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서도 GPS를
사용할 수 있을까
?

글.심창섭 과학저술가

산업혁명과 경제성장을 이룬 유럽 열강들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에 걸쳐 전 지구를 대상으로 식민지 쟁탈전에 나섰다. 그들은 식민지를 획득한 후 제일 먼저 미지의 영토 곳곳에 탐험가를 보내 상세한 지도를 그렸고, 자원 현황부터 살폈다. 그 뒤에는 식민지 수탈을 위해 철도와 도로, 통신망을 건설했다.
안타깝게도 이제 지구상에는 쓸 만한 미개척지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 21세기 강대국들이 주목하는 다음번 목표는 바로 ‘달’이다.

위성측위 시스템의 대명사 GPS

지난 2020년 3월, NASA 제트추진연구소(Jet Propulsion Laboratory, JPL) 연구팀이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지구 주위를 돌고 있는 GPS 위성 신호를 이용하면 달에서도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지상에서 약 2만km 고도에 떠있는 항법위성 신호가 그보다 20배가량 먼 거리의 달까지 도달한다는 이야기다. 더 놀라운 사실은 GPS 위성들의 안테나는 항상 지구를 향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구 건너편의 달에 어떻게 전파 신호가 도달한다는 말인가?
우리가 흔히 GPS(Global Positioning System)라고 부르는 위성항법 시스템은 GNSS(Global Navigation Satellite System)의 한 종류다. 이외에도 EU의 갈릴레오, 러시아의 글로나스(GLONAS), 중국의 베이더우(北斗) 등이 있으나, 캐터필러(Caterpillar)가 무한궤도의 대명사인 것처럼 미국이 먼저 구축한 GPS가 GNSS의 대명사가 되었다. GPS는 삼변측량의 원리를 응용해서 4개의 인공위성 신호를 받아 내 위치를 알아내는 기술이다. 물론 더 많은 위성 신호를 받으면 더욱 손쉽게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현재 각국이 쏘아 올린 100여 대의 항법위성이 지구 궤도에 배치되어 있다. 하지만 미래에 자율주행, 도심형 항공 모빌리티(UAM)가 본격화되려면 한층 강화된 위성 항법 시스템이 필요하다.

표1. 2021년도 세계 우주경제 규모

출처: 유로컨설트

그림1. 반세기 만에 다시 추진되는 달 유인탐사 계획 상상도

ⓒNASA

본격적인 달 개발에 대비한 GPS 시스템

이처럼 지구에서는 GPS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지만, 아무도 살지 않는 달에서 과연 위성항법 시스템이 필요할까?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만약 누군가 달을 본격적으로 개발한다면 과거 열강들처럼 지도부터 작성하고 식민지를 건설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인 GPS를 도입하려 할 것이다.
달 표면의 지형지물은 매우 단조로워서 육안으로는 어디가 어딘지 식별하기 어렵다. 끝없이 펼쳐진 잿빛 평원은 온통 비슷하게 생긴 암석들과 레골리스1) 로 뒤덮여 있고, 특정할 만한 산이나 언덕도 찾아보기 힘들다. 아폴로 우주비행사들은 착륙 지점에서 고작 수km 반경 이내의 지역만 탐사했다.2) 나침반이라도 있으면 활동범위를 늘릴 수 있겠지만 자극(磁極)이 없는 달에서는 무용지물이기에 자이로스코프3)처럼 복잡하고 비싼 관성항법장치를 휴대해야 한다. 그마저도 출발지점에서 멀어질수록 정확도는 떨어진다. 반면 GPS는 항법위성망을 구축하기 위한 초기 비용은 많이 들지만, 저렴한 칩셋만으로도 매우 정확하게 위치를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다. 본격적으로 달 식민지를 개척하려면 수많은 우주비행사가 휴대할 가볍고 신뢰성 높은 개인 내비게이션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당장 달 주위에 지구처럼 다수의 항법위성을 배치하기에는 엄청난 비용이 부담된다.
NASA와 유럽우주국 등이 공동 추진 중인 ‘아르테미스 프로그램(Artemis Program)’의 목표는 달 남극에 반영구적인 월면 기지를 구축하는 것이다. 인간이 달에서 장기간 체류하고 그 주변을 탐사하기 위해 지구와 전혀 다른 환경에서 간편하게 위치 정보를 획득할 수 있는 수단이 절실하다.

그림2. 향후 달 통신/항법 달 시스템 예상도

ⓒNASA

그림3. 지구 반대편으로 GNSS 위성 신호가 전달되는 범위

비콘 신호로 위치를 확인하는 인공위성과 우주선

사실 우주 공간에서 자신의 위치를 알아내는 것은 꽤나 어렵다. 인공위성과 우주선은 지구 곳곳에 설치된 대형 안테나의 비콘4) 신호를 받아 위치를 확인한다. 그러나 이런 장비와 기반 시설은 매우 비쌀뿐더러 지구에서 멀어질수록 신호가 약해진다는 단점이 있다. 아예 지구 궤도를 떠나 심우주로 향하는 탐사선은 정교한 광학센서로 천체와 별자리 좌표를 비교 관측해서 위치를 파악하기도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전부터 GPS를 이용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각국의 항법위성은 19,000~23,000km 고도에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있고, 지구 표면으로 신호를 송출하는 지향성 안테나를 갖췄다. 그렇다면 주로 1,000km 고도 아래에서 활동하는 지구 저궤도 위성들은 GPS 신호를 활용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실제로 약 400km 고도의 국제우주정거장(ISS)에도 GPS 수신기가 설치된 상태다.
그런데 일부 GPS 신호는 지구 옆을 스쳐서 반대편 음영지대에도 전달된다. 이런 신호는 예상외로 강해서 2015년 발사한 4대의 MMS(Magnetopheric Multi-Scale) 위성이 약 15만km 고(高) 고도 GPS 실험에 성공한 바 있다. 위성에 탑재된 ‘내비게이터 GPS’라는 소형 항법장치는 GPS 신호가 약한 곳에서도 충분히 위치정보를 획득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1) 레골리스(Regolith): 월면을 덮고 있는 퍼석퍼석한 물질의 층. 먼지, 흙, 부서진 돌조각이 섞여 있다.

2) 최고 기록은 아폴로 17호 우주비행사들이 월면차로 7.41km 거리까지 진출한 것. 당시 NASA는 착륙지점 5마일 이내에서만 활동하도록 규정을 정했다.

3) 자이로스코프(Gyroscope): 회전체의 역학적인 운동을 관찰하는 기구

4) 비콘(Beacon): 블루투스4.0(BLE) 프로토콜 기반의 근거리 무선통신 장치로, 5~10㎝ 단위의 구별이 가능할 정도로 정확성이 높고 최대 70m 이내의 장치들과 교신할 수 있다.

© NASA/Fireflies

그림4. 2024년 달 착륙을 목표로 민간기업 파이어플라이스가 개발 중인 ‘블루 고스트(Blue Ghost)’ 상상도. 실험용 소형 GPS 수신기를 탑재할 예정이다.

©유럽우주기구(ESA)/SSTL社

그림5. ESA 지원으로 영국의 SSTL사가 개발 중인 ‘루나 패스파인더(Lunar Pathfinder)’ 상상도. 달 뒷면과 극지방의 음영지대에서 GPS 신호를 수신하려면 달 궤도에 이러한 중계 위성을 최소 2개 이상 띄워야 한다.

©SSTL社

그림6. 달 GPS 수신기 ‘내비문(NaviMoon)’의 엔지니어링 모델.

©중국국가항천국(CNSA)

그림7. 2019년 사상 최초로 달 뒷면에 착륙한 중국의 창어 4호. 중국도 미국처럼 달 남극에 기지 건설을 추진하면서 두 초강대국의 달 쟁탈전이 우주기술 개발을 촉진하고 있다.

달의 조석고정(潮汐固定) 현상, 어떻게 극복할까?

2020년 나사 제트추진연구소 연구팀은 38만km 거리의 달에서도 여전히 GPS 활용이 가능하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해 발표했다. 지구상에서 받는 신호 감도의 1/1000에 불과하지만, 달 주변이나 월면에서 5~13개의 항법위성 신호를 수신하여 200~300m 오차도로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고무된 NASA와 이탈리아우주국(Agenzia Spaziale Italiana, ASI)은 공동 개발한 GPS 실험체를 2024년 월면에 내려설 민간위탁 달착륙선에 탑재할 계획이다.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향후 달 탐사선이나 월면 차량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한 경제적인 인프라를 갖추는 방안이 다각도로 추진 중이다. 그러나 지구 GPS 신호를 활용한다 해도 반쪽짜리 미봉책에 불과하다. 달은 ‘조석고정(潮汐固定)5)’ 현상에 의해 항상 같은 면만 지구를 바라보고 있어서 달 뒷면까지 GPS 신호가 도달하진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아르테미스 달기지 건설 예정지인 남극의 섀클턴 크레이터(Shackleton crater) 주변 역시 GPS 신호가 닿지 않는 음영지대가 존재한다. 최종적인 해결책으로는 달 궤도에 지구처럼 여러 대의 항법위성을 띄우는 방법이 유력하다. 그때까지 지구 GPS 위성을 활용해서 달에 보낼 항법위성 숫자를 줄이거나 보완한다면 언젠가 완벽한 달 GPS망을 구축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5) 조석고정(潮汐固定): 어떤 천체가 자신보다 질량이 큰 천체를 공전하거나 자전할 때 공전주기와 자전주기가 일치하는 경우. 달의 자전주기와 공전주기가 같아 지구에서는 달의 한 쪽면만 보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