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천연보호구역 측량
– 급할수록 정해진 길로

Writer. 오복동((前) 한국국토정보공사 가평지사장)

가을은 단풍의 계절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단풍 명소로 손 꼽히는 산 중에서 설악산 단풍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해마다 가을이 되면 설악산은 단풍을 찾는 사람들로 등산로 입구마다 장사진을 이룬다.
설악산은 강원도 속초시, 인제군, 양양군, 고성군 등 4개 시· 군이 접경을 이루고 있으며, 백두대간의 줄기로 금강산까지 연결되어 있다. 또한, 주봉인 대청봉을 비롯하여 소청봉, 마등령, 안산, 점봉산, 가리봉, 주걱봉, 황철봉 등 높이가 해발 1,400m 이상인 고봉준령들이 모여 있다. 이곳은 백담사, 신흥사 등 유명 사찰들과 아름다운 계곡, 수십 개의 폭포들이 어우러져 우리나라에서 풍광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산이 깊고 산세가 험해 산에 오르려면 엄청난 체력과 인내력 을 요구하는 산이기도 하다. 산오르는것을 업으로 삼는 지적 인들 입장에서도 설악산은 그 험준함으로 소문이 자자한 산이다. 이번에 소개할 이야기는 이 설악산에 관한 이야기다.1)
19894월말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과 한국지적공사 강원지사장 간의 설악산 천연보호구역 경계 및 분할측량 업 무 계약이 체결되고 강원도 직할출장소에 업무지시가 내려왔다. 업무지시에 따라 19895월부터 설악산 천연보호구역 측량이 6개월간 진행되었다. 본 측량 업무는 설악산을 시작으로 전국의 국립공원 내의 천연보호구역을 분할하여 경계표 석을 설치하고 보호·관리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설악산의 험한 산세, 변화무쌍한 날씨, 긴 이동 거리 때문에 수월하지 않은 측량이었다. 국립공원 내이기 때문에 함부로 불을 피울 수도 없었고, 시통이 안 된다고 나무를 자를 수도 없고, 음식을 해 먹을 수도 없었다. 저마다 식사로 김밥 몇 개를 가방에 넣고 산을 오를 수밖에 없었다. 이때 측량기사들의 필수품이 1.5리터 페트병에 물을 채워 얼린 것이었다. 산을 오르면 땀이 많이 나서 물을 많이 찾게 되기 때문에 측량기사 들은 각자 얼린 물통 두세 개씩을 가지고 산을 올랐다. 물통의 얼음은 천천히 녹아서 한 번에 물을 많이 마실 수 없어 고역이었지만 그 덕에 오후 늦게까지 천천히 물을 마실 수 있었다.
변화무쌍한 날씨 때문에 고생한 일도 많았다. 설악산 동쪽에 솟아 있는 달마봉은 3일 동안 세 번의 시도 끝에 산에 오르게 되어 관측을 마칠 수 있었다. 표고가 526m에 불과하지만 날 씨가 조금만 흐려도 구름에 시야가 가려져 관측을 하지 못하 고 산을 내려와야 했다. 화채봉 역시 입구에서 왕복 8시간이 걸렸지만 시시각각으로 변덕을 부리는 날씨 덕분에 3번이나 올라가야 했다.
전국의 방방곡곡 산을 잘 타기로 유명한 측량기사들이지만 조난 사고도 있었다. 설악산의 안산과 주걱봉 측량을 목표 로, 설악산에서 측량을 시작한 지 4일 만에 있었던 일이다. 2 개 팀으로 나누어 1팀은 안산, 2팀은 주걱봉 탐색을 하기로 했다. 1팀은 새벽 530분에 산을 오르기 시작해 2시에 안 산에 도착하였다는 무전을 하고 김밥으로 점심을 먹고 아래 쪽 한계성지 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한계성지 쪽 능선 은 산세가 험하고 사방이 2~300미터 높이의 절벽이 가로막 고 있어 함부로 움직이기 힘든 곳이다. 그런데 1팀 직원 중 한 명이 한계리 주민에게서 한계성지를 거쳐 옥녀탕으로 내려가 는 길을 따라 숨겨진 길을 찾으면 3시간이면 내려갈 수 있다 는 말을 들은 모양이다. 그래서 수월하게 내려갈 요량으로 5 만분의 일 지형도를 토대로 옥녀탕으로 통하는 길을 찾기 시 작했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흘러 5시가 넘었고, 예정된 길로 도 내려가기 어려운 상황까지 발생했다. 옥녀탕으로 하산하 는 길목은 지형이 험준하고 잡목이 빽빽이 우거져 사방을 분 간하기 힘들었고, 몇 번을 바위절벽에 막혀 길을 되돌아가야 했다. 그러다 급기야 날이 어둑어둑해졌고, 시간은 저녁 8시 가 넘어버렸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서 산속 공기가 차가 워졌다. 한기가 스미기 시작하고 머지않아 추위가 엄습했다. 그마나 조금 남아있던 물도 바닥나자 측량기사들은 초조해지 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제야 무전으로 본부에 조난 신호를 보 내고 추위를 막기 위해 우의를 껴입고 손전등과 무전기에 희 망을 걸고 구조대를 기다렸다.
무전 연락을 받은 소장과 2팀은 유관기관에 조난신고와 구조 요청을 보내고, 조난당한 측량기사들에게 무전기 사용을 최 대한 자제하고, 최대한 침착하게 대처할 것을 주문했다. 조난 당한 이들은 무서움과 두려움을 떨쳐버리려고 노래를 부르는 등 갖은 노력을 했으나 그것도 잠시뿐 심한 스트레스와 갈증 으로 탈진 상태에 빠져들었다. 다행히 강원도 인제읍 산악구 조대에서 빠르게 대처했다. 구조대가 바로 산을 오른 덕분에 그날 11시경 조난지점을 찾을 수 있었고, 산악구조대원들이 로프를 설치하고 바위를 타고 올라가 직원들을 구할 수 있었다. 직원들은 구조대가 준 물과 빵을 먹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새벽 3시경에야 하산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일찍 이런 일이 있었던 것은 어쩌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측 량기사들은 이날의 사고를 교훈삼아 하산 시간을 철저하게 지켰고, 정해진 일정에 따라 약속된 길을 갔다. 덕분에 6개 월간 험준한 설악산을 오르내리면서 무사히 과업을 마칠 수 있었다.
가을이면 산을 찾는 등산객들이 늘어나고 조난 등 산악사고 가 발생한다는 뉴스가 종종 매스컴을 타고 나온다. 이들 중 대부분은 자기 체력에 맞지 않는 산행을 하거나 정해진 등산로를 벗어나 길을 못 찾고 조난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올해는 이런 조난 뉴스가 들려오지 않았으면 하는 조그만 바람을 가져 본다.


1) 지적 1990년 3월호에 실린 임우섭님의 수기를 재구성하였다.

2018-10-28T16:46:4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