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위기의 순간에 생명을 구하는 것은 물론 일상에서도 소외되는 곳 없이 골고루 영향을 미칠 때 그 효용과 가치를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 공간정보 관련 기술이 데이터 경제 시대의 핵심 인프라를 넘어 인류 보편적 가치 실현을 위해서도 더욱 주목받고 있는 이유다. 개인을 넘어 ‘더불어 사는 이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세밑, 사람을 향한 공간정보의 활약상을 살펴본다.

취약계층 사후 지원을 넘어
선제적 대응을 이끌다

지난 2003년, UN은 산하기구인 UN해비타트(UN Human Settlements Program)를 통해 세계 1,000여 개 도시의 도시계획 담당기관에 GIS 소프트웨어를 제공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들의 목표는 개발도상국의 급속한 도시화에 따른 빈민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다. 이전까지 GIS는 모잠비크 홍수방지 계획, 케냐의 AIDS 대책 등에 적용됐지만 체계적으로 활용되지는 못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였다. 반면 UN해비타트는 위성사진, 센서스 통계 등 다양한 정보를 통합하는 GIS 소프트웨어를 도입하면 영아사망률이 높은 지역이나 기본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을 식별해 빈민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으리라 자신했다. 이러한 계획 아래 UN해비타트는 해당 소프트웨어를 기증하는 것은 물론, 담당자들에게 그 활용법을 교육하며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지원해왔다. 이후 20여 년이 지났고, 그 사이 공간정보는 빅데이터 등과 빠르게 결합하며 인간의 삶을 위한 기술에 한발 더 다가섰다. 일례로 세계 각국의 행정 단위에서는 공간정보 빅데이터를 활용해 취약계층의 주거나 빈곤 상태를 파악해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 1월 행정안전부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이하 관리원)이 ‘복지공감지도’를 제작해 발표했다. 관리원에서는 안성시에서 제공받은 복지 데이터와 자체 확보한 공공 데이터를 활용해 지역 내 공공 및 민간 지원기관의 지원항목과 이를 필요로 하는 취약계층 현황을 지도로 구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했다. 복지공감지도 제작을 위한 분석 과정에서 관리원은 취약계층이 많이 거주하는 3개소를 복지기관 추가 설립지로 제시하고 교통이 불편한 지역을 아우르는 복지셔틀버스 4개 노선을 선정해 시범운행을 제안했다. 또한 질병이나 부상, 실직 등으로 인한 위기가정이 기초생활수급이나, 차상위계층과 같은 지속적 지원 대상으로 이동할 가능성을 83.3%의 정확도로 예측하는 분석 모델도 개발했다. 이와 같은 노력을 통해 안성시는 위기가정을 정상화 시킬 수 있는 맞춤형 지원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분쟁지역부터 재난지역까지
GIS와 함께 진화하는 구호활동

공간정보의 발전은 세계 각국의 구호단체들의 활동에도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일례로 GIS를 활용해 돌발 상황에 대응하고 있는 레바논적십자를 꼽을 수 있다. 레바논은 1975년부터 1990년까지 내전을 치렀고, 2011년에는 시리아 전쟁이 레바논으로까지 번져 위기를 겪어야 했다. 레바논적십자사는 분쟁 지역 내 지도의 정확성 확보, 혈액 공급과 수요의 균형 조절, 현장 자원봉사자들의 데이터 수집 및 프로젝트 관리 등 세 가지 목표를 중심으로 GIS를 활용하고 있다. 먼저, 구급차의 GPS 위성수신기와 GIS를 연결해 대피경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하며 부상자들을 국경 너머의 안전지대로 대피시키고 있다. 또한 레바논 내 각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혈액의 양과 혈액 기증자들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GIS 기반 시스템도 구축했다. 이 시스템을 활용하면 혈액이 부족할 경우 어디에서 제공받을 수 있을지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400명의 직원과 1만 2,000명의 자원봉사자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구조 현장에 파견하는 데에도 유용하다. 전쟁이나 정치 상황에서 비롯한 비상사태는 물론, 지진이나 산사태 등 자연재해 발생 위험도 높은 지역인 만큼 각지에 흩어져 있는 활동가 각각의 역할과 프로젝트 진행상황 등을 제대로 공유해야만 효율적인 관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2013년 11월, 필리핀에는 역대 최강의 폭풍 하이옌이 강타해 6,200명 이상의 사망자와 수백만 명의 이재민을 발생시켰다. 월드비전은 2010년 아이티지진 구호활동의 경험을 살려, GIS 관리자와 전문가를 지원 스태프에 포함시켰다. 이들은 태풍 피해 범위와 강도에 대한 필리핀 정부 데이터와 지역 주민들의 피해 취약성 데이터를 취합해 발빠르게 상황 파악에 나섰다. 이 과정을 통해 월드비전은 당초의 계획대로 무사히 필리핀의 48개 자치단체 내 500개 이상 마을에 구호품을 배포하며 이재민 구제를 진행할 수 있었다.

집단지성 힘 입고
사랑의 온도 높이는 공간정보

지난 6월, 국제 인도주의 의료구호단체인 국경없는의사회는 서울에서 ‘생명을 살리는 지도 만들기’ 행사를 개최했다. 이 행사는 정확한 공간정보가 부족해 구호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취약 지역의 디지털 지도를 집단지성의 힘으로 구축하는 글로벌 프로젝트 미씽맵(Missing Map)의 일환이었다. 미씽맵은 국경없는의사회, 영국과 미국의 적십자사, 오픈스트리트맵 인도주의팀 등 4개 단체가 2014년 시작한 것으로, 현재까지 전 세계 8만 3,000여 명이 참여했다. 누구나 편집할 수 있는 오픈소스 지도 서비스인 오픈스트리트맵을 이용해 지도에 없는 건물과 길 등을 그려 넣는 방식이다. 이렇게 제작된 지도는 국경없는의사회를 비롯한 구호단체가 재난이나 전염병 등 긴급상황에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하지 않아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다는 면에서 집단지성에 기반한 커뮤니티 맵핑에 속한다.
2012년 미국 뉴욕과 뉴저지 부근에 불어닥친 초대형 재난 허리케인 샌디의 피해 복구 과정에서도 커뮤니티 맵핑은 위력을 발휘했다. 800만 가구의 전기가 끊겨 난방과 운전을 위한 기름이 필요했던 상황에서 주유소마다 수백 대의 차량과 사람이 늘어서는 대혼란이 초래됐다. 이 사태 수습에 적극 나선 것이 GIS에 기반한 참여형 애플리케이션이었다. 맵플러라는 애플리케이션을 중심으로 자원봉사자들은 1,000여 개가 넘는 주유소의 상황을 파악해 최신 정보를 웹사이트에 게시했고, 완성된 정보는 미국연방정부 콜센터와 재난방지국, 에너지국 등의 기관과도 연계해 활용됐다. 2013년 겨울, 서울시가 진행했던 ‘서울시 희망온돌 프로젝트’는 보다 일상에 가까운 사례다. 당시 서울시는 웹사이트를 개설하고, 기부단체와 기부품목, 도움이 필요한 이웃의 정보를 지도에 나타냈다. 개설과 운영은 서울시에서 했지만 시민 누구나 지도에 정보를 입력하는 방식으로 데이터를 확보해 취약계층 지원에 적극 활용했다. 이처럼 구호단체와 정부기관은 물론 개인의 참여까지 공간정보는 인간을 위해 그 쓰임이 다양해지고 있다. 특히 공간정보를 구축하고 활용하는 사람들의 철학과 지향이 명확할 때 그 가치는 보다 빛을 발휘한다. 인공지능, 스마트 모빌리티, 데이터 경제 등 공간정보가 실현할 눈부신 미래의 바탕에는 결국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