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반 홍대를 중심으로 시작된 골목길 문화가 삼청동, 신사동, 이태원 등으로 확산되면서 2000년대 중반부터 도심의 골목길이 부활하기 시작했다. 큰길에서 한 발자국 들어가면 동네 안을 이리저리 통하는 좁은 길이 열리고, 사람들에게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선물해주었다. 조금 다른 공간을 찾아 헤매던 이들에게 ‘나만을 위한 소비 공간’으로 자리한 골목은 새로운 상권을 형성해 쇠락하던 도심을 재생시키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다.

일상의 트렌드가 된 골목

1970년대 강남이 개발되면서 아파트 단지가 새로운 주거 문화로 자리잡고, 잘 닦인 대로와 주변 상가와 고층빌딩이 현대인의 삶을 파고들면서 골목은 한때 외면 받는 공간이 되어갔다. 그런데 골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홍대, 삼청동, 신사동, 이태원은 1세대 골목 상권으로 급부상했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보다 심화되어 골목이 하나의 관광자원으로 자리하기에 이른다. 서울 이화동 벽화마을이나 문래동 철강거리를 비롯해 부산 보수동 헌책방거리, 대구 김광석거리 등이 그 좋은 예이다. 이 골목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관광자원에서 문화자원으로 인정받았고 새로운 트렌트에 민감한 젊은 세대들에게 골목은 감성을 공유하는 공간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골목은 통행의 기능뿐만 아니라 공용 공간으로 거주민들 간의 소통이 이뤄지는 장소이다. 함께 하는 이들의 삶과 기억, 흔적이 오롯이 반영되는 곳이다. 특히 과거 골목길은 아이들의 놀이터, 이웃들의 사랑방 등 공통체적 공간이란 성격이 강했다. 2015년 방영되어 큰 인기를 끌었던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배경이 되었던 쌍문동은 과거의 골목 문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에게 골목이란?

압축 성장과 개발 시대에 길은 자동차들이 장악한 공간이었다. 그런데 골목길은 자동차가 다니기 어렵고 도보가 오히려 적당하다. 골목길은 자동차들에게 빼앗긴 길을 되찾은, 걷기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특별한 장소가 된 것이다.
호기심이 많고 가치 지향적인 소비를 하는 밀레니얼 세대(1980~2000년생)들에게 골목은 발견의 장소이자 탐험의 공간이다. 미로 같이 연결되는 골목에서 마주하는 놀거리, 먹거리, 볼거리, 살거리 등은 사진을 찍기 좋고 소비하기 좋은 곳의 다름 아니다. 낡고 오래된 골목에 옛 풍경을 간직한 채 자리한 작은 가게는 색다른 풍경으로 기대하지 않은 우연을 선물하며 밀레니얼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들에게 골목이 특별한 이유는 각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골목이 가진 고유한 가치와 문화를 보존하면서 새로운 브랜드를 입힌 동네들은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며 도시재생으로 확장된다. 익선동은 그 좋은 사례가 된다.
동쪽에는 종묘, 서쪽에는 인사동, 아래로는 종로, 위쪽으로는 창덕궁과 북촌에 둘러싸인 마을 익선동. 이곳은 조선시대 서민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주던 근대식 한옥이 아직까지 그대로 남아있다. 이 동네의 55%가 한옥이다. 2004년 재개발 사업의 추진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하기도 했으나, 2018년 익선동 일대는 재개발 구역에서 해제되고 한옥 밀집지역으로 지정됐다. 젊은 창업자들은 이곳에 들어와 오래된 한옥을 정비, 개조하면서 간판 없는 가게, 카페와 갤러리, 비디오 타운과 오락실 등 개성 있는 공간들을 만들어나갔다. 그리고 유행에 민감한 젊은 세대들이 이곳으로 몰려 오며 비좁은 골목은 시종일관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홍대와 성수동, 핫한 골목의 대명사

한편, 골목상권 1세대였던 핫플레이스 홍대는 연남동과 동교동을 지나 서교동 카페거리, 상수 동 발전소길, 더 나아가 ‘망리단길’까지 확장되었다. 각각의 거리는 고유의 특성을 갖게 되면서 젊은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연남동은 2015년 ‘연트럴파크’로 불리는 ‘경의선 숲길’이 생기면 서 활기를 얻었고, 골목 안쪽에 자리한 ‘동진시장’을 중심으로 젊은 예술인들이 모여 창작품을 판매하며 더욱 사랑받게 되었다. 일명 ‘망리단길’로 불리는 서울 마포구 망원동은 ‘망원시장’을 중심으로 이야기된다. 낮은 다세대 주택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망원동 포은로 일대에 청년들이 모여들며 새로운 에너지가 생겨났다. 이곳의 골목은 특색 있는 가게들이 쭉 늘어선 것이 아니 라 곳곳에 간판 없이 숨어 있어 보물찾기 하듯 꼼꼼하게 살피는 매력이 있다.
성수동은 미국 뉴욕의 브루클린을 연상시키는 풍경을 자랑한다. 지하철 2호선 뚝섬역부터 성 수역을 지나 성수사거리에 이르는 연무장길을 비롯해 성수역 2번 과 3번 출구 앞의 카페거리, 수제화거리, 뚝섬골목길 등이 명소로 떠오른다. 제화업계 생산 공장이 속속 입주하며 국내 구두시장의 메카로 평가됐던 성수동은 2000년 이후 중국의 값싼 제품들에 밀려 쇠락의 길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2011년 50년 동안 정미소 와 창고로 쓰였던 벽돌 건물이 카페, 갤러리, 레스토랑 등으로 구 성된 복합문화공간 ‘대림창고’로 변모하며 부활의 신호탄을 알렸 다. 공장 건물에 패션 디자이너 숍이 자리하는 등 낡은 공간은 핫 한 공간으로 급부상했다.

① 홍대입구
홍대입구역에서 홍익대학교 정문까지 이어지는 대로변과 그 이면도로로 맛집과 로드숍 등이 즐비하다. 클럽데이와 이색 노래방 등이 자리잡으며 신촌에서 홍대입구로 상권의 중심이 이동했다.

② 연남동/동교동 거리
경의선 폐철길 공원화 공사와 홍대지역의 편리한 상권을 선호한 중국인 유학생 등의 유입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홍대입구보다는 조용하면서도 분위기 있는 상권으로 평가된다.

③ 서교동 카페거리
6호선 상수역 개통과 합정역 내 주상복합 개발 등으로 유입 인구가 늘어나면서 홍대 주차장 거리에서 단절되었던 상권이 서교동까지 확장되었다. 특색 있게 리모델링한 건물에 특이한 콘셉트의 상점이 입점해 있다.

④ 상수동 발전소길
서교동 카페거리 형성 이후 조용한 주택가 골목에 카페들이 생겨나면서 유입 인구가 증가했다. 향후 인근 지역 발전소 공원화 계획 등으로 제2의 연트럴파크로 주목받고 있다.

골목길 부활의 핵심,
위치기반 서비스와 SNS

일반적으로 상권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편리한 교통과 주차시설, 대로변 중심의 평지 등이 주요 요소였다. 하지만 골목은 주차시설도 없거나 협소하고, 대중교통을 통한 접근성이 떨어진다. 이러한 상권 형성의 공식을 깨고 골목이 새로운 상권으로 부상한 이유는 스마트폰을 이용한 ‘지도 앱’과 소셜 미디어를 통한 공유 문화에 기인한다. LBS(Location Based Serviced: 위치기반 서비스) 기술의 혜택과 SNS 세대의 성장이 골목을 살린 숨은 공로자가 아닐지.
맛집, 이색 볼거리 등 개인이 경험한 모든 것을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에 올리는 일은 이제 하나의 일상생활로 자리잡았다. 유명 블로거 등 소위 인플루엔서라고 불리는 이들이 올린 게시물을 보고 자신도 따라하며 인증샷을 올리고 재공유한다. 특히 이러한 게시물에서 평가와 위치 정보는 빼놓을 수 없는 핵심이다.
트렌드에 민감한 밀레니얼 세대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고, 새롭게 업로드할 콘텐츠를 찾는다. 이들은 골목골목 숨은 공간들을 찾아 다니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위치 검색을 통해 원하는 장소 문 앞까지 데려다 주니 접근성이 좋지 않다고 해도 문제가 될 게 없다.

도시재생의
중심이 된 골목

한 개인이 불타버린 동네를 재건하기 위해 쓰레기를 주워다가 골목 곳곳에 붙인 게 예술작품이 되어버린 광주 양림동의 펭귄마을, 피난민의 생활 터전이 만든 고지대 주거지가 관광자원이 된 산복도로 아래 부산 초량 이바구길, 도심을 흐르는 하천을 중심에 두고 문화공간이 생기며 원도심의 부흥을 꿈꾸는 공주 제민천거리, 전통의 멋을 그대로 간직하며 새롭게 변화한 경주 황리단길, 성벽 안에 문화예술이 흐르는 수원 행궁동 등은 모두 골목 부흥이 만들어낸 도시재생 사례로 꼽힌다.
걸어 다니며 구경하기 좋고 매력적인 상업시설로 가득한 골목을 인위적으로 조성할 수 있지만,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골목은 이렇게 고유의 정체성과 진정성이 있는 곳이다. 상점만 나열되어 있는 골목들은 외면 받기 쉽다. 이태원 경리단길, 신사동 가로수길 등을 찾는 이가 줄어든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영향도 있지만, 골목이 핫해지면서 대기업 브랜드 상점들이 유입되어 골목이 가진 고유의 매력을 점차 잃어간 것도 문제다.
골목은 문화와 결합해 새로운 융합산업을 만들어낼 힘을 가지고 있다. 골목이 단지 상권으로서가 아니라 도시문화를 생산하는 토양으로 인식되는 것도 이런 이유다. 골목의 특성과 개성은 새로운 에너지와 결합해 전혀 다른 콘텐츠로 생성된다. 그리고 이러한 콘텐츠를 즐기기 위해 모이는 수요자들은 물질적 가치뿐만 아니라 윤리적 가치, 역사적 가치를 소비한다. 그러하기에 골목의 진화는 이제 도시 발전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키워드로 꼽힌다. 누가 골목을 하찮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