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로 확장하는 K클래식

영향력 확대에 나서다

스튜디오브이알 박현철 대표

글.최주연 사진제공.스튜디오브이알

2020년까지 전 세계 125개가 넘는 클래식 콩쿠르에서 한국 연주자가 96개 부문에 입상했다.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피아니스트 조성진, 임윤찬 외에도 수많은 연주자가 각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런데 클래식 연주자들의 약진에도 불구하고 클래식 음악 감상은 여전히 일부 사람들의 취미생활로 여겨진다. 스튜디오브이알 박현철 대표가 VR 클래식 콘텐츠 시장 개척에 나선 이유다.

공연 문화의 새로운 트렌드,
VR 콘서트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국립국악원은 사물놀이와 시나위, 동래학춤 등 37개의 레퍼토리를 8K 고화질 360도 VR로 제작한 콘텐츠를 유튜브로 선보였다. 이에 네덜란드의 한 일간지는 “코로나로 다른 공연이 취소되는 상황 속에서 한국 국악은 번창하고 있다. 침체 중인 전통 예술계에 VR이 구원이 될 것이다”라고 소개했다. 비슷한 시기, 경기아트센터에서는 경기도무용단의 공연 ‘포행’을 VR로 생중계하며 VR 실황 공연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대중에게 보다 친숙한 K팝이나 해외 유명 아티스트들의 VR 콘서트 열기는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대표적인 한류 아이돌 BTS는 지난 2021년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열린 ‘한국:입체적 상상’ 전시에서 VR 공연을 공개해 파리지엥을 열광시켰고 2023년 현재, 최고 인기 걸그룹 중 하나인 에스파는 11월 말까지 강남의 한 멀티플렉스에서 VR 콘서트를 열 계획이다. 그밖에 국내 유수의 K팝 기획사들 역시 VR 콘서트 개최에 열을 올리고 있다. VR 공연을 접한 이들의 뜨거운 반응에 힘입은 결과다. 관람객들은 VR 공연의 최대 장점으로 ‘극강의 몰입감’을 꼽는다. 이쯤 되면 VR 공연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스튜디오브이알 박현철 대표는 이보다 한발 앞선 2018년, VR 콘서트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창업에 나섰다. 대기업에서 SI(System Integration, 정보시스템 통합) 업무를 맡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정보통신기술의 흐름 변화를 미리 읽은 셈이다. 그런데 왜, 한창 주가가 치솟고 있던 K팝이 아닌 클래식을 주요 아이템으로 삼았느냐고 묻자, 박현철 대표는 ‘어렸을 때부터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들어왔기 때문’이라는 싱거운 대답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전 세계 클래식 음악 콩쿠르를 살펴보면 우리나라 출신 연주자들의 입상률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요. 한국 여자골퍼들이 미국 LPGA에서 우승하는 비율과 비교될 만하죠. 그래서 외국인들이 오히려 한국 연주자들이 탁월한 성과를 내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질문을 할 정도입니다. 그런 반응을 보며 K팝처럼 K클래식의 세계적인 성공에 대한 확신을 가졌습니다.”

실감형 콘텐츠로
클래식에 더 가까이

박현철 대표의 말처럼 우리나라에는 세계 정상급 클래식 연주자들이 즐비하고 24시간 클래식 음악을 송출하는 KBS 클래식FM도 있다.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나 연주자들의 공연도 심심치 않게 펼쳐진다. 그런데도 일반인들이 클래식 음악 감상에 거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뮤지컬이나 대형 연극 등의 입장료와 비교해 볼 때 실제로는 비싼 편이 아니지만 세계적인 연주자나 오케스트라의 입장료가 비싸다는 ‘인식’이다. 두 번째로는 관객의 매너를 중요시하는 공연장 분위기를 들 수 있다. 셋째 대중음악에 비해 긴 호흡을 가진 악곡 편성 등이다. 즉 ‘클래식 공연은 비싸고 어렵고 낯선 것 혹은 공부가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이에 클래식 애호가인 박현철 대표는 클래식이 갖는 이러한 단점들을 보완할 방법을 VR에서 찾았다.
“국내 최고의 클래식 공연기획사와의 업무 협약을 통해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일부 아티스트들이 VR을 포함한 공연 녹음 자체를 두려워하거나 꺼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젊은 연주자 중에서는 VR 콘텐츠를 제작하자는 제안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스튜디오브이알은 생생한 현장감에 초점을 맞췄다. 기존 콘텐츠들이 360도 파노라마 영상이나 단순한 3D 효과를 동반한 VR 영상에 머물러 있는 반면, 스튜디오브이알의 콘텐츠들은 좀 더 본격적인 가상현실 경험을 제공한다. 4K와 8K 화질에 최적화된 VR 전용 초고화질 영상으로 촬영하는 것은 물론 연주자의 표정과 손짓 및 몸짓 등을 별도의 센서 없이 인식할 수 있는 ‘인체 동작 인식’ 기술을 통해 생동감을 강화했다. 연주자의 숨소리까지 포착하는 초고음질 기술에 더해 VR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멀미 저감 기술을 개발한 것도 돋보이는 대목이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시선과 움직임의 괴리에 따른 어지러움 증상 즉 VR 멀미를 겪곤 합니다. 다른 업체들은 이를 영상의 화질 개선 등을 통해 해결해 왔는데 저희는 음향기술에 초점을 맞춘 멀미 저감 기술을 개발해 특허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남다른 기술력과 클래식 음악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스튜디오브이알은 국내 음악가 50명 이상의 연주 장면을 VR 콘텐츠로 제작해 오큘러스 VR 앱스토어를 통해 공개했다.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클래식 VR 콘텐츠를 접한 학부모들은 “클래식은 딱딱하다고 멀리하던 아이가 VR로 감상하니 재미있다고 했다”라고 했고 클래식 애호가들은 “실제 공연장에서 감상하는 것 이상으로 감동했다”라며 높은 만족도를 나타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시선과 움직임의 괴리에 따른 어지러움 증상 즉 VR 멀미를 겪곤 합니다. 다른 업체들은 이를 영상의 화질 개선 등을 통해 해결해 왔는데 저희는 음향기술에 초점을 맞춘 멀미 저감 기술을 개발해 특허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생성형 인공지능과 메타버스 결합한
새로운 서비스 런칭할 것

뛰어난 기술력을 가진 스튜디오브이알은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전년 대비 30% 이상의 매출 성장세를 기록했다. 러시아, 중국, 스페인 등 해외 기업과 공동 기술 개발 및 파트너십을 맺고 엔젤투자자로부터 투자를 유치한 것도 주효했다. 상대적으로 시장이 작은 국내보다 해외 시장 개척에 많은 정성을 쏟은 결과다.
“2019년 11월에 중국 현지 업체와 콘텐츠 공급 계약을 체결했고 현재까지 미국, 유럽, 중국에 진출했습니다. 한류가 유행 중인 중동지역에서도 반응이 있어서 두바이와 오만 등에서 프로모션도 진행했어요. 글로벌 진출은 저희 스튜디오브이알의 지속 가능한 성장은 물론 수준 높은 K클래식을 보다 널리 알리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해외 전시에 참여했을 때, 클래식을 멀리하던 아이들이 VR이라는 새로운 기술과 접목된 콘텐츠를 즐겁게 체험하는 것을 보며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VR 영상 촬영 현장

뒤이어 스튜디오브이알은 실감형 비디오게임인 ‘리얼 오케스트라’를 공개했다. 클래식 음악을 VR로 체험하는 것을 넘어, 사용자가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에 화답한 것이다. 리얼 오케스트라는 핸드 제스처 인식 기술을 기반으로 한 오케스트라 지휘자 체험 콘텐츠로, 상용 VR기기인 오큘러스 퀘스트의 콘트롤러에 내장된 센서를 활용한 리듬 게임의 일종이다. 박현철 대표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지휘자의 꿈을 가진 사람, 리듬 감각을 키우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게임이라 해외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라는 말과 함께 “후속작으로 가상현실에서 피아노를 실제로 연주할 수 있는 ‘리얼 피아노’, 생성형 인공지능(AI)과 결합한 메타버스 실시간 음악레슨 콘텐츠를 제작 중이다”라고 귀띔했다.
2022년 스튜디오브이알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원하는 ‘메타버스 콘텐츠 글로벌 협력’ 지원 사업에서 ‘메타버스 혁신 기업’에 선정되며 VR과 클래식 융복합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박현철 대표는 특히 국내 VR 관련 소프트웨어 개발 수준이 세계 최상위권에 속하는 만큼 다음 걸음을 준비할 때라고 강조한다. 스튜디오브이알이 앞서 언급한 생성형 인공지능과 결합한 메타버스 실감형 콘텐츠 개발에 집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무엇보다 박현철 대표는 VR이라는 새로운 기술과의 만남을 통해 K클래식이 꽃을 활짝 피우기를 기대한다.

실감형 비디오 게임 ‘리얼 오케스트라’

“VR로 대표되는 첨단 기술이 국내 클래식 분야의 돌파구가 될 것이라 생각하며 스튜디오브이알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6년여 사이, 최선을 다해 기술과 문화의 접점을 만들었죠. 그 결과 해외에서 좋은 반응을 얻게 되었습니다. VR을 비롯한 국내 기술 수준이 고도화되고 있고 좋은 연주자들도 많으니 VR과 클래식의 융복합으로 만들 수 있는 콘텐츠는 앞으로도 무궁무진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스튜디오브이알도 성장하고 K클래식에도 봄이 찾아오기를 바랍니다.”
박현철 대표가 말하는 ‘K클래식의 봄’이 어떤 방식으로 우리에게 깃들지 가늠하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 모두가 클래식 음악에 열광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스튜디오브이알과 같이 기술과 문화의 접점을 만드는 수많은 기업의 노력이 레저활동의 선택지를 다채롭게 해줄 것만은 확실하다. 기술을 넘어선 인프라로서의 공간정보가 보다 많은 영역과 즐겁고 활발하게 융복합하기를 바라는 이유다.

클라리넷 연주자 조인혁, 첼리스트 이호창, 피아니스트 이재경, 피아니스트 서형민, 비올리스트 송지원 등 국내외에서 각광받는 젊은 연주자들이 스튜디오브이알을 통해 연주 장면을 VR 영상에 담았다. 연주자들은 연령과 물리적 거리를 뛰어 넘어 많은 이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