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안식을 주는

주거공간을

개미집에서 배웠다?

글.김준래 과학칼럼니스트

‘잡초라도 배울 점이 있다’라는 격언이 있다. 아무리 하찮은 미물일지라도 뭔가를 배울만한 장점이 있다는 의미다.
‘청색기술(Blue Technology)’은 바로 이런 관점에서 탄생했다. 청색기술이란 수십억 년에 걸쳐 진화한 생명체의 효율성을 모방하거나, 이들로부터 영감을 얻자는 취지로 개발된 기술이다. 그런 청색기술의 영향 때문일까? 최근 들어 과학자들은 삶의 질 향상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주거와 관련된 문제의 해답을 생명체에서 찾고 있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대표적 사례로는 개미가 지은 개미집에 대한 연구를 꼽을 수 있다.

미생물 이용하여 모래언덕에 주거공간 마련

아프리카 대륙은 기후변화로 인해 사막화가 빨라지면서 건조한 지역으로의 변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거 아프리카 23개국은 사하라 사막에 ‘녹색 대장벽 사업’을 추진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녹색 대장벽 사업’이란 아프리카 대륙 전체를 가로질러 나무 장벽을 심는 프로젝트로서, 정식 명칭은 ‘아프리카의 위대한 초록 장벽(Green Great Wall of Africa)’ 사업이다. 그런데 이 사업에 참여했던 미국의 건축가 ‘매그너스 라슨(Magnus Larsson)’은 프로젝트가 진행되면 될수록 실패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이 사업의 핵심은 사막화를 일으키는 모래가 더 이상 다른 지역으로 퍼져 나가지 않도록 나무를 심어 막는 데 있다. 나무뿌리와 줄기가 모래들이 퍼져 나가는 것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근 주민들이 애써 심은 나무를 몰래 베어낸 후 가져가는 것을 보며 프로젝트가 실패할 것을 예상한 것이다. 라슨은 주민들이 나무를 베어 가지 못하도록 하려면 그에 따른 보상이 필요하다는 점을 생각했다. 주민들이 나무를 베는 이유가 집을 짓기 위해서라는 점을 파악한 라슨은 자신의 건축 지식을 활용하여 모래를 활용한 신개념 주거공간을 제공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전문가들과 함께 모래언덕을 개미집처럼 만드는 샌드하우스(Sand House)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특히 모래언덕을 이용한 주거공간의 주변으로는 나무를 촘촘히 심어 주민들이 나무를 베어내면 그들의 주거공간도 역시 피해를 볼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그림 1] 아프리카의 위대한 초록 장벽 사업

나무뿌리는 모래언덕이 무너지지 않도록 단단하게 붙잡아 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나무는 그늘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주거공간의 온도가 더 이상 올라가지 않도록 하는 기능도 갖고 있다. 따라서 주민들이 나무를 베면 오히려 피해가 더 크도록 주변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문제는 나무뿌리가 아무리 모래들을 붙잡아 준다고 해도 시멘트처럼 모래알들을 하나하나 단단하게 고정시킬 수 없다는 점이었다. 특히 사람들이 생활하는 주거공간으로 모래가 흘러내리면 안 되므로 별도의 대책이 필요했다. 라슨은 이 문제를 미생물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해결했다. 바로 ‘바실러스 파스테우리(Bacillus Pasteurii)’라는 박테리아로서, 이 미생물은 쉽게 흩어지는 모래알들을 강하게 결합시키는 재주를 갖고 있는 것 이 특징이다. 이 같은 특징에 대해 라슨은 “바실러스균을 모래에 섞으면 모래입자들 사이의 미세한 공간을 미생물이 채우면서 화학적 작용에 의해 모래가 천연 시멘트처럼 굳게 된다”라고 소개하며 “이 박테리아를 이용하여 모래를 굳히는 데는 24시간 정도면 충분하다”라고 말했다.
놀라운 점은 샌드하우스가 수많은 건축 전문가들로부터 건설 비용은 물론, 에너지 효율과 디자인 측면에서 탁월한 건축물로 인정받았다는 점이다. 샌드하우스의 건설 비용이 저렴할 수 있는 이유는 모래를 이용하여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주변이 온통 사막이다 보니 건설자재인 모래를 바로 수급할 수 있어서 자재비와 운송비가 거의 들지 않는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또한 에너지 효율 면에서도 샌드하우스는 뛰어난 장점을 갖고 있다. 모래는 열전도성이 낮기 때문에 내부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 따라서 주거공간은 별도의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아도 추운 밤에는 따뜻하고, 더운 낮에는 시원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그림 2] 사막에 조성된 개미집을 닮은 주거공간

흰개미집의 뛰어난 공기순환 시스템을 모방한 건물도 등장

샌드하우스가 모래로 지은 개미집을 모방한 청색기술의 결과물이라면, 짐바브웨에 위치한 이스트게이트 센터(Eastgate Center) 빌딩은 흰개미집의 뛰어난 공기 순환시스템을 건물에 그대로 적용한 대표적 사례다.
이 빌딩을 설계한 환경 건축가인 ‘믹 피어스(Mick Pearce)’는 흰개미집을 모방하여 건물 옥상에 뜨거운 공기를 배출할 수 있는 통풍구를 만들고 건물 아래쪽에는 찬 공기를 건물로 끌어들이는 자연통풍 시스템으로 전 세계 건축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나무를 갉아먹는 흰개미(Termite)는 일반적으로 목조건축물을 손상시키는 주범으로 악명이 높다. 그러나 대표적 해충으로만 여겨져 왔던 흰개미가 사실은 사람도 감탄시킬만한 천재적 건축가라는 점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림 4, 5] 이스트게이트 센터의 내부와 흰개미집 구조를 모방한 빌딩 외관

출처: inhabitat

겉모습만 보면 흰개미가 지은 집은 진흙 알갱이에 타액과 배설물을 섞어서 쌓아 올린 둔덕에 불과하다. 하지만,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대 건축기술에서나 볼 수 있는 통풍 기술이 접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흰개미집은 내부의 여러 방에서 발생한 열이 집 구조물 내의 경로를 통해 위로 점점 좁아지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이산화탄소로 가득 찬 따듯하고 습한 공기가 구조물의 통풍구를 따라 올라가면, 둥지 아래의 지하 구역을 통해서 새롭게 차가운 공기가 내부로 흘러들어와 따뜻한 공기가 떠난 빈자리를 채우게 된다. 또한 흰개미집은 밤에 축적된 냉기가 낮 동안 내부 환경이 가열되는 것을 완화해 주는 기능을 갖고 있어서 외부 온도가 섭씨 1~40℃를 오가는 동안에도, 흰개미집의 내부 온도는 최적인 30℃를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어스는 이 같은 흰개미집의 통풍과 보온 시스템을 이스트게이트 센터 빌딩에 그대로 적용했다. 흰개미집을 모방한 자연적 통풍시설인 중층구조 환기 시스템 외에 별도의 에어컨 시스템을 설치하지 않았기에 총 3,500만 달러에 달하는 건축 비용의 10%를 절감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이스트게이트 센터 빌딩은 에어컨 시스템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짐바브웨의 38℃가 넘는 무더운 날씨를 견뎌내는 성과를 거뒀다. 1년 내내 평균 24℃ 정도의 적정 실내 온도를 유지하는 믿기 어려운 결과를 기록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스트게이트 센터 빌딩의 중층구조 환기 시스템은 에너지 소비량이 유사한 규모의 다른 건물들에 비해 10% 이하에 그칠 만큼, 뛰어난 에너지 절약 효과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피어스는 흰개미 집을 모방한 환기 시스템을 더욱 발전시켜 호주 멜버른에 위치한 시의회 청사 건축에도 적용하였다. 물론 이스트게이트 센터와 마찬가지로 이 건물에도 더워진 공기는 위로 상승하고 천정의 빈틈을 지나 북쪽 굴뚝을 통해 외부로 배출되는 방식을 적용했다.
이스트게이트 센터 빌딩과 다른 점이라면 멜버른 시의회 청사에는 태양이 잘 비치지 않는 남쪽 면에 샤워 타워를 설치하여 실내의 더운 공기를 흡수하는 상층의 물과 공기가 저층으로 순환하도록 함으로써 실내 온도를 적절하게 조절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이 건물 역시 냉난방 시설을 가동하지 않고도 실내 온도를 24℃ 정도로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전기 소비량의 85%와 가스 소비량의 87%, 그리고 물 사용량의 28%를 절약하여 전 세계 건축업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