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타봤어요?

청와대 자율주행버스 타고
고궁 한바퀴

글.이락희 사진.이성원

자율주행은 인간을 운전에서 해방시켜 줄 꿈의 기술로 불린다. 운전대를 잡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인간의 개입이 전혀 필요하지 않은 자율주행을 꿈꾼다. SF 영화 속에서나 가능할 것 같던 그 꿈이 현실로 가까워지고 있다. 그 꿈이 공교롭게도 고색창연한 고궁을 둘러싼 현장에서 실현되고 있다면 어떨까. 청와대 자율주행버스 이야기다. 이 버스는 경복궁 둘레길을 따라 ‘스스로’ 달린다. 안전을 위해 안전 운전자가 운전석에 앉아있지만 ‘자율주행 ON’이 되는 순간부터 버스는 노선을 따라 자동으로 정류장을 이동하며 승객을 태우고 내려놓는다.

청와대 순환
자율주행 버스

운행 일시 (효자로 입구 기준)

토~화요일 09:00~10:00(30분 간격), 10:00~16:45(20분 간격)

수~금요일 09:30~16:45(15분 간격) *점심시간 12:00~13:00 미운행

이용방법: 교통카드를 이용해 무료 탑승 가능

기타: 만 6세 미만 탑승 불가 (단, 유아용 카시트 1개 구비로 1명 탑승 가능)

우리나라 도로교통법에는 자율주행차에 탑승자의 안전을 위해 반드시 운전자(안전 운전자)가 탑승하도록 되어 있어요. 출발과 도착, 자율주행 상태로 운행할 수 없는 자전거 전용도로 등에서는 운전사가 직접 운전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자율주행의 첨단 시대, 고궁에서 한발 앞서 만나다

고즈넉한 고궁의 담장을 끼고 최첨단 기술을 장착한 자율주행차가 달린다. 공식 명칭은 ‘청와대 자율주행버스’이다. 경복궁역 4번 출구 인근의 효자로 입구에서 출발해 청와대 앞길을 지나 경복궁을 한 바퀴 도는 코스인데 지난해 12월 22일부터 두 대의 전기 자율주행버스가 운행을 시작했다. 시범 운행이 아니라 정규 버스 노선에 따라 운행되는 최초의 자율주행버스이다. 노선 번호는 ‘청와대 A01’. 앞으로 실현될 본격적 자율주행의 시대를 미리 만날 수 있는 곳이 고궁이라니 더 흥미롭다. 한복 차림으로 무리 지어 다니는 나들이객들과 조우하는 모습이 묘하게 대비된다.
청와대 자율주행버스는 경복궁 서쪽 효자로 입구의 전용 정류소를 출발해 국립고궁박물관(영추문)→청와대→춘추문→경복궁·국립민속박물관까지 총 5개 정류소를 노선으로 순환 운행한다. 횟수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승·하차가 가능한데다 교통비는 무료라 청와대나 서촌, 북촌 등 인근 지역을 도보로 나들이 할 때 이용하면 편리하다. 하루 이용객은 250~400명 수준으로, 운행 4개월만에 누적 탑승객 1만 4천명을 돌파했다.

안전 관리자와 시스템 관리자 탑승으로 탑승객 안전 지켜

운행을 시작한 지 6개월, 청와대 자율주행버스는 얼마나 진화했을까. 운영 업체 에스유엠(SUM)의 박상욱 부장의 안내로 자율주행버스를 타봤다. 출발점은 효자로 입구다. 경복궁역 4번 출구를 나와 횡단보도를 건넌 후 효자로 방향으로 50m 정도 걷다 보면 ‘서울자율차’라는 입간판이 있는 정류장이 보인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 자율주행버스가 정류장 앞에 천천히 멈춰 섰다. 승차 후 시내버스처럼 교통카드를 태그하지만 요금은 부과되지 않는다. 자율주행이라 운전석이 따로 없겠거니 했는데 여느 시내버스와 같이 운전석이 있고 운전기사가 승객들을 반긴다. 가운데에 컴퓨터 기계장치가 크게 자리 잡고 있고 우측 맨 앞자리에 오퍼레이터(시스템 관리자)가 앉아 모니터로 운행 시스템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우리나라 도로교통법에는 자율주행차에 탑승자의 안전을 위해 반드시 운전자(안전 운전자)가 탑승하도록 되어 있어요. 출발과 도착, 자율주행 상태로 운행할 수 없는 자전거 전용도로 등에서는 운전사가 직접 운전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버스 안에는 안전 운전자와 오퍼레이터 외에도 안내를 도와주는 직원이 상주하고 있어서 승객들이 안전벨트를 착용할 수 있도록 안내해 주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7월부터 안내 서비스는 중단할 예정이라고 한다. 출발 시간이 되자 차가 미끄러지듯 출발했다. 곧이어 버스 천장의 안내판에는 ‘자율주행 ON’이라는 표시가 뜬다. 한 승객이 “어, 버스 앞쪽에 운전석에 운전기사님이 앉아 계시잖아요?”라며 운전석을 가리키자 기다렸다는 듯이 안전 운전자가 두 손은 물론 한쪽 다리까지 번쩍 들어 올려 보인다. 그 와중에도 신호등이 붉은색으로 바뀌자 차는 천천히 멈춰 섰다.

12.7km 순환, 짧지만 난코스의 연속

세 번째 정류장인 청와대 정류소에서 대부분의 승객을 내려놓은 버스는 청와대 앞길로 진입하기 위해 천천히 우회전을 시도한다. 좁은 1차선 길이라 대형버스가 돌기에는 다소 어려운 코스인데 ‘자율주행 ON’ 상태로 매끄럽게 우회전에 성공한다. 관람객들로 붐비는 청와대 앞길을 지나 춘추문에 이르자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자율주행의 특성상 오인지 등의 우려가 있어 비가 오면 운행이 어렵다고 하는데 운행 중단 여부는 안전 운전자나 오퍼레이터가 임의대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서울시에서 기상상태를 파악한 후 공지한다고 한다. 춘추문에서 국립민속박물관까지는 내리막길이라 자율주행 난코스로 알려져 있지만 버스는 2차선을 따라 안정적으로 운행 중이다.
“주말이면 경복궁 주차장으로 진입하려는 차량이 국립민속박물관 입구까지 2차선을 점유하고 있어서 원활한 자율주행이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오늘은 평일이라 불법 주차 차량이 안 보여서 자율주행이 순조롭습니다.”
경복궁을 끼고 움직이던 자율주행버스는 건춘문과 동십자각을 지나 광화문 대로로 진입한다. 여기서부터가 진짜 난코스다.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이라 운전자가 직접 운전해도 꽤 복잡한 구간인데다 공사용 가림막이나 공사 자재들이 도로 쪽으로 밀려 나와 있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국토부는 이 구간에서 수동 운행을 요구했습니다만 기술적으로 충분히 안전하게 운행할 수 있는 구간이라 서행을 조건으로 자율주행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광화문 오른쪽으로 접어들자 차선이 사라졌다. 공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당분간 이 구간부터는 안전 운전자가 수동으로 운전해야 하는 구간이라고 한다. 시속 30~35km의 속도를 유지하며 달리던 자율주행버스가 드디어 출발지였던 효자로 입구 정류장에 다시 도착했다. 경복궁을 한 바퀴 도는 데 15분이 채 안 걸렸다. 2.6km로 비교적 짧은 거리인 듯하지만 한 바퀴를 순환하는 데 14개의 신호등을 거칠 뿐만 아니라 자전거 전용도로, 2차선 점유 차량, 광화문 일대의 공사 등으로 상당히 복잡한 길의 연속이다. 처음 운행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급정지를 한다’거나 ‘차량이 흔들린다’ 등의 지적이 꽤 있었다. 하지만 운행하면서 각종 도로 상황, 보행자 움직임, 도로 표시 등 주행 데이터를 수집, 학습하며 알고리즘도 정교하게 업그레이드해 승차감은 여느 버스와 차이를 못 느낄 정도로 안정화됐다.

자율주행 레벨2와 레벨3의 중간 단계

청와대 자율주행버스는 서울시, SUM, 서울대학교 미래모빌리티기술센터(FMTC)가 함께 컨소시엄을 이뤄 운영 중이며 운행은 서울대 자율주행 연구진들이 설립한 기업으로 알려진 SUM에서 맡고 있다. SUM은 일반 차량을 자율주행이 가능하도록 개조하고 자율주행 시스템을 개발해 운영하는 회사다.
일반적으로 자율주행은 레벨 0에서 레벨 5까지 크게 6단계로 나뉘는데 크게 보면 ‘사람이 주행 환경을 모니터할 수 있는’ Level 0 ~ 2단계, 자율주행 시스템이 주행 환경을 모니터 할 수 있는 ‘Level 3 ~ 5’ 단계로 구분한다. 박상욱 부장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 청와대 자율주행버스는 레벨 3에 해당하는 기술이 적용된 상태라고 한다.
“청와대 자율주행버스는 시스템이 운전 조작의 모든 측면을 제어하지만, 시스템이 운전자의 개입을 요청하면 운전자가 적절하게 자동차를 제어하고 있습니다. 청와대 자율주행버스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차량 외부에 장착된 9개의 ‘라이다(LiDAR)’입니다. 기존 카메라와 레이더 센서만으로는 레벨 3 이상의 자율주행 기술을 구현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라이다는 빛을 이용하여 전방의 물체를 감지하고 거리를 측정함으로써 기존 자율주행 레벨 3 이상에서 차량의 ‘눈’ 역할을 하는 핵심 부품입니다.”
정부는 2024년까지 자율주행에 관한 법과 제도 정비를 마무리해 2027년까지 레벨 4 수준의 자율주행차를 상용화하겠다고 밝혔다. 이 계획을 발표했을 때 ‘꿈같은 계획’이라고 여기던 사람이 적지 않았지만 직접 자율주행버스를 타본 사람들 중에는 그날이 그리 머지않았다는 데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서울에는 청와대 지역뿐만 아니라, 상암동 DMC 일대와 청계천에도 이미 자율주행 버스가 운행 중이므로 ‘완전한 자율주행’의 미래가 얼마나 가까워졌는지 직접 체험하며 느껴보길 권한다.

Mini Interview ①

자율주행 시스템 안전하게 관리해요!

손상이 SUM 오퍼레이터
(시스템 관리자)

손상이 씨는 지난해 12월 22일부터 청와대 자율주행버스의 오퍼레이터로 업무를 수행 중이다. 오퍼레이터는 시스템을 모니터링하면서 오인지 가능성 등을 파악한 후 운전석으로 정보를 송출해 자율주행 시 발생하는 안전 문제를 최소화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국내 최고의 기술을 장착한 자율주행버스의 오퍼레이터로 근무한다는 자부심이 크다.
“청와대 자율주행버스는 대형버스라 안전 운전자뿐만 아니라 운전자에게 도로의 다양한 변화를 전송하는 오퍼레이터가 함께 탑승해 운행 중입니다. 자율주행 중에 끼어들기 차량이 있거나 돌발 장애물이 나타나면 급정지가 불가피할 때가 많았지만 그동안 꾸준히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했습니다. 초창기에 비해 급정지나 오인지 등이 아주 많이 줄어들면서 승차감이 상당히 개선되었습니다.”
승객들이 자율주행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질문을 할 때면 즐거운 마음으로 답변을 해드린다. 하지만 목적지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미리 안전벨트를 풀어버리거나 6세 미만 아동 탑승 불가 등에 대해 항의하는 시민들을 만나면 난처할 때도 있다고.
“지난 5월부터 유아용 카시트 좌석을 하나 만들어서 6세 미만도 한 명은 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업그레이드해서 더욱 안전한 자율주행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Mini Interview ②

세상 참 좋아졌네

시민 송효순(83세)

청와대가 개방되면서 청와대 구경에 나선 어르신들의 발길도 덩달아 늘어났다. 경복궁역에서 내려 청와대까지 가려면 1km 정도는 걸어야 하는데 어르신들이 걷기에는 다소 멀고 택시를 타기에도 애매하다.
“이 버스를 타면 청와대 앞까지 데려다주니까 많이 편해졌어요. 컴퓨터가 운전을 한다는데 세상 참 좋아졌지. 내가 운전기사 없는 차를 탔다고 하면 사람들이 안 믿어.”
딸과 함께 청와대 나들이를 나왔다는 송효순 씨(83세). 집이 종로구 부암동이라 가까운 곳인데도 다리가 불편해 자주 놀러 오지 못하다가 자율주행버스를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청와대 일대에서 마실을 즐기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날은 일찍 나온 김에 청와대 구경을 한 후에 다시 버스를 타고 국립민속박물관에 내려서 박물관 구경도 할 예정이라고 했다 버스비도 무료라 부담이 없다고. 어머님을 모시고 나온 딸도 “평소에는 차로 모시고 나왔는데 늘 차 둘 데가 마땅치 않아서 불편했거든요. 정류장에서 횟수 제한 없이 이용할 수 있어서 자가용을 이용하는 것보다 훨씬 편리해졌어요”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