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의 공간 :
심리적
거리감이 — 
존재한다!

PERSONAL
PLACE*

경쟁의 공간 :
심리적
거리감이 — 
존재한다!

PERSONAL
PLACE*

좁은 엘리베이터는 낮선 사람과 함께 있을 때면 스트레스를 받게 하는 공간이다. 이와는 반대로 환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치유에 도움이 되는 병실이나 창의성을 높여주고 행복을 키워주는 공간, 일의 능률을 높여주는 생활공간도 있다. 머물고 있는 공간이 단순한 건축공간이 아닌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는 사례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Writer. 범상규(공간심리학자, 건국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공간은 단순히 물리적인 차원만이 아닌
심리적인 차원에서의 생존 경쟁을 위한
장이란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공간은 생존 경쟁의 장

하루에도 몇 번씩 이용하는 한 평 남짓의 엘리베이터 공간을 떠올려 보라! 그 공간에 덩그러니 혼자 있을 때는 거울 속 옷매무새를 살피는 여유를 보이다가도 낮선 누군가의 등장은 사무적이고 방어적이 된다. 일곱 살 유치원 꼬마에게는 악의가 없다는 의미로 애써 웃음을 띠우기도 하지만 처음 본 이웃에게는 ‘내 존재는 잊어줘!’라며 빨간 숫자판이나 광고에 눈을 고정시킨다. 스마트폰이 없던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지하철은 다양한 광고물로 도배를 하다시피 했다. 서로가 어색한 지하철 공간에서 서로 눈이 마주치는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애써 광고물을 쳐다보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낮선 이에 대한 시선에 대한 대응뿐만 아니라 차지하는 공간도 제각각이다. 주도권을 잡고 싶을 요량인 사람은 엘리베이터 가운데에 딱 버티고 자리 잡는다. 또 중간에 타면서 1층 버튼을 다시 한 번 눌러보는 행동은 무의식적이지만 ‘나는 당신의 의도대로 순순히 따르지 않을 거야!’라는 ‘독립된 자아’의 표출이기도 하다. 반대로 1층을 누르지 않고 그대로 있다면 상대방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내는 제스처일 것이다. 엘리베이터 공간은 이미 일상적이지만 그만큼 심리적 스트레스는 더 다양화 된다. 공간은 단순히 머무는 곳이 아닌 ‘경쟁’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공간은 엘리베이터처럼 무심코 했던 우리들의 행동 속에 숨겨진 심리적인 이면들을 담고 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기 위해 약속 장소인 레스토랑에 들어가고 있다고 하자. 다행히도 점심시간을 피한 탓에 레스토랑 안은 자리가 여유롭다. 친구보다 먼저 도착한 당신이라면 어디에 앉을 것인가? 대로변이 잘 보이도록 커다란 통유리로 된 창가 자리는 어떤가, 한 가운데 놓여있어 친구를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편안한 소파는 어떨까, 아니면 벽을 등진 구석 자리라면 좀 더 아늑해 보이지 않을까. 아마도 가운데보다는 구석 자리를 선호할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다. 그 이유를 진화심리학 관점에서 살 펴보면, 원시시대 동굴 속에서 생활해 오던 습성이 본능적으로 구 석진 자리를 선택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적으로부터 나를 보호할 수 있도록 벽을 등지고 앞을 훤히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다. 공간과 관련된 진화적 기재인 경쟁에 관해 2000년 발표된 연구논문을 살 펴보면, 사람은 성별에 따라 다른 전략을 사용한다. 미국 UCLA대 학교의 셸리 테일러 교수 등은 남자들은 ‘전투 아니면 도피’ 성향인 반면, 여자들은 ‘배려와 친교’ 성향을 보인다고 한다. 수컷붉은털 원숭이 두 마리가 한 우리에 갇혀 있다면 아마도 싸울 확률이 높지 만, 암컷들인 경우 서로 털을 골라주는 행동을 하며 긴장을 풀려고 할 것이다. 막무가내로 싸움을 거는 개체들이라면 생존의 확률이 낮고 자손 번식에 실패할 가능성은 높기 때문이다. 같은 공간이라 하더라도 여자들은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 자신에게 닥칠지도 모를 위험을 감지하려하는 반면, 남자들은 대놓고 기선 제압을 위해 말 보다는 행동을 앞세운다. 즉 여자는 말투에서 상대의 심리를 읽고, 남자는 행동에서 그것을 읽는 데 능숙하게 진화되었다.

개인적 공간은 스트레스 유발과 직결

경쟁의 공간에 대한 체감도는 동물세계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요즘 동물원은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동물 들의 주거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있다는 점이다. 요즘 추세는 사람들이 관람하기 좋게 일방적으로 동물사육장을 설계하던 과거와는 다르게 좀 더 동물들을 위한 관점에서 설계되고 있다. 하 지만 애초에 동물들이 살던 환경을 그대로 재현해 주는 것이 최선 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그래도 아프리카 초 원의 생태환경을 비슷하게 꾸민 생태형 사파리는 좋은 대안일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일본 홋카이도 아사히카와에 있는 아사히야 마동물원을 들 수 있다. 한적한 곳에 위치한 탓으로 한 때 폐원 위기 에 몰렸던 이 동물원은 동물의 행동을 다양한 각도에서 보여주는 ‘ 행동전시’ 프로그램을 개발함으로써 전국 각지에서 찾아오며 재방 문율이 가장 높은 동물원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우리들에겐 펭귄 이 하늘을 나는 동물원으로 유명한 바로 그곳이다.
물론 불행히도 대다수의 기존 동물원들은 그렇지 않다. 공간에 대 한 왜곡된 설계는 동물들에게 공간 때문에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 게 만든다. 만약 당신이 초식동물인 기린이나 낙 타라고 상상해 보라. 당신이 드넓은 초원이 아닌 인위적인 사파리 안에서 살고 있고 가정한다면, 나름 괜찮은(?) 환경에 살고 있다는 자부심이 드 는 순간 본능적으로 불길한 직감을 떨쳐버리기 어려울 것이다. 불과 몇 십 미터 건너편에 사자 와 호랑이들이 거주하는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기린이나 낙타는 자신들의 천적인 사자나 호랑 이의 체취를 느끼면서도 도망갈 수 없다. 이런 스 트레스는 본능이지만 순전히 관람객 편의를 위한 공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참 잔 인하지 않는가? 위험을 직감하면서도 언제 어떻 게 닥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매일 매일을 살아가야 한다니 말이다.

최소한의 생존에 필요한
물리적 혹은 심리적 공간이 주어질 때
비로소 개인이나 조직은
안정감을 갖게 된다.

기린처럼 현대의 문명화된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들도 다르지 않 다. 기린이 사자로부터 생명의 위험을 느끼던 그 공간처럼 인간들 도 위험을 느끼는 공간개념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인류학자인 에드워드 홀이 50년 전에 제시한 개념이 있다. 홀에 따르면, 인간 은 ‘개인적 공간(Personal Space)’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호랑이 가 자신의 채취를 남겨두는 영토 개념과 같다. 구체적으로 개인 공 간을 4가지 차원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가장 가까운 친밀한 거리는 18인치(약 46cm) 이내, 사적인 거리는 4피트(약 1.2m) 이내, 사 무적 인간관계가 이루어지는 사회적 거리는 30피트(약 3.6m) 이 내, 그리고 이보다 멀어질 때는 공적 거리이다. 모르는 상대가 사적 인 거리인 4피트 안으로 접근하면 긴장하며 스트레스를 받지만, 연 인이나 가족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4피트 이상 멀어지면 오히려 관 계가 멀어지는 것을 걱정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길거리의 매장 들도 상권이라는 물리적 공간이 존재할 때 영업이 이루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또 북반구의 사람들은 남반구에 비해 서로간의 거리 가 상대적으로 좁은 편이다. 동아시아나 유럽 등 북반구에서는 상 대방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무례가 아니지만, 더운 남반구 사람들에게는 불쾌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팔짱끼고 다니길 좋아하는 우리나라 여성들을 보는 서양인들의 시선도 공간 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의 결과물이라 할 만하다.

사회적 차원에서 심리적 거리감

특히 사회적 활동과 관련된 공간은 매우 중요하며, 사회적 차원 에서의 심리적 거리감으로 나타난다. 심리적 거리감은 회사나 조직 내의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 활동에도 큰 영향을 준다. 즉 권위적인 조직일수록 구성원과 상사간의 관계에서 심리적 거리 감이 멀어지게 느낀다. 이를 설명하는 이론이 ‘켈의 법칙’이다. 이에 따르면, 동료 간 거리가 1이라면 부하직원과 바로 윗 상사 와의 거리는 2가 되고, 이때의 심리적 거리감은 2가 아닌 4가 된다. 이는 직급이 한 단계씩 멀어질수록 심리적 거리감은 제 곱으로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무실에서 동료는 가급적 가 까이, 부장님은 가급적 멀리 있기를 원하는 이치다. 문제는 눈 치 없는 부장님이 직원들과의 소통을 한답시고 자꾸 가까이 다 가온다는 점이다. 이럴 땐 소통보다는 스트레스로 인한 외면이 더 빠르게 나타날 것이다. 심리적 거리감과 관련한 스트레스는 단순히 물리적 공간에서만 있는 건 아니며 SNS처럼 가상공간 에서도 나타난다. 회사에서는 상사, 시집에서는 시누이가 SNS 에 연결되어 있다면 홀이 언급한 개인적 공간을 빼앗긴 느낌과 같을 것이다. 또한 구성원의 동질성 여부에 따라서도 심리적 거 리감은 달라진다. 최근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외국인에 대 한 사회적 거리감에 있어서 남성은 일본, 여성은 새터민에게 가 장 큰 사회적 거리감을 느끼고 있다. 반면 남성은 조선족, 여성 은 조선족과 미국인에게 사회적 거리감이 가장 낮아 높은 친밀 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사회 속에서의 인간관계 라는 ‘가상공간’은 개개인의 생존을 넘어 조직차원의 효율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공간은 단순히 물리적인 차원만이 아닌 심리적인 차원에서의 생존경쟁을 위한 장이란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최소한의 생 존에 필요한 물리적 혹은 심리적 공간이 주어질 때 비로소 개인 이나 조직은 안정감을 갖게 된다. 무엇보다도 현대사회는 SNS 등 가상공간에서의 경쟁이 물리적 공간 못지않게 중요시되는 추세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경쟁의 장으로써 ‘공 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때 비로소 개인은 물론 조직과 사 회적 성과가 보장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좁은 엘리베이터는 낮선 사람과 함께 있을 때면 스트레스를 받게 하는 공간이다. 이와는 반대로 환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치유에 도움이 되는 병실이나 창의성을 높여주고 행복을 키워주는 공간, 일의 능률을 높여주는 생활공간도 있다. 머물고 있는 공간이 단순한 건축공간이 아닌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는 사례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Writer. 범상규(공간심리학자, 건국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공간은 단순히 물리적인 차원만이 아닌
심리적인 차원에서의 생존 경쟁을 위한
장이란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공간은 생존 경쟁의 장

하루에도 몇 번씩 이용하는 한 평 남짓의 엘리베이터 공간을 떠올려 보라! 그 공간에 덩그러니 혼자 있을 때는 거울 속 옷매무새를 살피는 여유를 보이다가도 낮선 누군가의 등장은 사무적이고 방어적이 된다. 일곱 살 유치원 꼬마에게는 악의가 없다는 의미로 애써 웃음을 띠우기도 하지만 처음 본 이웃에게는 ‘내 존재는 잊어줘!’라며 빨간 숫자판이나 광고에 눈을 고정시킨다. 스마트폰이 없던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지하철은 다양한 광고물로 도배를 하다시피 했다. 서로가 어색한 지하철 공간에서 서로 눈이 마주치는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애써 광고물을 쳐다보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낮선 이에 대한 시선에 대한 대응뿐만 아니라 차지하는 공간도 제각각이다. 주도권을 잡고 싶을 요량인 사람은 엘리베이터 가운데에 딱 버티고 자리 잡는다. 또 중간에 타면서 1층 버튼을 다시 한 번 눌러보는 행동은 무의식적이지만 ‘나는 당신의 의도대로 순순히 따르지 않을 거야!’라는 ‘독립된 자아’의 표출이기도 하다. 반대로 1층을 누르지 않고 그대로 있다면 상대방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내는 제스처일 것이다. 엘리베이터 공간은 이미 일상적이지만 그만큼 심리적 스트레스는 더 다양화 된다. 공간은 단순히 머무는 곳이 아닌 ‘경쟁’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공간은 엘리베이터처럼 무심코 했던 우리들의 행동 속에 숨겨진 심리적인 이면들을 담고 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기 위해 약속 장소인 레스토랑에 들어가고 있다고 하자. 다행히도 점심시간을 피한 탓에 레스토랑 안은 자리가 여유롭다. 친구보다 먼저 도착한 당신이라면 어디에 앉을 것인가? 대로변이 잘 보이도록 커다란 통유리로 된 창가 자리는 어떤가, 한 가운데 놓여있어 친구를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편안한 소파는 어떨까, 아니면 벽을 등진 구석 자리라면 좀 더 아늑해 보이지 않을까. 아마도 가운데보다는 구석 자리를 선호할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다. 그 이유를 진화심리학 관점에서 살 펴보면, 원시시대 동굴 속에서 생활해 오던 습성이 본능적으로 구 석진 자리를 선택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적으로부터 나를 보호할 수 있도록 벽을 등지고 앞을 훤히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다. 공간과 관련된 진화적 기재인 경쟁에 관해 2000년 발표된 연구논문을 살 펴보면, 사람은 성별에 따라 다른 전략을 사용한다. 미국 UCLA대 학교의 셸리 테일러 교수 등은 남자들은 ‘전투 아니면 도피’ 성향인 반면, 여자들은 ‘배려와 친교’ 성향을 보인다고 한다. 수컷붉은털 원숭이 두 마리가 한 우리에 갇혀 있다면 아마도 싸울 확률이 높지 만, 암컷들인 경우 서로 털을 골라주는 행동을 하며 긴장을 풀려고 할 것이다. 막무가내로 싸움을 거는 개체들이라면 생존의 확률이 낮고 자손 번식에 실패할 가능성은 높기 때문이다. 같은 공간이라 하더라도 여자들은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 자신에게 닥칠지도 모를 위험을 감지하려하는 반면, 남자들은 대놓고 기선 제압을 위해 말 보다는 행동을 앞세운다. 즉 여자는 말투에서 상대의 심리를 읽고, 남자는 행동에서 그것을 읽는 데 능숙하게 진화되었다.

개인적 공간은 스트레스 유발과 직결

경쟁의 공간에 대한 체감도는 동물세계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요즘 동물원은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동물 들의 주거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있다는 점이다. 요즘 추세는 사람들이 관람하기 좋게 일방적으로 동물사육장을 설계하던 과거와는 다르게 좀 더 동물들을 위한 관점에서 설계되고 있다. 하 지만 애초에 동물들이 살던 환경을 그대로 재현해 주는 것이 최선 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그래도 아프리카 초 원의 생태환경을 비슷하게 꾸민 생태형 사파리는 좋은 대안일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일본 홋카이도 아사히카와에 있는 아사히야 마동물원을 들 수 있다. 한적한 곳에 위치한 탓으로 한 때 폐원 위기 에 몰렸던 이 동물원은 동물의 행동을 다양한 각도에서 보여주는 ‘ 행동전시’ 프로그램을 개발함으로써 전국 각지에서 찾아오며 재방 문율이 가장 높은 동물원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우리들에겐 펭귄 이 하늘을 나는 동물원으로 유명한 바로 그곳이다.
물론 불행히도 대다수의 기존 동물원들은 그렇지 않다. 공간에 대 한 왜곡된 설계는 동물들에게 공간 때문에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 게 만든다. 만약 당신이 초식동물인 기린이나 낙 타라고 상상해 보라. 당신이 드넓은 초원이 아닌 인위적인 사파리 안에서 살고 있고 가정한다면, 나름 괜찮은(?) 환경에 살고 있다는 자부심이 드 는 순간 본능적으로 불길한 직감을 떨쳐버리기 어려울 것이다. 불과 몇 십 미터 건너편에 사자 와 호랑이들이 거주하는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기린이나 낙타는 자신들의 천적인 사자나 호랑 이의 체취를 느끼면서도 도망갈 수 없다. 이런 스 트레스는 본능이지만 순전히 관람객 편의를 위한 공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참 잔 인하지 않는가? 위험을 직감하면서도 언제 어떻 게 닥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매일 매일을 살아가야 한다니 말이다.

최소한의 생존에 필요한
물리적 혹은 심리적 공간이 주어질 때
비로소 개인이나 조직은
안정감을 갖게 된다.

기린처럼 현대의 문명화된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들도 다르지 않 다. 기린이 사자로부터 생명의 위험을 느끼던 그 공간처럼 인간들 도 위험을 느끼는 공간개념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인류학자인 에드워드 홀이 50년 전에 제시한 개념이 있다. 홀에 따르면, 인간 은 ‘개인적 공간(Personal Space)’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호랑이 가 자신의 채취를 남겨두는 영토 개념과 같다. 구체적으로 개인 공 간을 4가지 차원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가장 가까운 친밀한 거리는 18인치(약 46cm) 이내, 사적인 거리는 4피트(약 1.2m) 이내, 사 무적 인간관계가 이루어지는 사회적 거리는 30피트(약 3.6m) 이 내, 그리고 이보다 멀어질 때는 공적 거리이다. 모르는 상대가 사적 인 거리인 4피트 안으로 접근하면 긴장하며 스트레스를 받지만, 연 인이나 가족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4피트 이상 멀어지면 오히려 관 계가 멀어지는 것을 걱정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길거리의 매장 들도 상권이라는 물리적 공간이 존재할 때 영업이 이루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또 북반구의 사람들은 남반구에 비해 서로간의 거리 가 상대적으로 좁은 편이다. 동아시아나 유럽 등 북반구에서는 상 대방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무례가 아니지만, 더운 남반구 사람들에게는 불쾌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팔짱끼고 다니길 좋아하는 우리나라 여성들을 보는 서양인들의 시선도 공간 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의 결과물이라 할 만하다.

사회적 차원에서 심리적 거리감

특히 사회적 활동과 관련된 공간은 매우 중요하며, 사회적 차원 에서의 심리적 거리감으로 나타난다. 심리적 거리감은 회사나 조직 내의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 활동에도 큰 영향을 준다. 즉 권위적인 조직일수록 구성원과 상사간의 관계에서 심리적 거리 감이 멀어지게 느낀다. 이를 설명하는 이론이 ‘켈의 법칙’이다. 이에 따르면, 동료 간 거리가 1이라면 부하직원과 바로 윗 상사 와의 거리는 2가 되고, 이때의 심리적 거리감은 2가 아닌 4가 된다. 이는 직급이 한 단계씩 멀어질수록 심리적 거리감은 제 곱으로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무실에서 동료는 가급적 가 까이, 부장님은 가급적 멀리 있기를 원하는 이치다. 문제는 눈 치 없는 부장님이 직원들과의 소통을 한답시고 자꾸 가까이 다 가온다는 점이다. 이럴 땐 소통보다는 스트레스로 인한 외면이 더 빠르게 나타날 것이다. 심리적 거리감과 관련한 스트레스는 단순히 물리적 공간에서만 있는 건 아니며 SNS처럼 가상공간 에서도 나타난다. 회사에서는 상사, 시집에서는 시누이가 SNS 에 연결되어 있다면 홀이 언급한 개인적 공간을 빼앗긴 느낌과 같을 것이다. 또한 구성원의 동질성 여부에 따라서도 심리적 거 리감은 달라진다. 최근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외국인에 대 한 사회적 거리감에 있어서 남성은 일본, 여성은 새터민에게 가 장 큰 사회적 거리감을 느끼고 있다. 반면 남성은 조선족, 여성 은 조선족과 미국인에게 사회적 거리감이 가장 낮아 높은 친밀 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사회 속에서의 인간관계 라는 ‘가상공간’은 개개인의 생존을 넘어 조직차원의 효율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공간은 단순히 물리적인 차원만이 아닌 심리적인 차원에서의 생존경쟁을 위한 장이란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최소한의 생 존에 필요한 물리적 혹은 심리적 공간이 주어질 때 비로소 개인 이나 조직은 안정감을 갖게 된다. 무엇보다도 현대사회는 SNS 등 가상공간에서의 경쟁이 물리적 공간 못지않게 중요시되는 추세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경쟁의 장으로써 ‘공 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때 비로소 개인은 물론 조직과 사 회적 성과가 보장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