분이다.

“펀딩 서포터들은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바나나하우스’ 앱을 다운로드한 후, 이메일로 발급된 게임 코드를 입력해 게임에 참여합니다. 게임 실행 후 실제 나무와 1:1로 매칭된 바나나 나무를 분양받고, 앱에 내장된 만보기로 걸음 수를 모아서 스마트팜을 관리하는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습니다. 이 에너지를 활용해 나무를 키우는 데 필요한 빛, 공기, 물, 온도를 게임 속 드론으로 컨트롤하는 것이죠. 에너지가 부족하면 걸음 수를 늘리고, 벌레가 생기면 주기적으로 잡으며 약 90일 동안 바나나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요. 그러니 애정을 갖고 나무를 키우며 직간접적으로 농부의 마음도 체험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이 정도면 성공한 셈 아니냐”라는 질문에 안정훈 대표는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고 답한다. 바나나 나무의 시뮬레이션이나 스마트팜의 사실적 재현, 게임을 지속하게 하는 요소 등을 보충하며 고도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분야 별 전문가와 거버넌스 만들며
가상과 현실의 균형 추구할 것

여세를 몰아 (주)셈스게임즈는 지난 10월, (주)에그코리아(대표이사 홍석진)와 업무협약을 맺고 스마트 계사(鷄舍)를 테마로 한 ‘에그하우스’ 출시를 예고했다. (주)에그코리아가 운영 중인 친환경 체험농장과 연계해, 게임 속에서 닭을 키우고 친환경 계란을 정기 구독하는 새로운 모델을 출시하기 위해서다. 같은 맥락에서 안정훈 대표는 도시와 농촌, 소비자와 농업인이 참여하는 메타팜을 실현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전했다. 요즘 가장 강력한 화두인 ESG와 메타버스 트렌드에 발맞추겠다는 의지다.

“저희 회사는 10명 미만의 소규모 소프트웨어 개발사지만, 꿈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희처럼 작은 조직이 혁신하고 가치를 창출하려면 다양한 전문가들과의 거버넌스가 필수입니다. 농장이 없어 (주)제이디테크와 협업하고, 소비자를 만나기 위해 와디즈의 문을 두드린 것처럼요. 이렇게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하면 세상에 없던 비즈니스 모델이 하나, 둘 생겨나지 않을까요? 메타버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메타버스는 수많은 혁신가들을 통해 현실을 회피하는 방식이 아니라 더 빛나게 하는 기술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봅니다. 창업 당시부터 세운 저희 회사의 철학과도 맞아떨어지니, 향후에도 메타팜을 활용한 서비스들을 개발 및 보급하고 싶습니다.”

이렇듯 새로운 트렌드와 기술 도입에 적극 나서왔지만, 안정훈 대표가 (주)셈스게임즈의 핵심을 잊는 법은 없다. 중심 고객인 어린이들이 디지털 콘텐츠를 건강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디지털과 현실 사이의 균형을 추구하는 것이다. 비대면 서비스에 대한 요구가 아무리 증가해도 대면 서비스가 주는 가치를 대신할 수 없기에 대면, 즉 오프라인을 더 빛낼 수 있는 접점 마련에 온라인을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메타버스’라는 단어가 인구에 회자되기 시작하면서 한편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내왔다. 다양한 전문가들과 거버넌스를 구축해 현실과 가상을 동시에 풍요롭게 해온 (주)셈스게임즈의 사례가 더욱 각별하게 여겨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