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수많은 데이터가 축적된 현재를 살고 있다. 지금 각자의 공간에서 쌓아가는 ‘매일’의 기록은 또 다른 데이터가 되어 ‘미래’의 조각이 된다. 그렇기에 한 시대, 한 공간의 기록이 담긴 문화재를 발굴하고 보존하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 문화재 속 어제의 공간정보에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열쇠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과 4·19 혁명
그 기억의 기록과 기념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기록하며, 기념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 사회가 발굴하고 소중히 보존하는 문화재 안에 담겨 있다. 그 안에는 당시 그 공간에 존재했던 이들이 켜켜이 쌓아 올린 삶의 이야기와 역사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문화재청의 행보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무언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문화재청은 한국전쟁 70주년과 4·19혁명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관련 문화재를 발굴하고 복원하는 사업을 추진한다. 역사의 아픔과 상처를 과거의 기억으로 묻어두지 않고 그 공간을 기억하는 흔적들을 발굴하고 기록함으로써, 같은 아픔과 상처를 다시는 겪지 않기 위함이다.
이와 관련해 문화재청은 한국전쟁 관련 기록물 등 200여 건을 목록화하고, 참전용사 유물 등 10여 건을 문화재로 등록·지정할 계획이다. 4·19혁명도 문화재로 목록화하는 작업을 진행하는데, 관련 전단과 참여자 문서 등이 그 대상이다. 또한 한국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는 비무장지대(DMZ)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DMZ 남측지역 실태조사와 잠정목록 등재도 추진한다. 사람들의 발길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그 공간에는 수많은 희생자를 낸 전쟁의 흔적이 오롯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전쟁 당시의 비무장지대를 기억하고 기록하며 기념하는 과정에는 그동안 구축한 데이터와 공간정보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문화재
공간정보를 만나다

하나의 문화재가 만들어진 시기만큼 중요한 것이 공간정보다. 전국의 수많은 문화재가 부동산의 형태로 존재하는 만큼, 그 안에는 다양한 공간정보가 담겨 있는 것은 당연한 일. 같은 문화재라고 할지라도 어느 공간에 있었는지에 따라 문화재를 해석하는 방식도, 문화재가 갖는 가치와 의미도 달라진다.
문화재청은 이번 사업 이전에도 꾸준히 문화재와 공간정보의 접목을 추진해왔다. 전국 곳곳에 위치한 문화재 공간정보를 제공해 국민이 좀 더 편리하고 친숙하게 문화재를 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온 것. 이렇게 수집된 공간정보에는 문화재에 대한 접근성과 편리성을 높이는 것 이상의 가치와 의미가 있다. 문화재 공간정보 시스템 구축사업이 추진되기 이전에는 문화재와 관련된 정보를 알기 위해서는 종이지도 혹은 관보를 일일이 확인해야 했다. 관련 자료가 보관된 기관까지 가야 하는 불편함은 물론이고, 종이지도에서는 자세한 내용 확인이 어려워 부정확한 정보로 피해를 보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곤 했다.
문화재의 정확한 공간정보가 중요한 이유는 개인 혹은 기업의 피해를 예방하고, 유적 발굴의 사회경제적 부담을 줄이며 궁극적으로 문화재 훼손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건축 도중 문화재가 발견되면 모든 공사는 ‘정지’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개인 혹은 기업이 감당해야 한다. 문화재와 그 주변 지역은 문화재 지정구역, 혹은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분류되어 건축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문화재 규제정보를 공사 이전에 확인함으로써 혹시나 발생할 수 있는 문화재 훼손을 최소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차곡차곡 구축한 공간정보는 문화재 유적조사나 지표조사 시, 비용과 시간을 단축하고 발굴의 정확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문화재청이 GIS 기술을 활용한 문화재 공간정보 시스템 구축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이유다.

지도 위에 문화재를 기록하다
문화재 공간정보 서비스

문화재청이 구축한 문화재 공간정보 서비스(Heritage Geographic Information System, http://gis-heritage.go.kr)는 문화재 정보와 지도 정보가 결합한 공간정보 활용체계다. 2002년에 매장 문화재 공간정보 구축을 시작으로 2004년 국가 및 시도지정 문화재 공간정보 구축, 2008년 매장 문화재 지정 문화재 통합 시스템을 거쳐 현재의 ‘문화재 공간정보 서비스’까지 단계적으로 발전해왔다.
문화재 공간정보 서비스는 문화재 위치 정보, 속성 정보에 대한 공간 데이터베이스를 기본으로 한다. 문화재의 사진 및 도면, 영상, 설명 등 다양한 정보들이 위성 기반의 공간정보와 함께 결합하여 HGIS 지도 서비스로 제공된다.
문화재 공간정보 서비스는 계속해서 데이터를 갱신, 축적하면서 완성도를 높여가고 있으며, 문화재청은 올해부터는 문화재 구역 위치, 범위, 정보 등 문화재 공간정보 원본 자료 15만 건을 전면 개방해 생활밀착형 정보 서비스를 확대키로 했다.

3차원을 넘어 4차원으로 확장된
문화재 공간정보

과거의 문화재를 발굴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발굴한 문화재를 보존하는 일이다. 많은 문화재를 처음 만들어진 그대로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노화가 생기기도 하고, 숭례문 화재 사건과 같은 예기치 않은 인재로 훼손되기도 한다.
국가문화유산포털(www.heritage.go.kr)에서는 ‘3D 문화유산’ 서비스를 구축,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다. 문화재를 3차원 스캐닝 기술을 활용하여 3D 데이터화하고, 이를 민간에서 3D 프린팅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3D 문화유산’ 서비스를 통해 공유하고 있다. 이 자료는 지진, 화재 등으로 문화재가 훼손되거나 멸실되는 상황을 대비해 원형 복원을 위한 기초 자료로 활용하기 위한 것으로 프린팅, 모델링 등 약 1,000여 건의 자료가 국가문화유산포털에 보관되어 있다. 문화재청은 3D 프린팅을 이용한 관광상품 개발, 문화유산 교육 자료와 홀로그램,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등의 전시, 교육, 홍보 콘텐츠를 제작했고, 문화재 멸실 부분 복원모형 제작과 학술연구 등에도 활용해 왔다.
문화재와 공간정보의 결합은 3차원을 넘어 4차원 가상공간으로 확대 운영될 계획이다. 문화재청은 일명 ‘한양도성 타임머신’ 프로젝트를 통해, 600년 전 한양의 문화유산을 기록, 복원, 재현한다. 광화문을 중심으로 조성된 한양 600년의 문화유산들을 시간과 공간이 연결된 4차원(3D+시간) 가상공간에 실물 크기로 되살리는 것. 이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조선 개국부터 임진왜란을 거쳐 경복궁 중건,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근·현대 서울까지 한 공간 안에서 변화하는 역사·사회·문화를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을 통해 체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