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곧 낯선 곳으로의 모험이기에 설렘과 불안, 긴장이 공존한다. 길을 헤매느라 여행지의 매력을 만끽하지 못하기도 하고, 큰 맘 먹고 떠난 여행에 이런저런 어려움들로 실망하고 돌아오기도 한다. 때문에 우리는 종종 질문을 던진다. ‘간편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가상현실 여행이라는 흥미로운 분야는 바로 이러한 토대 위에서 움텄다.

가상현실 여행에 푹 빠진 지구촌

여행은 인간의 영원한 로망이지만 여행을 위해서는 많은 것을 준비해야 한다. 여행지에 관한 정보를 파악해야 하고, 교통편과 숙박시설을 예약해야 하며 온갖 여행용품 준비는 당연하고 몇 시간에서 몇 십 시간에 이르는 이동시간도 감내해야 한다. 이렇게 도착한 여행지가 마냥 좋기만 한 것도 아니다.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눈에 띄기 마련이고, 잘 모르는 곳이다 보니 알게 모르게 몸과 마음이 긴장 상태를 유지한다. 그래서인지 돌아오면 여독에 시달리기도 일쑤다. 그런데 여행에 ‘가상현실(Virtual Reality, 이하 VR)’이라는 개념을 접목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고글처럼 생긴 가상현실 헤드셋과 이어폰을 쓰고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하면 지금 내가 발 붙이고 있는 곳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탄자니아 세렝게티국립공원 한가운데를 누비며 야생동물들의 생생한 삶의 단면을 살펴볼 수도 있고,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 전시된 ‘모나리자’도 눈앞에서 감상할 수 있다. 하늘을 날아다니며 슈퍼맨처럼 땅을 내려다볼 수도, 로켓을 타고 우주를 유영할 수도 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유적과 유물을 과거 모습 그대로 둘러보는 일도 가능하다.
이러한 개념이 아직 낯설게 다가올 수 있지만, 가상현실 여행은 생각보다 깊숙하게 일상 속으로 들어와 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관광청은 2016년 3월, 세계적인 VR기기 제조사 오큘러스 리프트와 ‘베이거스 VR’ 애플리케이션을 론칭했다. 사용자는 영상을 통해 메인 스트리트에서 운전을 하고, 클럽 공연도 즐긴다. 싱가포르 정부도 ‘싱가포르 인 유어 핸즈’ 애플리케이션을 출시해 명소들을 직접 걸어 다니는 듯한 생생함을 선사한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도시 아테네는 ‘아테네 인 VR’ 애플리케이션으로 역사 탐방 경험은 물론 관련 지식과 정보를 전달한다.

시공간의 제약을 극복하다

가상현실 여행은 시간과 공간도 가볍게 뛰어넘는다. 구글은 2016년 11월, 지구 전역의 위성사진을 기반으로 다양한 지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구글 어스’ 서비스에 가상현실을 접목시켰다. 가상현실 기기를 착용하고 ‘구글어스 VR’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하면 지구를 돌려가며 가고 싶은 곳을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선택한 곳의 상공과 도시 및 자연 곳곳을 새처럼 날아다니며 현실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색다른 차원의 여행을 만끽할 수 있다.
한국관광공사와 파주시는 지난 6월 20일, 임진각에 ‘한반도 가상현실 여행 체험관’을 공동 조성하는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2020년 준공 예정인 ‘한반도 생태평화 관광종합센터’에 마련되는 이 시설에는 비무장 지역 내 생태 체험과 함께 북한의 주요 명소도 가상현실로 돌아볼 수 있다. 한국관광공사와 파주시는 우리나라와 북한을 아우르는 가상현실 여행 콘텐츠가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를 실현시키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정부는 우리 땅 독도의 이모저모를 알아볼 수 있는 독도 가상현실 여행 콘텐츠를 선보였다. 국내 스타트업 토포로그와 함께 ‘독도 가상여행 데이터 세트’를 제작, 국내외에 배포할 예정이다. 독도의 지형과 생태 환경은 물론 안영복길·표지석·등대 등 독도의 부속 시설물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고 관련 정보도 얻을 수 있어, 일본의 억지 영유권 주장을 효과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콘텐츠로 그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가상현실 기술은 지금은 볼 수 없는 문화유산을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는 통로 역할도 담당한다. 서울시는 8월 20일, 종로구 돈의문 옛터에서 ‘돈의문 IT 건축 개문식’을 개최했다. 조선시대 한양 4대문 가운데 서쪽에 있던 돈의문은 1915년, 일제강점기에 도로 확장을 이유로 철거됐다. 이에 서울시는 ‘돈의문 디지털 복원 프로젝트’를 추진, 가상현실 애플리케이션으로 돈의문의 다양한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마련했다. 과거와 현재를 가상현실 기술로 엮어, 우리 역사의 발자취와 문화유산의 중요성을 자연스럽게 되새길 수 있도록 도운 것이다.

점점 확장되는 가상현실 여행

현재의 가상현실 여행 기술은 명확한 단점을 지니고 있다. 시각 및 청각 외 다른 감각은 활용하지 못한다는 점과, 여행지의 현재를 살펴볼 수 있는 실시간성이 결여돼 있다는 점이다. IT 전문가들과 여행업계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펼치고 있다. 일본 항공사 아나홀딩스는 10월 15일 열린 첨단전자기기박람회 ‘시텍 2019’에서 원격조종 로봇 서비스 플랫폼 ‘아바타인’과 아바타 로봇 ‘뉴미’를 선보였다. 아바타인을 사용하는 고객들은 뉴미를 원격 조종하면서 지금 이 순간의 여행지를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다. 아나홀딩스는 2020년 4월까지 뉴미를 1,000대 배치해 본격적으로 서비스할 예정이다. 한편 우리나라 카이스트에서는 아바타 개념과 자율주행자동차를 결합한 ‘가상 차량공유’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타지에 있는 사람들은 아바타 자율주행자동차를 통해 가고자 하는 곳으로 차량을 운전할 수 있고, 차량 밖 사람들과 실시간 영상 및 음성으로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다. 기존의 가상현실 여행에서 진일보한 ‘아바타 여행’이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가상현실 여행이 현지로 직접 이동하는 ‘진짜 여행’을 완벽하게 대체하기는 힘들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여행지에서 온몸으로 느끼는 감성과 가상현실 속에서 느끼는 감정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행업계는 가상현실 여행을 ‘진짜 여행의 전초전’ 정도로 설정, 사람들에게 여행지의 낯섦을 불식시키고 현지 모습과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용도로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보다 생생한 가상현실 여행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공간정보를 수집·분석·구현하는 능력을 기르는 데에도 집중하고 있다. 지금이야 이 정도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가상현실 여행이 그 자체로서도 확고한 위치를 점할 수 있는 날이 곧 올 수도 있다. 미래는 우리의 예상을 넘어서서, 그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법이니 말이다.

가상현실 기술은 지금은 볼 수 없는 문화유산을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는 통로 역할도 담당한다. 서울시는 8월 20일, 종로구 돈의문 옛터에서 ‘돈의문 IT 건축 개문식’을 개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