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 멀미,

진화와 상관이

있다고?

글.이효석 뉴스페퍼민트 대표, 물리학 박사(KAIST)

공간정보를 비롯한 첨단 기술 발달로 우리는 물리적으로 이동하지 않고도 다양한 현실과 공간을 접할 수 있게 됐다. 특히 VR, AR, XR 등을 활용하면 집 안에 앉아 숲속을 거닐거나 유럽의 어느 거리를 걸을 수 있다. 또한 시공간을 초월한 판타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해결해야 할 여러 가지 문제도 있는데, 그중 하나가 VR 멀미다.
VR 멀미는 대체 왜 발생하는 것이며, 어느 정도 해결되었을까?
인류 진화의 관점을 접목해 VR 멀미의 원인과 현황을 살펴보았다.

자신의 기원을 알아낸 유일한 생명체, 인류

물리학에서 공간과 시간은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다. 뉴턴은 대상의 시간에 대한 공간적 이동을 수학적으로 다룸으로써 과학혁명의 기초를 닦았다. 이후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을 같은 성질의 것으로 간주할 수 있음을 보였고 이들이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 서로 상대적인 것임을, 곧 이들을 정의하는 것 자체가 과학의 영역임을 알려주었다. 모든 학문이 시간과 공간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가정한다는 점에서, 이는 물리학이 왜 학문 중의 학문인지를 말해주는 동시에 시간과 공간이 우주를 이해하게 위해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개념임을 보여준 것이라 하겠다.
모든 존재는 시간과 공간에 속박되어 있다. 우주를 구성하는 존재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생명체일 것이며, 이 생명체를 설명하는 가장 멋진 이론은 진화론이다. 오늘날, 우주의 크기에 대한 예상과 생명체가 탄생할 수 있는 조건에 대한 추정은 많은 과학자들로 하여금 이 우주가 수많은 생명체로 가득 차 있을 것임을 예측하게 한다. 생명체는 자신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지능을 가지게 되며 어느 순간 자신의 존재가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 일부는 진화론을 생각해 낼 것이다. 이 우주의 생명체는 그렇게 진화를 이해하고 자신의 기원을 알아낸 존재와 그렇지 못한 존재로 나뉜다. 우리가 아는 한, 인류는 진화를 이해하고 자신의 기원을 알아낸 유일한 생명체이다.

흥미롭게도 VR 멀미는 인간의 진화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VR 멀미의 원인에는 몇 가지 이론이 있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우리의 감각 기관이 서로 다른 정보를 뇌에 전달함으로써 뇌가 혼란을 일으키는 것이 원인이라는 ‘감각 충돌 이론’을 받아들인다.

진화 과정과 인류의 감각

시간과 공간에 속박된 생명체들은 자신의 생존과 번식 확률을 높이기 위해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추구해 왔다. 첫 번째 단계는 5억 년 전 이동을 통해 공간에의 속박을 벗어나 자신에게 보다 나은 환경을 찾아 나선 우리의 조상들이다. 이러한 공간적 이동은 뇌의 탄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멍게의 유생은 올챙이처럼 자유롭게 이동할 때는 뇌와 신경계를 가지고 있다가 성체가 되어 한곳에 정착한 후 뇌를 소화해버린다. 이는 공간의 이동과 뇌가 얼마나 밀접한 관계인지를 말해준다.
이렇게 탄생한 뇌는 마침내 시간과 공간의 속박을 벗어나는 두 번째 단계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곧, 뇌는 언어를 만들어 냈고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가지 못한 곳, 우리가 존재하지 않은 과거와 미래를 경험할 수 있게함으로써 간접적으로나마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여기에는 타인의 상황을 자신의 것인 양 느끼게 해주는 거울 신경의 역할도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미지의 장소에 대한 경험을 쌓았고, 직접 경험하지 않은 과거에서 배울 수 있게 되었으며, 닥치지 않은 미래를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인류는 앞선 두 단계를 바탕으로 과학기술을 발전시킨 결과 이제 시공간을 극복하는 세 번째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곧 언어로 전달되는 이야기가 아닌, 인간이 가진 감각기관 자체가 시공간의 한계와 무관한 자극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VR 멀미를 야기하는 상황은 형태와 대응 방법에 따라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VR 기기 내에서 정지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고개를 돌려 사방을 둘러볼 때 VR 기기가 우리 눈에 보여주어야 하는 화면이 우리의 기대와 달라지는 경우다. 두 번째는 VR 프로그램 내에서 우리가 움직이거나 하늘을 나는 등 이동할 때 발생하는 것으로, 기술의 발전이 아닌 우리의 적응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다.

기술 발달과 감각 충돌 이론

인간이 외부 환경을 접하는 가장 중요한 감각기관은 시각과 청각이다. 영화, TV 등의 스크린과 컴퓨터 그래픽은 시각 자극의 한계를 상상력의 한계까지 밀어붙였고 디지털 기술은 원하는 청각 자극 역시 자유자재로 만들 수 있게 해주었다. 통신 기술의 발달 또한 다른 도시에 있는 가족과 얼굴을 보며 대화할 수 있게 함으로써 공간의 속박을 지워버렸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조합된 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 기술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수준에서 시공간의 자유를 선사한다. 우리는 VR 기술을 통해 달 착륙의 순간을 훨씬 더 실감 나게 경험할 수 있으며, 지구 반대편의 친구와 신체를 사용하는 스포츠를 겨룰 수 있다.
흥미롭게도 VR 멀미는 앞서 이야기한 인간의 진화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VR 멀미의 원인에는 몇 가지 이론이 있지만 대부분의 학자는 우리의 감각 기관이 서로 다른 정보를 뇌에 전달함으로써 뇌가 혼란을 일으키는 것이 원인이라는 ‘감각 충돌 이론’을 받아들인다. 곧, 뇌는 감각 기관 정보의 혼란이 신체 내부 기관의 오류를 일으키는 독성물질에 의한 중독으로 간주하고 구토 등의 반응을 통해 독성물질을 내보냄으로써 신체를 보호하려 한다는 것이다.
VR은 일반적으로 시각과 청각 신호를 제어한다. 청각은 방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에 대한 민감성이 높지 않기에, 대부분 멀미는 시각 신호에 기인하며, 특히 우리의 평형 감각 및 이동을 감지하는 귀속 전정기관 신호와 시각 신호의 차이 때문에 발생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정기관의 신호를 바탕으로 한 우리 뇌의 시각 신호에 대한 기대와 실제 주어지는 시각 신호 사이의 차이가 VR멀미를 유발하는 것이다.
VR 멀미에는 어지러움, 구토, 두통, 식은땀, 피로감 등 다양한 형태가 있다. 먼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어떤 형태의 멀미이든 이상한 느낌이 들 경우 사용을 바로 중지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필자의 경험과 여러 다른 이들의 경험을 종합하면, 이러한 느낌이 들 때 즉시 사용을 중지하지 않으면 증상이 더 심해지며 사용을 중지한 뒤에도 몇 시간 동안 지속될 수 있다. 일단 VR 기기를 벗고 상태가 괜찮아진 후 다시 VR을 시도하는 것이 좋다.

VR 멀미의 직접적인 원인과 해결법은?

VR 멀미를 일으키는 상황은 형태와 대응 방법에 따라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VR 기기 내에서 정지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고개를 돌려 사방을 둘러볼 때 VR 기기가 우리 눈에 보여주어야 하는 화면이 우리의 기대와 달라지는 경우다. 이때 VR기기는 이들이 제공하려는 가상의 환경을 시선의 방향에 맞게 실시간으로 바꿔주어야 한다. 이는 기기가 가진 성능의 문제로 VR기기가 얼굴의 방향과 위치를 얼마나 정확하게 파악하고 해당 방향의 화면을 얼마나 빠르게 사용자에게 보여줄 수 있는지에 달려 있는데, 오늘날 대부분의 기기에서 이 문제는 해결되었다.
오큘러스는 여러 테스트를 통해 일반적으로 13ms 내의 화면 지연이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안기지 않는다는 것을 파악하고, 이를 위해 90Hz의 화면 재생률을 지원한다. 그러나 기기의 오류나 프로그램의 문제로 인해 얼굴을 돌릴 때 화면이 그것에 맞게 바뀌지 않을 경우 멀미가 나타날 수 있으며 이 경우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기기를 벗고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두 번째는 VR 프로그램 내에서 우리가 움직이거나 하늘을 나는 등 이동할 때 발생하는 것으로, 기술의 발전이 아닌 우리의 적응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다. 곧, 우리의 시각 신호는 우리가 움직이고 있음을 알려주지만, 귀속 전정기관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멀미를 느끼는 것이다. 다행인 점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가 적응하는 과정에서 사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대책이 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국 적응을 통해 VR을 최고의 몰입감을 느끼며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한 가지 방법은 프로그램 내에서 직접 이동 대신 텔레포트, 곧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까지 순간적으로 이동하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우리의 주변시(Peripheral vision), 곧 눈이 바라보는 정면이 아니라 그 주위의 배경에 받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주변시를 줄이는 기능을 비네팅(Vignetting)이라 하며, 주변시를 크게 줄일 경우 사람들은 멀미를 덜 느끼게 된다. VR기기에 적응할수록 직접 이동과 주변시를 늘림으로써 우리는 더 높은 몰입감을 느낄 수 있다.

인간의 뇌는 결국 적응한다

진화는 뇌로 하여금 감각기관이 전달하는 정보의 차이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만들어 우리 몸을 보호해 왔다. 동시에 진화 과정에서 우리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환경 조건이라 하더라도 결국 적응할 수 있는 유연한 뇌를 갖게 됐다. VR은 바로 그런 뇌의 특성을 실감할 수 있는 첨단 기술임을 VR멀미에 대한 이해를 통해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럼 마지막 질문, 이렇게까지 해서 VR에 적응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은 우리가 교통수단이 주는 멀미에 적응함으로써 다른 도시, 다른 국가를 더 편히 여행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으로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VR은 몇 번의 클릭 만으로 파리의 에펠탑과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을 마치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감상할 수 있게 해주며, 달 기지와 화성 기지에 서 있을 때의 느낌을 알려줄 것이다. 그렇다. 이동은 레저의 기본이며 편리한 이동은 최고의 레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