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정보 전문칼럼

지도와 모형에 의존한 상상은 이제 그만

지도와 모형에 의존한 상상은 이제 그만

모델하우스, 직접 체험하는 세상이 왔다

Writer. 전승훈(주식회사 브릴라 전략기획담당 이사)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재화는 완성된 형태로 판매되기 때문에 물건을 눈으로 확인하고 구매한다. 심지어 자동차, 청소기, 안마의자 등은 구매하기 전에 시승하는 등 실제로 사용해보기까지 한다. 그런데 새롭게 건설하는 거주 공간은 이것이 불가능하다. 공교롭게도 개인들이 구매하는 재화 중 부동산이 가장 큰 금액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완공 후 이것이 어떤 편익을 제공할지 제대로 확인하지도 못한 채 구매를 결정한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모델하우스를 건축하고 있지만, 이 또한 지어지는 아파트 중 극히 일부만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경우 인형의 집처럼 생긴 단순한 모형과 평면도에 의존해 판단해야 한다. 단독주택의 경우 이마저 불가능하다.

특히 주거 공간의 경우 실내뿐만 아니라 거실, 침실 등 각각의 공간에서 바라보는 외부 경관과 채광 정도, 앞 동이 어느 정도 시야를 가리는지 등이 실제 생활에서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실제로 몇몇 아파트나 주택의 경우에는 건축된 이후 내부보다 외부 경관이 집값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가 된다는 말은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이러한 요인들 때문에 부동산 업자들은 일반적으로 아파트 고층을 저층보다 비싸게 분양한다. 경관이 좋으니 더 비싼 값을 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충분하지 않다. 같은 층이라 하더라도 본인이 살게 될 집이 어떤 방향에 있느냐에 따라서도 그 가치는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같은 아파트라 하더라도 남향, 남동향, 남서향 등 방향에 따른 조망은 다를 수밖에 없다. 사실상 모든 집의 가치가 조금씩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정확한 실측에 기반한 3차원 공간정보다. 실제로 당사(브릴라)는 공간정보산업진흥원의 3차원 데이터와 실내 가상현실 모델하우스를 결합하여 가상현실 주거 체험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이를 이용하면 아파트 설계단계에서 이미 특정 집에 실제처럼 들어가 볼 수 있고 그 집안 어디에서도 외부 경치가 어떠한지 정확하게 체험할 수 있다.

한편, 우리가 방문하는 모델하우스는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는 실제로 건립하는 건립세대, 둘째는 비건립 타입들에 대한 모형, 셋째는 아파트 단지 전체 모형도다. 모델하우스 건립세대에 대한 건립비용은 한 타입 당 약 7천만 원 내외다. 비용이 크다 보니 실제로 분양하는 타입은 10~20가지에 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중 약 30%만 건립하여 고객들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실제로 건립하지 못하는 비건립 세대는 모형으로 제작한다. 이것도 각 타입별로 약 700만 원 내외의 비용이 소요된다. 모델하우스 중앙에 전시되는 대형 단지 모형의 제작 비용은 약 2억 원 내외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연간 최소 300건 이상의 분양이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분양용 모델하우스에 들어가는 비용만 연간 4천억 원을 상회하게 된다. 3차원 공간정보와 가상현실 기술이 없던 시절에는 이러한 모형들이 대안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한 집 한 집을 모두 보여줄 수 없으니 어쩌면 그 방법이 가장 현실적인 대책이었다. 사람들은 이러한 모형들을 바라보면서 실제 내가 살 집과 아파트 단지 모습에 대해 상상해야 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더 이상 우리에게 그러한 수고롭게 상상할 필요가 없을 것이며, 건설사들도 모델하우스에 높은 비용을 치르지 않게 될 것이다.

정확한 데이터에 기반 한 3차원 공간정보와 완벽한 상호작용이 가능한 3D 가상현실을 실내 모델하우스에 결합하면, 소비자들은 가상현실 기기를 착용하고 내가 들어가 살고 싶은 동 호수를 선택하고 체험하면 된다. 소비자들은 가상현실 속에서 집안 구석구석을 둘러보며 침실에서 한강이 보이는지, 앞 동의 어느 곳이 시야를 가리는지, 아침에서 저녁까지 채광은 어떻게 바뀌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 경우 건설사들은 각 호수별 가격을 더욱 다양화할 수 있고 구매자들은 복불복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책정된 가격으로 집을 구매할 수 있다. 언뜻 생각하기에 이와 같은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투자를 해야 할 것처럼 보인다. 3D 지도는 물론이고 고도에 따른 시선, 태양의 이동에 따른 엄청난 촬영 등이 수반되어 수많은 개발자들이 장기간 개발하여야 비로소 3차원 모델하우스를 제작할 수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런 작업은 드론 한번 띄우지 않고 가능하다.

실제로 <그림1>은 필자가 거주하는 여의도 모 아파트를 30층 아파트로 재건축 했을 때를 가정하여 제작한 콘텐츠다. 집의 거실에서 63빌딩과 한강이 보이고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이는 건설업체들이 재건축 사업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사업 소개를 할 때도 활용할 수 있으며, 모델 하우스에서도 충분히 활용 가능하다. 비용적인 부분에서도 약 10~20억 원이 소요되는 오프라인 모델하우스에 비해 2~3억 원이라는 적은 비용으로 개별세대의 내부를 보여 줄 수 있어 효용은 비교할 수 없이 크다.

그렇다면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일까? 현재의 기술력으로 구현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문제가 있다면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회 시스템’이다.

첫째, 우리나라는 선분양 제도가 중심이다. 따라서 분양 당시의 설계 계획이 실제 건설 과정에서 다소 변경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 경우 당초 시행 및 시공사에서 제공했던 각 호수별 전경 등이 완공 후에는 변경될 수 있다. 시행 및 시공 업체들은 이에 대해 책임지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아무리 소비자의 편익이 좋다고 해도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모델하우스를 방문하면 곳곳에 게시되어 있는 안내 문구가 있다. 바로 “본 모델하우는 전시용으로 실제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라는 것이다. 이 문구는 건설사들이 책임 소지를 피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조치다. 만약 이 문구가 유효하다면 가상현실 모델하우스에서도 충분한 사전고지를 하면 된다. 그렇게 된다면 고객들이 지금보다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고 지금보다는 나은 합리적 가격 체계를 가져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후분양제가 확대된다면 건설이 80%가까이 끝난, 즉 설계도가 확정된 상황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현재와 같은 체재에서는 후분양제를 하더라도 건설이 80%정도 진행된 상황에서 분양을 시작하기 때문에 현장 방문은 불가능하다. 여전히 모델하우스는 필요하고 가상현실 시스템이 충분히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어찌 보면 오히려 후분양제가 가상현실 모델하우스 도입을 확대시킬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된다면 홀로그램단지, 가상현실 기기, 컴퓨터 등이 가득찬 공간이 미래 모델하우스의 모습이 될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건설사들은 아파트 단지를 모두 가상현실로 구현해 놓는다면, 그 소프트웨어를 분양 후 부동산 플랫폼에 재판매하여 수익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프라인 모형은 모델하우스가 철거되면 재사용 가치가 없지만 온라인 콘텐츠는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사실상 시행, 시공사 입장에서 모델하우스 원가를 대폭 절약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러한 비즈니스가 가능한 이유는 가상현실 체험이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기존 주택을 거래할 때도 유용하게 이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구매자들은 매물로 나온 모든 집을 일일이 방문할 수는 없다. 발품도 한두 집이나 가능한 것이지, 수십 가구를 한 번에 살펴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가상현실 소프트웨어로 외부 전경 등을 최대한 확인한 후 꼭 필요한 집만 방문한다면 시간과 노력을 대폭 절약할 수 있고, 부동산 중개업자들도 끊임없이 방문 가능여부를 묻는 전화를 돌리거나 초인종을 누를 필요가 없다.

마지막으로 건축 설계 과정을 효율화할 수 있다. 세계 건설 시장은 약 10조 달러에 달한다. 이중 약 13%가 설계오류로 인한 재건설 비용이다. 이는 설계 과정에서 충분한 시뮬레이션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설계과정에서 채광이나 경관 등에 대한 고려가 필수적이다. 이를 도면과 수치에만 의존해서 해결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3차원 공간정보를 이용한 설계단계의 가상 시뮬레이션을 해 본다면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고, 재건설 비용 축소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여러 설계사들이 설계도면을 가상현실로 구현한 건물에 동시에 접속해 가상건물에서 채광, 경관, 내부 구조 등에 대해 실시간으로 토론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미국 등 선진국에서 이미 설계 단계에서 가상현실 기술을 도입해 사용하기 시작한 이유다. 실제로 이 분야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는 미국의 스타트업 IrisVR은 낮은 그래픽 수준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는 등 높은 사업성을 인정받고 있다.
누구나 남들보다 앞서 어떤 일을 먼저 하는 데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전례가 없는 일을 처음 하는 것에는 의심이 뒤따른다. 사업가들이나 투자자들, 정부 인사들이 모두 마찬가지다. 특히 투자자들이나 정부 인사들은 미국이나 유럽의 성공 사례들을 제시한 후에나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고민하기 시작한다. 3차원 공간정보라는 보물은 이러한 의심들로 인해 묻히거나 사업화에 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이에 대해 조금은 무모해 보이더라도 조금은 공격적으로 정부 차원의 지원과 사업가들, 투자자들의 도전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