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샌디에고시, 포틀랜드시, 로스앤젤레스시 등은 지역인구와 경제, 자연재해, 범죄분포 등 다양한 정보를 축적한 인터넷 GIS를 구축하고 다방면에 활용한다. 이러한 인터넷 GIS는 개인의 일상생활은 물론 사회가 원활하게 운영되는 데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된다. 그런데 이렇게 유용한 정보의 시스템 구축은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미국 인터넷 GIS가 정착된 배경과 현재의 영향력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오리곤주를 클릭 한번으로 한눈에


한국 기업이 급하게 미국 오리곤주에 사무실을 열어야 한다면, 인터넷에서 ‘oregonprospector.com’을 찾아보길 권한다. 검색 기능의 첫머리에 건물 항목이 나온다. 원하는 사무실 크기를 지정하고 임대할 것인지, 부동산을 매입할 것인지 선택한다. 그 다음은 유형을 지정한다. 사무실로 쓸 것인지 콜센터나 물류창고로 사용할 것인지 고른다. 이제 ‘검색(Search)’ 단추를 누르면 조건에 맞는 건물이 인터넷 지도에 표시된다.

인터넷 지도에 떠오른 검색 결과 중 하나를 선택했다. 기본 메뉴 중에서 지역정보를 클릭한다. 건물이 위치한 지역의 배후인구, 인종구성, 사업체 분포 등 다양한 센서스 정보를 열람할 수 있다. 만약 이런 서비스가 없다면 상당한 시간을 쏟아야 얻을 수 있는 정보들이다. 누구에게 이런 정보를 물어야 하며 과연 그 정보는 신뢰할 수 있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사실 오리곤주가 인터넷으로 서비스 하는 정보는 한국에서도 모두 구현 가능하다. 이런 정도의 서비스에 놀랄 사람이 과연 있을까? 너무 간단하고 세련미도 부족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아직은, 국내에서 동일한 서비스를 찾기란 쉽지 않다.

누구를 위한 지리정보 서비스인가?


이유는 간단하다. 서비스의 초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지역정보를 서비스 하는 기관의 의도와 관행을 중요하게 여긴다. 다시 말해 서비스의 초점이 제공자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다. 미국에서 인터넷 지리정보 서비스는 사용자에게 초점이 맞춰진 경우가 많다. 사용자 입장에서 이용하기 편리한가? 사용자들이 원하는 정보는 무엇인가? 여러 곳을 헤매지 않고 한곳에서 필요한 정보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에 확실한 대답을 할 수 있는 결과만을 서비스에 반영한다. 동일한 기술이지만 방향은 완전히 다르다.

과학과 기술, 그 간극에 대해


세계에서 지리정보 기술의 선두주자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미국이라고들 말한다. 그런데 왜 미국인가? 이유를 물으면 대답은 다양하다. 땅덩어리가 넓으니 면적이 좁은 나라보다 지리정보가 절실했다는 해석도 있다. 그런데 미국보다 더 넓은 면적을 가진 나라들도 있지만 그 나라에서 지리정보가 더 발전했다는 증거를 찾기는 어렵다. 우주항공 산업의 발전과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라는 역사적 안목이 담긴 답변도 들을 수 있다. 20세기에 우주항공 산업에서 치열하게 경쟁한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독일이 떠오른다.
미국이 지리정보와 인터넷 산업에서 선도력을 확보한 배경을 자연환경과 역사적 배경 두 가지만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까? 조금 다른 시선을 만난 적이 있다. 지식과 정보에 관한 근본 태도로 미국과 영국을 분석했는데, 이 기준에 따르면 미국의 행보가 설득력을 얻는다. 영국은 대항해시대에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추격하던 후발주자였다. 하지만 선도자를 물리치고 18세기부터 패권을 장악해 역사를 주도했다.

미국에서 인터넷 지리정보 서비스는 사용자에게 초점이 맞춰진 경우가 많다. 사용자 입장에서 이용하기 편리한가? 사용자들이 원하는 정보는 무엇인가? 여러 곳을 헤매지 않고 한곳에서 필요한 정보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에 확실한 대답을 할 수 있는 결과만을 서비스에 반영한다.

그런데 19세기 압도적인 지배력을 가졌던 영국은 왜 20세기부터 하락하기 시작했을까? 영국보다 훨씬 뒤늦게 산업화에 합류한 미국은 어떻게 지금까지 새로운 선도자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을까?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의 해석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그는 이렇게 질문한다. “영국을 대표하는 공과대학이 떠오릅니까? 영국은 식민지였던 인도에도 훌륭한 공과대학을 여러 개 설립했지만 본토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무슨 의도가 담긴 질문인가? 영국에서 ‘과학’은 귀족처럼 우대받고, ‘기술’은 평민처럼 하대를 당했다는 지적이다.
드러커는 ‘과학’과 ‘기술’이 근본적으로 ‘지식’이라는 공통의 기반 위에 자란 두 그루의 나무와 같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과학’과 ‘기술’ 중 무엇이 더 우월한지 따지는 것은 어리석다고 덧붙인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지식이 향하는 방향성이 무엇인지 주목했다. ‘과학’은 근본적으로 질문에 답을 하는 방향성을 갖는다. 그렇기에 지식의 보편성과 완성을 추구한다.
왜 지리정보는 미국에서 부흥을 이루었나?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과학적 탐구력을 발휘해야 한다. 모두가 납득할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기술’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식의 적용에 초점을 둔다. 미국의 지리정보가 분야별로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이유이다. ‘과학’은 보편적 타당성을 지향하고 ‘기술’은 구체적 실용성을 추구한다.

실사구시와 설중송탄을 아십니까?


미국은 영국과 비교할 때 ‘과학’의 보편성과 ‘기술’의 실용성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영국을 추월했고 압도했다. ‘과학’만 우대하거나 ‘기술’만 편애하지 않았다. 둘이 서로 협력하는 문화를 구축했다. 미국을 대표하는 공과대학을 떠올려보자. MIT, 칼텍, 조지아텍 등 거의 모든 주마다 기술을 중시하는 공과대학이 즐비하다. 미국을 대표하는 공과대학 가까이는 과학 분야가 함께 협력하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미국을 대표하는 선도기업 CEO들의 전문성을 살펴보면 기술 분야 전공자 비율이 매우 높다. 미국의 기술 중시 문화는 우리 역사에서 충분히 꽃을 피우지 못한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태도를 떠올리게 한다. 오리곤주의 지리정보 서비스에서 우리가 주목할 사항은 서비스의 기술적 완성도가 아니라 서비스의 방향성이다. 사용자를 중심에 둔 지식과 정
보에 초점이 있다. 실사구시를 잘 표현한 사자성어 중에서 설중송탄(雪中送炭)이 있다. ‘눈 속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절실한 것은 비단 옷이 아니라 땔감과 연료’라는 의미다. 가장 절실한 문제에 주목해 지식을 적용하려는 의지가 ‘기술’의 근본 속성이다.

다른 눈으로 새 것을 보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초반부에는 청나라의 작은 도시가 나온다. 연암이 벽돌을 구워 성벽을 세운 것을 보고 깊이 감탄한다. 조선은 돌을 깎아 성벽을 만들어왔다. 그는 벽돌과 돌로 성벽을 쌓을 때의 장단점을 비교하고 분석한다. 연암의 분석력은 훗날 자신의 관할지에서 직접 벽돌로 건물을 짓는 실험으로 연결된다. 정조는 그의 실험을 격려했다. 훗날 수원 화성을 건축할 때 최초의 벽돌공법이 적용된다. 연암이 들여온 것은 벽돌 제조법인가? 그 이상이다. 성벽을 대하는 새로운 사고법이었다. 익숙한 것을 다른 눈으로 살펴 새 것을 적용하는 관점이었다. 연암 박지원이 학식 높은 이광려와 토론할 기회가 있었다. “그대는 평생 독서했는데 아는 글자가 몇이나 됩니까?” 연암이 물었다. “겨우 서른 자 남짓 아는 것 같군요.” 이광려가 대답했다. 그날로 두 사람은 지기(知己)가 되었다. 지리정보를 다룬지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다. 연암의 질문을 나에게 던져 보았다. 다시 지리정보의 근본에 대해서 생각해보려 한다. 센서스, 지도, 인터넷으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중요하지만 아직 제공되지 않은 절박한 가치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