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항로
표지관리원

글.해도연 SF 작가

우리의 바다에 길을 안내하는 등대가 있는 것처럼 우주시대에는 수많은 행성들 사이를 잇는 우주 항로를 안내하는 ‘우주 등대’가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또한 우주 등대의 탄생은 ‘우주 항로 표지관리원’이라는 새로운 직업을 탄생시킬 지도 모른다. 항로 표지관리원은 어떤 일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SF 작가인 해도연의 상상력을 빌어, 우주 시대가 바꿀 삶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아이들에게 오랜만에 손편지를 썼다. 답장은 기대도 하지 않는다. 편지 열 통을 보내도 한 번 답장이 올까말까인데 그럴 때는 대개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시켜서 억지로 썼다는 티가 난다. 물론 그렇게라도 답장이 온다면 나야 좋지만, 이미 기대하지 않는 것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이번엔 답장을 받지 못할 게 거의 확실하다. 화를 낼까? 아마도. 엄청 화를 내겠지. 너무 미워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편지를 조심스럽게 스캐너에 넣는다. 편지는 이제 고출력 안테나를 출발해 회사와 대학에 있는 두 수신자에게 이르기까지 7시간 남짓의 여행을 할 것이다.
우주복 헬멧을 잠그고 기다린다. 에어록 조명이 녹색으로 변하자 해치를 열고 등대 바깥으로 나간다. 사방팔방에 화려한 별바다가 펼쳐진다. 70억 km 떨어진 곳에선 태양도 그저 눈에 띄게 밝은 별에 불과하다. 그런 태양을 바라보며 사랑과 감사를 고백한다. 내가 사랑하는 세상을 지켜줘서 고마워요.
원거리 기동장치를 우주복에 단단히 고정하고 출력을 높이자 몸이 천천히 떠오른다. 터치 스크린 위에 두 개의 목표물 후보가 나타난다. 망설임 없이(아마도) 두 번째 목표물을 선택하자 기동장치는 이리저리 질소를 분출하며 방향을 잡는다. 남은 산소는 30분 정도. 적어도 20분 안에 돌아와야 한다. 그렇다면 10분 뒤에는 목표물을 확보해야 한다. 기동장치 핸들의 고속 이동 스위치에 손을 올린다. 하나, 둘… 부웅!
나는 항로지표관리원이다. 우주 등대지기라는 말은 좋아하지 않는다. 태양계 최외곽인 에지워스-카이퍼 벨트에는 1,341개의 우주 등대가 있다. 유인(有人) 등대는 44개가 있고 내가 일하는 곳은 그중 하나다. 평균 지름 1.5km의 감자 모양 미소행성을 개조해 만든 낡은 등대다. 팔뚝에 있는 거울로 뒤를 확인하니 점점 작아지는 등대가 어렴풋하게 보인다. 저 작고 자그만 행성에서 10년을 보냈다니.
“기다리고 있어. 이번엔 내가 너보다 먼저 상황을 정리하고 승리를 선언해 줄 테니까, 엘리스.”
내 목소리는 우주복 안테나를 타고 단거리 여행을 떠난다. 엘리스는 1.4km 너머에 있는 이웃 등대 관리원이자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인간이다. 서로의 말이 닿는데는 8분이 걸린다.
“컴퓨터는 고쳤고 이제 떨어져 나간 원자로 컨트롤러만 다시 주워 와서 연결하면 돼. 그럼 얼어 붙은 차를 다시 끓여서 오랜만에 정겨운 티 타임을 나눌 수 있을 거야. 아, 이런. 넌 컨트롤러가 아예 부서졌다고 했지. 하이고, 아쉽네.”
16분 뒤에 엘리스의 맞시비가 도착할 걸 기대하고 있긴 하지만, 이번 경쟁에선 내가 완벽하게 이긴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사실을 알면 엘리스는 특유의 고양이 같은 그르릉 소리를 내며 심통을 부리겠지. 하지만 사실은 부정할 순 없다.
  • 4시간쯤 전에 GRB(Gamma Ray Burst),
    그러니까 감마선 폭발의 여파가 태양계를
    덮쳤다. GRB야 흔한 일이지만 이번엔 태양계
    근처에서 일어났다. 수백 만 년에 한 번 정도
    일어난다는 일이다. 정확히 얼마나 떨어진
    곳에서 일어났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중요한 건 감마선의 세기와 방향이다.

4시간쯤 전에 GRB(Gamma Ray Burst), 그러니까 감마선 폭발의 여파가 태양계를 덮쳤다. GRB야 흔한 일이지만 이번엔 태양계 근처에서 일어났다. 수백 만 년에 한 번 정도 일어난다는 일이다. 정확히 얼마나 떨어진 곳에서 일어났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중요한 건 감마선의 세기와 방향이다. 일단 세기. 태양계에 있는 거의 모든 생명을 단숨에 구워버리기 충분하다. 그리고 방향. 이건 기적이다. 등대의 컴퓨터를 고치자마자 몇 번이나 확인을 했다.
빛의 속도로 태양계를 가로지르고 있는 감마선은 3시간 뒤에 지구 근처를 덮친다. 하지만 그때도 지구에선 상황을 모를 것이다. 그 순간, 지구에서 보면 GRB 방향은 정확히 태양 건너편이니까. 우주 살인광선은 태양이 완벽하게 막아줄 것이다. 지구인들은 갑자기 연락이 끊어진 우주선들 때문에 당혹스러워 하다가 몇 시간이 더 지난 뒤에야 상황을 파악하겠지. 그리고는 곧 태양의 기적 같은 모성에 감사할 것이다. 내가 조금 전에 한 것처럼. 태양은 내 아이들을 지켜줬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지구 이야기다. 태양계 곳곳에 있는 우주기지나 행성간 유인 우주선의 사람들 중 상당수는 이제 곧 죽거나 평생 후유증에 시달릴 것이다.
심우주 유인 탐사선 오라시오 호에도 지구와 비슷한 기적이 일어났다. 막대기 모양의 오라시오 호는 감마선에 평행한 자세를 하고 있었던 덕분에 뒷부분 절반 정도만 피해를 입고 나머지 대부분은 비교적 안전했다. 비교적 안전했다는 건 승객들이 최대한 빨리 해왕성 정거장으로 가서 몇 개월 동안 치료를 받으면 심각한 후유증은 겪지 않을 정도라는 뜻이다.
문제는 멜트다운(Meltdown, 원자로의 노심부가 녹아버리는 현상) 때문에 원자로를 버렸다는 건데, 비상용 배터리로는 최단 경로를 타도 해왕성 정거장 근처까지 가는 게 고작이다. 내비게이터 역할을 하는 심우주 네트워크 안테나를 포함해 통신 장비 대부분도 죽어버렸다. 우주 미아가 된 오라시오 호는 구조요청만 간신히 보내고 있다.
짜잔. 이제 우주 등대가 등장할 차례다. 등대 대부분도 GRB 때문에 기능을 잃었지만 운이 좋은 곳도 있다. 오라시오 호는 여기서도 운을 하나, 아니 두 개 주웠다.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는 두 개의 등대는 작동을 멈췄지만 수리가 가능한 상태다. 그게 바로 내 등대와 엘리스의 등대다. 우주 등대는 빛을 직접 쏘기 때문에 안테나가 필요 없다. 나와 엘리스는 누가 먼저 등대를 고쳐서 오라시오 호에게 구원의 빛을 내밀지 경쟁을 하고 있었다.
기동장치가 목표물 근접 알림을 보낸다. 원자로 컨트롤러가 빙글빙글 돌아가며 도망치고 있는 게 보인다.
“내가 먼저 고치면 넌 수리를 할 필요도 없으니까 그냥 맘 편히 쉬고 있어, 엘리스.”
  • 등대 대부분도 GRB 때문에 기능을
    잃었지만 운이 좋은 곳도 있다.
    그게 바로 내 등대와 엘리스의 등대다.
    우주등대는 빛을 직접 쏘기 때문에 안테나가
    필요 없다. 나와 엘리스는 누가 먼저
    등대를 고쳐서 오라시오 호에게 구원의
    빛을 내밀지 경쟁을 하고 있었다.

제동 스위치를 올린다. 기동장치는 다시 한 번 이리저리 자세와 방향을 조절하며 조금 전과는 반대 방향으로 질소를 뿜어낸다. 질소를 너무 많이 쓰는 것 같다는 걱정이 조금 들었지만, 어차피 기동장치가 알아서 최적의 양을 사용했을 것이다. 제동은 완벽했고 내 몸뚱이 크기의 판자처럼 생긴 원자로 컨트롤러를 무사히 확보했다. 기동장치의 운반용 케이블을 컨트롤러에 고정하자 기동장치가 질소를 살짝 뿜으며 가속도를 확인하더니 경고 메시지를 띄운다. 지금 상태로는 등대까지 돌아가지 못한단다. 하, 망할.
“네 말대로 살을 좀 빼야 했어.”
어떻게 해야 할까? 산소는 이제 18분 정도 남았다. 질량이 늘어나서 속도가 느려질 걸 생각하면 돌아갔을 땐 5분도 남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엘리스가 임기응변의 대가였지만 지금은 도움을 받을 수가 없다. 옆에 있다고 한들, 지금까지 놀려댄 걸 생각하면 그냥 팔다리 하나씩 잘라서 무게를 줄이라고 할지도 모르지. 당연히 팔다리를 자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역시 엘리스야. 이럴 때도 영감을 주네.”
허리 주머니에서 만능 덕트 테이프를 꺼낸다. 오른쪽 종아리 가운데부터 발목 잠금쇠까지 테이프로 돌돌 그리고 최대한 세게 만다. 그리고는 발목 잠금쇠를 재빨리 풀어서 부츠를 벗어버린다. 발을 덮은 두꺼운 양말이 우주 공간에 노출된다. 진공보다는 영하 270도의온도가 더 무섭다. 테이프 감기를 다시 시작해 발목 아래까지 꼼꼼하게 그리고 두껍게 덮는다. 지릿한 동통을 참으며 왼쪽 다리와 발에도 같은 작업을 한다.
등대가 있는 미소행성은 중력이 지구의 2천 분의 1 밖에 되지 않는 돌덩어리다. 그래서 편리한 이동을 위해 금속으로 된 길이 설치되어 있고 부츠에는 커다란 전자석과 배터리가 들어있다. 그래서 부츠는 무겁다. 아니, 질량이 크다. 부츠 두 개면 12kg 정도는 된다.
다시 기동장치를 움직여 본다. 아슬아슬하게 파란불! 돌아가면 다시 걷지 못할 가능성이 아주 높지만 어차피 등대에서 일하면서 걸을 일은 거의 없었다. 앞으로도 거의 없을 거고. 오라시오 호 승무원들에게 외친다. 이제 곧 우주 등대가 그대들에게 희망의 빛을 비추리니!
파란불은 개뿔. 결국 도중에 질소가 다 떨어져서 제대로 제동을 하지 못했고 나와 원자로 컨트롤러는 작고 소중한 등대 행성에 한 번 충돌했다가 다시 튕겨났다(중력이 작은 세상에선 함부로 뛰어오르면 정말 큰일 난다). 다시 쓸 일이 없기를 바라며 기동장치를 반대편으로 최대한 세게 던져버리는 걸로 가까스로 등대까지 돌아왔다. 남은 시간은 4분. 충분하다.
외벽이 터져버린 발전실로 들어가 컨트롤러를 제자리에 집어넣자 정신 없이 폭주하던 원자로가 잠시 진정을 되찾는다. 외벽이 없는 상황에서 어차피 오래 견디지는 못하겠지만 오라시오 호에게 등대 신호를 보내줄 시간은 벌 수 있다.
이제 등대의 거주구(居住區)로 들어간다. 역시나 공기는 모두 빠져나가고 없다. 감마선 때문에 배터리가 폭발하면서 여기저기 균열을 만들어 놓은 덕분이다.
“엘리스.”
불러본다. 16분 전에 보낸 메시지에 답장이 왔을까. 조용하다. 관제 컴퓨터 화면에 엘리스 등대의 영상을 다시 띄운다. 원자로 입구의 그림자 속에 우주복을 입고 앉아있는 엘리스가 어렴풋이 보인다.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출발하기 전에 본 모습과 완벽하게 똑같다.
“내가 고쳤어. 넌 이젠 쉬어도 돼.”
엘리스는 답장을 할 수가 없다.
“나도 이제 쉴 거고.”
엘리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관제 컴퓨터가 두 개의 목표물 중 다른 하나, 그러니까 첫 번째 목표물의 위치를 다시 확인했다고 화면을 띄운다. 빙글빙글 돌아가며 날아가고 있는 등대 탈출선이 나타난다. 배터리가 터졌을 때, 탈출선이 하필이면 원자로 컨트롤러 반대 방향으로 튕겨져 날아가버렸다.
저걸 잡아서 탔다면 초급속 냉동수면에 들어간 상태로 해왕성 정거장까지 갈 수 있었다. 초급속 냉동수면이 건강에는 아주 나쁘지만, 그래도 산소 고갈이나 고장난 원자로의 방사선 만큼 나쁘지는 않다. 해왕성 정거장에서 신호가 온다. 피해는 크지만 일단 가동 중이라고 한다. 다행이다. 오라시오 호는 무사할 것이다.
이제 남은 시간은… 30초 정도. 아이들에게 보낸 편지는 아직 해왕성 궤도에도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차피 답장은 받지 못한다. 졸린다. 죽는 게 아프진 않아 다행이다. 두 발은 좀 아프지만.
엘리스가 마중 나온다.
“같이 가, 엘리스. 오라시오 호는 이제… 괜찮아.”
반가운 사람이 마중 나온다.
“…보고 싶었어. 여긴… 내 동료. 어이, 엘리스. 네가 좋아했던… 홍차 레시피를 만든 게… 이 사람이야.”
반가운 손길이 헬멧 유리를 통과해 얼굴에 닿는다.
“내가… 해냈어. 당신이 거기 타고… 있을 때는… 왜… 못했을까…”
두 발도 이제 아프지 않다. 눈을 감으니 아이들 얼굴이 보인다.
우주 등대의 불빛이 오라시오 호를 향해 달려나간다.

해도연

작가 겸 연구원.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천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부 전공은 외계행성과 원시행성계원반의 진화. SF소설집 『위대한 침묵』과 과학교양서 『외계행성: EXOPLANET』을 출간했으며 다양한 장르의 앤솔러지와 잡지에 중단편을 게재했다. 이 글에는 천문학적 지식에 작가적 상상력을 더해, 우주 등대에서 일하는 항로지표관리원의 이야기를 담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