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정보 이야기

구매를 이끄는 쇼핑 공간은 따로 있다

구매를 이끄는 쇼핑 공간은 따로 있다

Writer. 범상규(공간심리학자, 건국대학교 교수)

공간이 친숙하고 즐거움을 줄 때 쇼핑 시간은 늘어나고 긍정적인 인상은 상품에 대한 호감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높다. 집과 직장에 이은 제3의 공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소비와 생산의 주체가 되는 집과 직장은 물론 구매가 이루어지며 동시에 소비가 이루어지는 매장, 커피숍, 영화관, 미술관 등 역시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커지고 있다.

제3의 공간이 뜨고 있다

현대사회를 이끄는 경제시스템에서는 소비와 생산이 이루어지는 공간만이 정의되곤 했다. 소비가 이루어지는 가정과 생산이 이루어지는 공장, 사무실, 학교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던 것이 1990년대를 기점으로 산업사회의 틀을 벗고 정보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사회구성원들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공간의 필요성을 제기하게 되었다. 이른바 ‘제3의 공간’의 등장이다. ‘제1의 공간’은 먹고 자고 사람들과 만나서 생활하는 일상 생활공간이며, ‘제2의 공간’은 집 이외의 또 다른 공간인 사무실, 공장, 학교 등이다. 즉 제2의 공간은 작업공간이자 생산공간을 말한다. 이에 반해 제3의 공간은 기존 소비와 생산과는 다소 거리가 먼 창조적인 사유와 영감을 얻을 수 있는 명상의 공간이다.

제3의 공간(The Third Place)이란 단어는 미국의 사회학자이자 웨스트 플로리다 주립대학교 명예교수인 레이 올든버그가 1989년 그의 저서 『The Great Good Place』에서 처음 사용했다. 다른 사람들과 즐겁게 시간을 지낼 수 있는 지역 커뮤니티 공간을 제3의 공간으로 정의하면서 사용한 개념이다. 정의적인 관점에서 가장 근접한 사례는 스타벅스 매장을 꼽을 수 있다. 이 매장 창업자인 하워드 슐츠는 ‘스타벅스 매장은 단지 커피를 마시는 일상적인 공간이 아닌 제3의 공간’이라는 콘셉트를 접목시켰다. 매장 내에 무선 인터넷과 편안한 의자를 제공함으로써 편안하면서도 자신만의 공간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공간을 만들었다. 제3의 공간은 도시공학적으로 볼 때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른 생산과 소비의 장이 분화하여 가정(제1의 공간)과 직장(제2의 공간)이 분리되었고, 이후 또 다른 사회적 요인으로 인해 그 사이에 제3의 공간이 분화되었다. 이들 공간은 지리적 관점에서 볼 때 집과 회사의 중간에 위치한 쇼핑센터 등이 밀집한 전형적인 다운타운이며, 사회적 관점에서 본다면 생산보다는 소비에 가까운 활동이 이루어지는 여가와 자유의 공간이다. 결국 도시사회학에서는 제3의 공간을 가장 도시적인 공간으로 간주하는 것처럼 중요성과 관심이 확대되는 추세다. 제3의 공간은 구성원들의 사회, 문화, 소비에 이르는 행동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변수로 도시공학적, 소비심리적, 사회문화적 그리고 마케팅관점에서의 핵심요인으로 여겨지고 있다.

구매를 이끄는 공간은 다르다

제3의 공간의 개념은 구매환경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산뜻한 인테리어와 편리하게 정리된 진열대, 은은한 음악소리와 달콤함을 느끼게 해주는 아몬드향이 퍼져 나오는 현대식 쇼핑 환경이야말로 소비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도록 설계된 제3의 공간이다. 그러나 정작 이처럼 잘 갖추어진 매장일지라도 여전히 우리 뇌는 이곳을 정글과 다름없는 위험천만한 장소라고 인식한다. 이런 인식은 우리 뇌의 여러 영역이 원시 조상들이 위협을 무릅쓰고 정글과 사바나 초원을 나다닐 때와 같은 방식으로 반응하도록 프로그램 되었기 때문에 나타난다. 족히 10만 년은 됨직한 현대인이 갖고 있는 쇼핑시스템은 하찮게 넘겨버릴 수많은 환경 속 자극물에 대해 잠재의식 차원에서 인지하도록 설계되었다. 때문에 현대인들은 쇼핑 환경 속에서 접하는 수많은 스트레스 유발요인들을 극복할 때 비로소 원하는 물건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된다. 결국 선택 행위는 특정 제품으로부터 나오지만 궁극적인 구매 행위는 매장 환경 즉 공간에 달렸다.

간단한 사례를 하나 들어 보자. 매장을 걸어 다니는 ‘운동’과 관련된 일에는 우리 뇌의 왼쪽 부위가 더 능동적으로 관여한다. 또한 사람의 얼굴 표정을 통해 그 사람의 기분이나 감정을 분석할 때는 오른쪽 뇌가 좀 더 강하게 관여하도록 분리 뇌로 이루어졌다. 이런 연유로 매장을 걸어서 둘러볼 때 우리는 보통 오른쪽으로 돌아나가게 마련이다. 걸어 다니는 운동은 왼쪽 뇌가 관여하고, 이 왼쪽 뇌는 우리 신체의 오른쪽을 관장하기 때문에 그렇다.
고객이 매장에서 이동하는 방향을 볼 때 오른쪽 방향이 68퍼센트로 왼쪽의 8퍼센트보다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난 연구결과도 있다. 매장 정문을 기준으로 가능하면 오른쪽으로 동선을 잡도록 배치를 하고, 오른쪽에 신상품을 먼저 전시한다면 우리 뇌는 더 편안하고 즐겁게 쇼핑 을 할 수 있게 된다.
공간에 대한 고민은 커피숍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들 커피숍의 경우 독특한 커피 맛 못지않게 인테리어를 중요시하며, 소비자 역시 공간을 소비하려는 추세가 강한 편이다. 스타벅스 혹은 탐앤탐스를 굳이 찾아가는 이유는 단지 커피맛 때문은 아니지 않는가! 이들은 방문고객의 서로 다른 소비 목적을 고려해 푹신한 소파, 딱딱한 의자, 창가 1인 의자를 섞어서 배치하고 있다. 스타벅스처럼 무선 호출벨 대신에 고객을 직접 부름으로써 아날로그식 따뜻함과 편안한 분위기를 제공하기도 한다. 반대로 좌석 배치를 빡빡하게 만들면 고객들의 심리적 거리감을 해쳐 오히려 재방문율을 낮추고 매출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결국 쇼핑 공간은 단순한 ‘물리적 시장’ 차원을 넘어 우리 뇌를 잠재의식적으로 조정하는 ‘확장된 상품’ 차원으로 이해할 때 비로소 단순한 공간이 아닌 구매를 이끄는 공간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공감각은 쇼핑 공간에 필수적이다

우리 뇌는 제품을 둘러보고 구매를 결정하는 동안 가급적이면 뇌가 정보를 처리하고 저장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최소화하도록 진화되었다. 다시 말해 많은 노력을 들이기보다는 습관적으로 선택하기를 원한다. 특정 제품을 사용하는 동안 우리 뇌는 가장 좋은 상태를 기억했다가 구매시점의 매장 내에서 이를 떠올리고자 하는 이유다. 이때 우리 뇌는 놀랍지만 익숙하고, 쾌감과 자극을 주며, 즐거운 경험으로 만들어주는 매장환경을 더 원하게 된다.
왜냐하면 즐거움은 정서적 안도감을 주고 구매로 인한 스트레스와 고통을 최소화해 주며, 궁극적으로 쇼핑 시간을 증가시켜 주기 때문이다. 상상해 보라. 쇼핑카트를 서서히 밀고 와인코너를 지나갈 때 일순간 수십억 개 이상의 뉴런이 발화하면서 오감을 통해 감지되는 매장 내의 수많은 정보를 처리하게 된다. 이 때 뇌는 의식보다는 잠재의식을 통해 그 정보들을 조직화하여 기억 속 예전 정보 와의 신경네트워크를 활성화시킨다. 이때 기분좋은 상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는 냄새와 같은 향기, 기분을 변화시켜주는 템포의 음악, 감성을 자극시키는 촉감과 미각 등 오감이 있다. 이들 오감을 적절히 자극하는, 특히 두 가지 이상의 감각을 동시에 자극시키는 다양한 형태의 ‘공감각 마케팅’이 중요시되고 있는 이유다.

우리는 공간 속 오감 자극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상품 배열에도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맥주 코너 옆에는 국수나 라면보다 오징어포나 땅콩과 같은 견과류가 더 제격이다. 또 우리 뇌는 식품 코너에서 장바구니에 담을 상품을 결정할 때 가급적이면 아침- 점심-저녁 식사에 어울리는 품목 순으로 진행할 때 편안함을 느낀다. 식료품 매장에서 싱싱한 채소류를 배치하는 데도 관여한다. 통상 채소류는 기본적인 구매 품목이므로 가급적 안쪽에 배열함으로써 다른 품목의 구매를 촉진시킨다는 의견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싱싱한 채소류는 건강하고 품질에 신뢰감을 주고 방문객의 기분을 산뜻하게 만들어줄 수 있도록 가능한 매장 앞쪽에 배치하기도 한다.

체험공간을 활용한 브랜드 스페이스 전략이 뜬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소비가 이루어지는 공간으로써의 제3의 공간은 무엇보다도 소비자들의 기분이나 감정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받는다. 종종 브랜드 인지도나 제품의 차별적인 기능이나 디자인 그리고 높은 가성비의 가격대를 기준으로 선택하지만, 매장의 디스플레이나 판매원의 행동으로 인한 매장분위기에 좌우되는 경우도 무시할 수 없다. 현대사회의 기술과 정보는 더이상 제품간 차별화를 유도하는 데 한계가 있고, 궁극적으로는 소비자들의 감정이 새로운 선택변수로 등장하고 있다. 공간이라는 물리적인 요소가 그 안에 머물고 있는 소비자들의 감정과 만나는 접점이 매장의 분위기 즉 무드이다. 무드 매니지먼트(Mood Management) 전문가인 크리스티안 미쿤다는 그의 저서 『Brand Lands, Hot Spots &Cool Spaces』에서 뉴욕의 나이키타운, 필립 스탁이 설계한 마이애미 들라노 호텔, 베니스의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 독일의 폭스바겐 아우토슈타트 등을 매력적인 제3의 공간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처럼 매력적인 제3의 공간을 만드는 무드 매니지먼트 전략으로 4가지를 들었다. 첫 번째가 눈에 띄는 랜드 마크이어야 하며, 두 번째가 사람들이 그 공간에서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도록 만드는 몰링, 세 번째가 전체적으로 일관된 느낌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콘셉트 라인, 마지막 네 번째가 눈길을 확 끄는 볼거리가 있는 코어 어트랙션 등이다.

1990년대 후반 화제를 모았던 뉴욕의 나이키타운을 다시 한 번 살펴보자. 나이키는 자신들의 매정을 각 제품군을 의인화된 영역을 갖도록 공간을 분할시키는 ‘타운’이라는 명칭을 브랜드에 사용하였다. 나이키타운을 방문한 고객이라면 누구라도 마을 광장 혹은 넓고 높은 체육관 같은 공간에서 다양한 상품을 보면서 흥미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이 공간은 제품을 구매하러 온 게 아니라 마치 잘 차려진 과학관에서 즐겁게 놀고 간다는 느낌을 받도록 구성되었다. 그래서 나이키타운을 올랜도의 놀이공원처럼 즐거움을 주는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이는 공간(Space)도 기존 마케팅 도구들처럼 이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TV와 같은 전통매체를 통한 광고효과가 점차 그 효력을 다해가는 상황에서 소비자들에게 강력한 브랜드를 각인시켜줄 수 있는 대안으로 자리 잡도록 ‘공간’을 활용한 마케팅 사례이다. 이런 마케팅을 가리켜 ‘브랜드 스페이스 전략(Brand Space Strategy)’이라 한다.

공간이 단순한 구매를 위한 장소가 아닌 체험을 통한 브랜드를 각인시킬 수 있는 마케팅 수단으로 확실하게 자리 잡았다. 미국 컬럼비아대학 번 슈미트 교수는 ‘체험 마케팅이야말로 소비자들로 하여금 직접 체험에 의한 감동과 기억을 가장 강렬하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2017년 12월 오픈한 ‘스타벅스 더종로’는 330여 평의 넓은 공간에 25m의 거대한 테이블을 비치하고 가림막 없이 트인 공간으로 매장을 구성해 소비자로 하여금 편안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쉼터로 자리매김함으로써 스타벅스만의 랜드 마크를 또 다시 만들었다. 2017년 5월 문을 연 13m 높이 대형서가 3개로 구성된 코엑스몰 별마당도서관의 높고 넓은 공간감은 또 어떤가! 문화 콘텐츠를 공간에 입히자 소비자들이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쇼핑몰의 또 다른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공간이 단순한 쇼핑을 위한 장소가 아닌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만들 수 있는 중요한 마케팅 자원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공간심리학의 첫걸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