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통선지역 임야복구측량

Writer. 오복동((前) 한국국토정보공사 가평지사장)

요즘 통일 이야기가 한창이다. 남북한의 정상이 서로 만나고, 미 국와 북한의 정상도 만났다. 특히 북한의 김정은과 우리 대통령이 도보다리에서 한참동안 담소를 나누는 장면은 인상 깊게 남아 있 다. 금방이라도 남북한이 연결되고 통일이 될 것만 같다. 이런 와 중에 민통선 안쪽의 측량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6.25 전쟁 중에 지적공부가 소실된 지역이 많았다. 일반지역이야 전쟁 이후 에 측량으로 지적공부를 복구하였지만, 군사작전지역이 많은 지 역은 쉽게 측량을 할 수 없었다. 이렇게 지적공부 소실 이후 지적 측량을 하지 못한 지역을 ‘미복구지역’이라고 하는데, 대다수가 강원도와 경기도에 편입(編入)되어 있다. 특히 경기도 지역은 그 수량이 729필지에 7,034㎢나 되었으며, 그 중 연천군이 88㎢로 가장 많았다. 이에 따라 199012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이중 일부인 25㎢의 임야복구 측량이 있었다. 다음 이야기는 민통선지 역 임야복구 측량에 나섰던 홍광기 부기사의 이야기1)이다.
6.25 전쟁 이후 이 지역 주민들은 전쟁 중 소실된 지적공부가 복 구되지 않은 관계로 재산권 행사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연 천군에서 업무를 발주하고 대한지적공사 경기도지사(현 한국국 토정보공사 경기본부)간의 임야복구 측량계약이 성사되었으며, 대한지적공사 연천군출장소로 업무지시가 되었다. 그런데 연천 군출장소에서는 업무지시가 내려왔지만 당시 출장소장은(박인 환님, 퇴직) 누구에게 업무를 분담시켜야 하는지 고민에 빠졌다.
군사작전지역이 어떤 곳인가. 곳곳에 지뢰가 매설되어 일 년이면 몇 명씩 사고가 나는 곳이 아닌가. 직원들은 생명보험 가입관계,

사규에 있는 공상 처리 관계 등을 따지며 누구도 선뜻 나서질 않았 다. 지금도 이와 같은 위험한 업무가 발생했을 때 선뜻 업무에 나 서겠다고 하는 직원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출장소장 이 며칠 동안 직원들을 설득한 끝에 홍광기 외 2명이 자원(自願) 하여 임야복구 측량에 착수하게 되었다.
업무 집행지역은 민통선 안쪽과 접경지역으로 군 작전 지뢰매설 지역과 미확인 지역이 많아 한 발도 쉽게 뗄 수 없는 지역이었다. 투철한 사명감이 아니면 업무를 진행하기 어려웠다. 또, 한겨울에 업무를 시작하다 보니 추운 날씨를 견뎌야 했고, 안전한 길만 다녀 야하기 때문에 먼 길로 돌아가야 하는 문제 등 수많은 제약과 싸워 야 했다. 특히 현장 초소에 있는 안내 표지판에 “○○ 지역에 얼마 전 누가 지뢰를 밟아 사망하였다”라는 글귀를 볼 때면 모골이 송 연해지기도 했다.
그래도 기분 좋은 일도 있었다. 군사작전으로 인해 대부분의 삼각 점이 망실(亡失)되었으리라 예상을 했었는데, 거의 대부분 잘 보 존되어 있었고, 성과도 아주 좋았다. 당시 국립지리원에서 삼각점 이 망실된 것으로 정리되어 있었는데, 그 원인은 알 수가 없으나 짐작하건대 당시의 여건상 직접 현장을 답사할 수 없어 망실로 기 록하였을 것이다
재미있는 일도 있었다. 당시 출장소장인 박인환님이 위로 차 현장 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기사가 삼각점에서 수평각 관측을 하기 위 해 트랜싯(전경의(轉鏡儀) 또는 경위의(經緯儀)) 망원경으로 초소 옆 삼각점을 시준하는 순간 출장소장과 조원 1명이 망원경 시야 에 들어왔다. 자세히 관찰해 보니 군인 초병 2명이 총을 메고 달려 와서 소장 일행을 연행해 가는 것 같았다. 기사는 ‘이게 무슨 일이 람, 큰일이 났구나!’ 싶었다. 또 다음 삼각점 관측을 하기 위해 조 표를 해야 하는데 큰 차질을 불러일으키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사실을 알고 보니 출장소장 일행이 초소에 신고를 안 하고 산에 오 른 모양이었다. 그렇게 초병에게 끌려(?)간 일행은 초소장에게 안 전에 대한 교육 및 훈계를 따끔하게 받고 내려왔다고 한다. 지금 으로서는 웃지 않을 수 없는 일화다. 이러한 고초 속에서도 연천 출장소는 그해 여름 업무지시된 지역에 대한 지적 측량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벌써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 풀이 무성하게 자라는 모습처럼 통 일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게 진행될 것으로 기대한다. 지적인(地籍人)의 입장에서 본다면 민간인 통제 구역 안쪽과 DMZ인근지 역 즉, 휴전선 인근의 지적 측량은 아직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않 았다. 앞으로 이곳에 대한 지적 측량이 모두 완료되는 날을 기대 해 본다. 그런 날이 온다면 이때처럼 초소장에게 불려가지 않아도 될 것이며, 은퇴한 지적인들도 손을 걷고 나서지 않을까 싶다. 필 자도 통일이 된다면 이곳에 대한 측량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한 켠에 자리잡고 있으니 말이다.

1) 1991년 지적공사 ‘지적’ 9월호에 실린 홍광기님의 수기 내용을 일부 인용하였습니다.

민통선지역
임야복구측량

Writer. 오복동((前) 한국국토정보공사 가평지사장)

요즘 통일 이야기가 한창이다. 남북한의 정상이 서로 만나고, 미 국와 북한의 정상도 만났다. 특히 북한의 김정은과 우리 대통령이 도보다리에서 한참동안 담소를 나누는 장면은 인상 깊게 남아 있 다. 금방이라도 남북한이 연결되고 통일이 될 것만 같다. 이런 와 중에 민통선 안쪽의 측량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6.25 전쟁 중에 지적공부가 소실된 지역이 많았다. 일반지역이야 전쟁 이후 에 측량으로 지적공부를 복구하였지만, 군사작전지역이 많은 지 역은 쉽게 측량을 할 수 없었다. 이렇게 지적공부 소실 이후 지적 측량을 하지 못한 지역을 ‘미복구지역’이라고 하는데, 대다수가 강원도와 경기도에 편입(編入)되어 있다. 특히 경기도 지역은 그 수량이 729필지에 7,034㎢나 되었으며, 그 중 연천군이 88㎢로 가장 많았다. 이에 따라 199012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이중 일부인 25㎢의 임야복구 측량이 있었다. 다음 이야기는 민통선지 역 임야복구 측량에 나섰던 홍광기 부기사의 이야기1)이다.
6.25 전쟁 이후 이 지역 주민들은 전쟁 중 소실된 지적공부가 복 구되지 않은 관계로 재산권 행사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연 천군에서 업무를 발주하고 대한지적공사 경기도지사(현 한국국 토정보공사 경기본부)간의 임야복구 측량계약이 성사되었으며, 대한지적공사 연천군출장소로 업무지시가 되었다. 그런데 연천 군출장소에서는 업무지시가 내려왔지만 당시 출장소장은(박인 환님, 퇴직) 누구에게 업무를 분담시켜야 하는지 고민에 빠졌다.
군사작전지역이 어떤 곳인가. 곳곳에 지뢰가 매설되어 일 년이면 몇 명씩 사고가 나는 곳이 아닌가. 직원들은 생명보험 가입관계,

사규에 있는 공상 처리 관계 등을 따지며 누구도 선뜻 나서질 않았 다. 지금도 이와 같은 위험한 업무가 발생했을 때 선뜻 업무에 나 서겠다고 하는 직원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출장소장 이 며칠 동안 직원들을 설득한 끝에 홍광기 외 2명이 자원(自願) 하여 임야복구 측량에 착수하게 되었다.
업무 집행지역은 민통선 안쪽과 접경지역으로 군 작전 지뢰매설 지역과 미확인 지역이 많아 한 발도 쉽게 뗄 수 없는 지역이었다. 투철한 사명감이 아니면 업무를 진행하기 어려웠다. 또, 한겨울에 업무를 시작하다 보니 추운 날씨를 견뎌야 했고, 안전한 길만 다녀 야하기 때문에 먼 길로 돌아가야 하는 문제 등 수많은 제약과 싸워 야 했다. 특히 현장 초소에 있는 안내 표지판에 “○○ 지역에 얼마 전 누가 지뢰를 밟아 사망하였다”라는 글귀를 볼 때면 모골이 송 연해지기도 했다.
그래도 기분 좋은 일도 있었다. 군사작전으로 인해 대부분의 삼각 점이 망실(亡失)되었으리라 예상을 했었는데, 거의 대부분 잘 보 존되어 있었고, 성과도 아주 좋았다. 당시 국립지리원에서 삼각점 이 망실된 것으로 정리되어 있었는데, 그 원인은 알 수가 없으나 짐작하건대 당시의 여건상 직접 현장을 답사할 수 없어 망실로 기 록하였을 것이다
재미있는 일도 있었다. 당시 출장소장인 박인환님이 위로 차 현장 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기사가 삼각점에서 수평각 관측을 하기 위 해 트랜싯(전경의(轉鏡儀) 또는 경위의(經緯儀)) 망원경으로 초소 옆 삼각점을 시준하는 순간 출장소장과 조원 1명이 망원경 시야 에 들어왔다. 자세히 관찰해 보니 군인 초병 2명이 총을 메고 달려 와서 소장 일행을 연행해 가는 것 같았다. 기사는 ‘이게 무슨 일이 람, 큰일이 났구나!’ 싶었다. 또 다음 삼각점 관측을 하기 위해 조 표를 해야 하는데 큰 차질을 불러일으키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사실을 알고 보니 출장소장 일행이 초소에 신고를 안 하고 산에 오 른 모양이었다. 그렇게 초병에게 끌려(?)간 일행은 초소장에게 안 전에 대한 교육 및 훈계를 따끔하게 받고 내려왔다고 한다. 지금 으로서는 웃지 않을 수 없는 일화다. 이러한 고초 속에서도 연천 출장소는 그해 여름 업무지시된 지역에 대한 지적 측량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벌써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 풀이 무성하게 자라는 모습처럼 통 일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게 진행될 것으로 기대한다. 지적인(地籍人)의 입장에서 본다면 민간인 통제 구역 안쪽과 DMZ인근지 역 즉, 휴전선 인근의 지적 측량은 아직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않 았다. 앞으로 이곳에 대한 지적 측량이 모두 완료되는 날을 기대 해 본다. 그런 날이 온다면 이때처럼 초소장에게 불려가지 않아도 될 것이며, 은퇴한 지적인들도 손을 걷고 나서지 않을까 싶다. 필 자도 통일이 된다면 이곳에 대한 측량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한 켠에 자리잡고 있으니 말이다.

1) 1991년 지적공사 ‘지적’ 9월호에 실린 홍광기님의 수기 내용을 일부 인용하였습니다.

2018-07-24T11:32:51+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