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하고 예방하며

안전한 삶을 지킨다

이근호 경위·성남분당경찰서 CPO

글.최주연 사진.이성원

‘경찰’ 하면 끈질긴 추적 끝에 범인을 체포하는 모습부터 상상된다. 하지만 8년째 범죄에방진단경찰관으로 일하고 있는 성남분당경찰서 이근호 경위는 일반 경찰과는 다소 다른 업무를 한다. 범죄 데이터를 분석하거나 관할 지역을 둘러보며 범죄취약지역을 파악하고,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까지 고심하고 끝내 실현해내는 것이다. 도시 환경을 바꿔 범죄를 방지하고 불안감을 줄이는 범죄예방환경설계(CPTED)와 그 실현에 앞장서고 있는 범죄예방진단경찰관의 업무에 대해 이근호 경위에게 들어 보았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과
범죄예방 환경설계

1969년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 심리학과 필립 짐바르도 교수가 흥미있는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유리창이 깨진 자동차를 거리에 방치한 결과, 행인 중 몇몇은 자동차 부품을 훔쳐 갔고 또 다른 몇몇은 자동차를 마구 망가뜨렸다는 것이다. 실험 결과에 깊은 인상을 받은 두 사람의 범죄학자는 ‘깨진 유리창’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사소한 문제 하나를 방치하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라는 사실을 널리 알렸다. 일명 ‘깨진 유리창의 법칙(Broken Windows Theory)’이다. 1994년에는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이 이 법칙을 시정에 적용하며 사후대처가 아닌 사전 차단의 실효성을 알렸다. 범죄의 온상이던 뉴욕 지하철 내의 낙서를 지웠더니 90일 만에 범죄율이 줄어들기 시작해 3년 후에 80%가 감소했다. 동시에 신호위반, 쓰레기 투기와 같은 경범죄를 적극적으로 단속하자 뉴욕시의 강력범죄도 함께 줄어 들었다. 환경 설계를 잘하면 범죄율을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이러한 깨진 유리창의 법칙을 범죄예방에 적극 활용한 것이 범죄예방 환경설계(CPTED: 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 이하 셉테드)다. CCTV 등의 장비, 벽화 등의 디자인을 활용해 범죄가 발붙일 수 없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셉테드는 1970년대 미국에서 시작해 영국과 호주, 일본 등으로 확산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경찰청 주도로 2005년 최초 도입됐다. 경찰력만으로 충당하기 힘든 범행 발생 요인을 제어하기 위해서다. 2005년 전국 최초로 부천시에서 환경개선 사업과 함께 셉테드 사업이 시작된 데 이어 서울시 염리동 소금길, 경기도 범죄예방 환경디자인 조례, 부산시 범죄예방 환경 디자인 사업 등이 추진됐다. 이어 2016년, 경찰청은 보다 적극적으로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범죄예방 진단경찰관(Crime Prevention Officer, 이하 CPO) 제도를 도입했다. 이근호 경위 역시 그때부터 CPO로 일했다.
“이전까지 112 신고 대응 등 범죄예방 파트를 담당하다가 CPO가 됐습니다. 연속성이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낯설기는 했습니다. 대응은 신고 이후 출동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CPO는 범죄 취약지를 미리 파악해서 해당 지역의 환경을 개선하는 일까지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CPO 교육 과정에는 범죄 데이터 분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오프로스(GeoPros)1와 프리카스(Pre-CAS)2 등 경찰에서 기존에 사용하던 프로그램을 더 자세히 익힌 것입니다.”

1. 지오프로스(Geo-Pros): 지리적 프로파일링 시스템으로 공간정보 시스템을 이용해 각종 범죄 현황 및 특정 범죄 다발 지역을 분석, 범죄 예방에 활용하는 기법

2. 프리카스(Pre-CAS): 대한민국 경찰청이 개발하여 운용하는 범죄 위험도 예측·분석 시스템. 격자 개념으로 국가지점번호와 유사다. 범죄 위험도 예측을 통하여 치안 현장에서의 선제적 대응을 지원하고, 지역별 맞춤형 치안 정책을 수립하는 데 활용된다.

범죄취약지역 분석부터 재원 마련까지
발로 뛰며 안전을 설계한다

현재 전국적으로 시·도 경찰청과 경찰서에서 일하는 CPO의 수는 400명이 넘는다. 그중에서도 이근호 경위는 베테랑 중의 베테랑으로 통한다. 일반 경찰관들의 업무와 다른 데다 강도도 높아 오래 버티기 힘든 상황에서 8년 동안 같은 자리를 지켰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근호 경위가 함께 출발했던 CPO 중 다수는 일찌감치 부서를 옮겼다. 근무 강도가 얼마나 다른지 궁금하다는 질문에 이근호 경위는 “경찰의 일상적인 업무에는 프로세스가 있지만 CPO 업무에는 프로세스가 없다”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112 신고가 들어오면 매뉴얼에 맞춰서 처리하거나 사건을 인계하고 혹은 현장에서 잘 해결하면 됩니다. 하지만 CPO 업무는 정형화되어 있지 않아요. 데이터 분석이나 현장 탐방을 통해 범죄취약지역을 찾아냈다면 그 지역을 바꾸기 위해 예산을 만들어야 합니다. 예산을 만들려면 분석 자료를 바탕으로 주민들을 찾아가 어떤 시설물을 설치해야 좋을지 의견을 들어야 하고요. 주민 의견을 수렴한 후의 절차도 쉽지 않아요. 실질적으로 예산을 따기 위해서는 제안서를 만들어 지방자치단체나 기관 등을 찾아다니며 설득해야 합니다.”
말 그대로 CPO가 일을 안 하면 바뀌는 게 없고, CPO가 일을 하면 바뀌는 건 많지만 그만큼 일이 늘어나는 구조다. 더구나 ‘일을 만들기’ 위해서는 야간에 주로 순찰을 돌아야 한다. 범죄가 발생하기 쉬운 때도, 주민이 불안을 느끼기 쉬운 때도 야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근호 경위는 한 주 평균 4회, 18시 이후 관할지역 곳곳을 살핀다. 그래도 지역 전체를 속속들이 알기는 어렵다. 마을 하나를 도는 데만 일주일 이상 걸리는 탓이다.
“CCTV 위치를 점검하고 가로등 등의 조도를 확인하려면 무조건 걸어 다녀야 합니다. 제가 보는 것과 실제 주민들이 느끼시는 게 다를 수 있으니 주민들 의견을 듣는 것도 소홀히 할 수 없고요. 그러다 보면 두세 시간은 풀쩍 지납니다.”
하지만 이근호 경위가 어려움을 느끼는 건 센 업무 강도가 아니라, 범죄예방이나 추적에 실패하는 순간이다. 2021년 분당 서현고 김휘성 군 실종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그랬다. 김 군의 시신이 분당의 한 야산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기까지 경찰은 수사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단서를 찾기가 힘들었다. 김 군이 스마트폰을 소지하지 않아 위치를 추적하기 힘들었던 데다, 서현고 앞에서부터 서현역 중심 대로에 있는 버스 정류장까지 CCTV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이근호 경위는 각 동 행정복지센터의 CCTV 선정위원회에 꾸준히 참석한다. 다중이용시설 등 꼭 필요한 곳에 CCTV를 달아야 한다고 설득하기 위해서다.

셉테드는 쉽게 말해 ‘공간 내에서 범죄를 감소시킬 수 있는 기술적·심리적 환경설계’다. 예를 들어 판교 주택가는 출구 하나를 막으면 동선을 차단할 수 있게 설계됐다. 셉테드를 접목해 출구와 입구를 정한 것이다. 주택가나 아파트 단지 곳곳에 있는 공원이나 체육시설도 셉테드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주민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환경을 살피는 자연적 감시 기능을 높인 것이다.

범죄예방은
주민 삶을 살피는 것부터

반면 구체적인 성과를 확인하며 이근호 경위는 CPO로서 보람과 나아갈 힘을 얻는다. 대표적으로 CPO 활동 이후 분당구는 주택 침입 범죄율이 35%나 감소했다. 1인 여성 가구가 밀집한 지역에 LED 가로등을 설치하는 등 환경을 적극적으로 개선하고 월세 가구에 모니터가 장착된 인터폰 등을 비롯한 홈세트를 지원한 것이 주효했다. 이 과정에서 이근호 경위는 지역 내 한국남동발전과 한국난방공사, 성남시 여성가족과, 사회복지협회 등의 참여를 이끌었다.
셉테드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필요한 기술이나 시스템에 대해 공부하고 도입 가능성을 판단한 후 이를 실현하는 데에도 적극 나서 왔다. 이 경험을 통해 이근호 경위는 셉테드가 꼭 어렵고 복잡한 것만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전기를 끌어 쓸 수 없는 지역에는 태양광을 활용해 조도를 밝히고, 어르신들이 많이 오가시는 계단에 난간을 설치하거나 열선을 까는 등 유니버셜 디자인을 접목하는 것도 넓은 의미의 셉테드입니다. CCTV를 설치하기 힘든 위치에 반사경을 설치하는 것도 마찬가지죠.”
환경의 한계를 극복하며 셉테드를 적용하기 위해 고민하는 사이 아이디어도 많아졌다. 그 중 ‘수고했어 오늘도’, ‘좋은 날이 올 거야’, ‘당신은 소중한 선물’ 등의 메시지와 함께 분당구의 어두운 골목을 비치는 램프등은 이근호 경위의 아이디어가 실현된 사례다. 범죄 욕구를 차단하는 LED 경관 조명기구로, 경찰청 셉테드 두수 사례 공모에서 전국 3위를 차지했다. 이근호 경위는 “따뜻한 메시지로 범죄 욕구를 제어하고 주민을 위로할 수 있을 것 같았다”며, 가장 보람 있는 성과 중 하나로 꼽는다.

현재 도시설계를 비롯한 행정안전부와 국토교통부의 모든 사업에는 셉테드를 적용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경찰과의 협조가 의무 조항은 아닙니다. 때문에 설계 완료 후 공유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범죄예방 관점에서 보면 미흡한 부분이 있곤 하죠. 문제는 그때는 설계를 변경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후 의견 제안이 아니라 설계 단계에 참여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었으면 합니다.

첨단 기술 도입,
주민 참여로 안전 공백 채우길

일선에서 주민의 삶을 살피며 다양한 시스템을 적용해 온 이근호 경위는 범죄 대응을 위해서는 위치정보의 정확도가 높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건이 터지면 기지국 첫째는 기지국, 둘째는 GPS를 확인하는데 최소 100m 반경 내의 위치밖에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블루투스 기반 시스템은 30m까지 확인되지만 기기를 계속 켜두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죠.”
CPO의 관점에서는 AI와 CCTV의 접목 그리고 공공빅데이터 구축을 시급한 문제로 꼽는다. 현재 CCTV에도 공간 내에서 비명 등 음성을 인식하는 기능이 있지만, 이상행동을 감지할 경우 관제센터로 송출하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응급상황이나 범죄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대별 유동 인구나 지역의 조도 등을 빅데이터로 구축하고 공개하는 것도 중요하다. CPO나 경찰의 역할로 채울 수 없는 안전 공백을 주민 스스로 채울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CPO의 길을 걸어왔지만 이근호 경위에게도 갈등의 순간이 있었다. 지면을 빌어 전국의 CPO들에게 응원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이유다.
“대외적으로는 물론이고 같은 경찰서 안에서도 CPO가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각자 업무가 바쁘니까요. 하지만 누가 꼭 알아주지 않더라도 스스로 자부심과 보람을 갖고 꿋꿋이 나가셨으면 합니다. CPO 활동을 통해 주민과 국민 삶이 더 안전해졌다는 객관적인 지표들이 나오고 있으니까요.”
실제로 2019년 경찰청이 셉테드 사업지 주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셉테드를 통해 평균 78.6%의 범죄 예방 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밝혀졌다. 열 감지 센터, LED 조명, 경고 방송 장치, 위치추적시스템 등 첨단 기술을 적용한 스마트 셉테드도 보다 활성화될 전망이다. 무엇보다 위치정보를 기반으로 하는 공간정보 고도화 역시 CPO 업무에 힘을 실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