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타수가 없는데도 배가 알아서 움직인다. 인공지능과 각종 센서로 주변 상황을 실시간 파악하고 관제센터에서 기상 정보·해도 등을 내려받아 가장 안전하고 효율적인 경로를 스스로 설정한다. 선박의 이상신호를 감지하고 알림으로써 유지 보수를 돕기도 한다. 스마트 선박(Smart Ship)은 이렇듯 똑똑한 첨단기술로 바다를 항해하고 있다.

활짝 열린 스마트 선박 시대

다양한 첨단기술을 탑재해 선박의 운항을 돕는 것은 기본, 이제는 스스로 최적의 항로를 설정하고 움직이는 단계에 이르렀다. ‘스마트 선박(Smart Ship)’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기존에도 정해진 항로를 따라 자동으로 움직이거나 운항 상황과 선박 상태를 원격으로 모니터링하는 고성능 선박이 존재했다. 그러나 자동운행기능은 인간이 설정한 항로를 따라가는 수준에 불과했고, 따라서 돌발적인 해상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없었다. 데이터도 사람이 쉼 없이 모니터링해야 유의미한 상태를 포착할 수 있었다.
스마트 선박은 이러한 성능에서 한 발 더 진화했다. 선박 내외부의 카메라·센서·라이다·GPS 등을 통해 정보를 취합, 운항 빅데이터를 만든다. 인공지능은 이를 바탕으로 선박 및 주변의 현재 상황과 기상 조건·항로 이상 여부·공간정보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연료 소비량을 최소화하면서도 더욱 빠르고 안전한 항로를 스스로 설정하고 움직인다. 선박에 달린 수많은 설비도 자동으로 제어하고, 고장과 오작동을 실시간으로 예방·진단한다. 더욱 중요한 점은, 이 모든 과정이 순식간에 이뤄지며 24시간 지속된다는 사실이다. 스마트 선박 도입의 장점은 분명하다. 먼저 사람의 실수로 인한 인적 과실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중앙해양안전심판원이 2010년에서 2014년까지 해양사고 원인을 분석한 결과 사람에 의한 운항 과실이 82%에 달했고, 2018년에는 84.5%까지 늘어났다. 반면 스마트 선박은 사방에 탐지장치를 달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객관적인 데이터를 실시간 수집·분석하여 배를 운행하기에 사고율이 매우 낮다. 선박 관리와 운행에 필요한 자원과 인력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것도 커다란 이점이다. 탑승자를 위한 주거시설 대신 적재공간을 늘린다면 그만큼 경제적이다. 또한 불필요한 항로를 줄이며 상당한 연료 절감 효과도 누릴 수 있다. 연료를 적게 쓰니 그만큼 친환경적이기도 하다. 세계 조선업계와 유수의 운송사가 스마트 선박에 큰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다.

시장 선점을 위한 전 세계적 노력

스마트 선박 시장의 선두주자는 유럽이다. 유럽은 2012년부터 3년간 선박 자율운항 프로젝트(MUNIN)에 53억 원을 투자하며 기술 선도에 나섰다. 그 결과 유럽 각국에서 혁신적인 성과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
노르웨이 해양솔루션기업 콩스베르그(Kongsberg)는 2017년 세계 최대 미네랄 비료 회사 야라(Yara)와 함께 자율운행 전기선박 개발을 발표, 2022년 진수할 예정이다. 2018년에는 세계 최초 자동운항 해운사 마스터리(Massterly)를 설립하기도 했다. 한편 영국 프로메어(Promare)연구소와 IBM은 인공지능 자율운항선박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선원 한 명 없이 인공지능을 통해 움직이는 선박으로 2021년 대서양 횡단을 목표로 삼고 있다.
중국은 2013년부터 정부 주도로 스마트 선박 연구를 시작했다. 2016년 스마트 선박 기술과 관련 제품 개발을 위한 스마트 선박 혁신센터가 설립됐고, 2017년 12월 세계 최초의 스마트 선박 ‘그레이트 인텔리전스호’를 정식 출항했다. 3만9천 톤급 화물선으로, 자율학습형 스마트 운행 및 유지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작년 12월에는 첫 무인 자율운항 화물선 ‘근두운 0호’의 시험 항해를 마쳤다. 더불어 세계 최대 면적을 자랑하는 자율운항 선박 시험 해역도 건설하는 등 스마트 선박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국가적으로 움직이는 모양새다.
그런가 하면 일본은 2012년부터 조선·해운·기자재 등 관련 업계 기관 40여 곳이 참여하는 ‘스마트 선박 애플리케이션 플랫폼(SAAP)’ 프로젝트를 진행, 선내 네트워크 서비스·육상과 선박 연결 플랫폼 등을 두루 개발했다. 또한 2025년까지 총 250척의 스마트 선박을 일본 내에서 건조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으며, 이를 달성하기 위해 10개 이상의 해운·조선기업이 공동 개발을 진행 중이다. 일본 최대 해운기업 NYK는 지난해 10월 세계 최초로 자율운항 선박의 시험 운항에 성공했다. 자동피항 운항시스템(SSR)이 적용되어 충돌 위험을 자동으로 회피하며, 스스로 최적의 항로 및 경제 속력을 산출·실행할 수 있다. ,br /> 조선 강국인 우리나라도 스마트 선박 시장 공략에 적극 나서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2011년 세계 최초로 스마트 선박을 건조한 데 이어, 2017년 업계 최초로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 선박 운항 및 관리를 지원하는 ‘통합스마트선박솔루션(ISS)’을 개발했다. 항해사의 숙련도에 따라 달라지는 항해 방법을 표준화하여 운항 효율성과 안정성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대우조선해양은 2018년 7월 업계 최초로 영국 설계 인증기관인 로이드선급(Lloyd’s Register)으로부터 스마트 선박 사이버 보안 인증 상위 등급(AL3)를 획득했다.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SK텔레콤과 손잡고 5G 기반 자율·원격 모형 선박 이지고(Easy go) 시험 운항에 성공했다.

공간정보를 활용한
바닷길 내비게이션

스마트 선박 운행에 있어 공간정보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도로처럼 길이 뚜렷한 것도, 표지판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원하는 항구에 도달하려면 GPS를 통한 현재 위치 정보와 정확한 해상 공간정보가 반드시 필요한 것. 특히 눈에 보이는 수평선 공간정보와 해저 지형의 공간정보를 동시에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두 정보 중 하나라도 잘못되면 암초에 걸릴 수도, 지상과 부딪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3차원 공간정보를 두루 담은 바닷길 내비게이션이 있으니, 바로 ‘e-내비게이션(e-Navigation)’이다.
e-내비게이션은 2005년 국제해사기구(IMO)에서 영국·미국·노르웨이 등 7개국의 제안으로 도입이 논의됐다. 선박 운항자의 과실에 의한 해양사고 감소와 해운 효율성 증대가 그 목적이었다. 이듬해인 2006년부터 개발이 본격화됐으며, 다각적인 노력 끝에 올해 실용화를 앞두고 있다. 세계 바다의 공간정보를 통한 항로 안내와 함께 주변 상황 안내·실시간 해상 상황 안내 기능까지 수행할 수 있어 항해 안전성·경제성 증대에 효과적이다.
만약 해양에 대한 공간정보가 없었다면, e-내비게이션과 스마트 선박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공간정보가 해상사고 예방과 항해 효율성 향상의 시금석으로 작용한 셈이다. 이렇듯 공간정보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미처 신경 쓰지 못한 여러 분야에서 두루 활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