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가 빨라지는
/
병실은
따로 있다

HEALING
PLACE*

치유가 빨라지는
/
병실은
따로 있다

HEALING
PLACE*

좁은 엘리베이터는 낯선 사람과 함께 있을 때면 스트레스를 받게 하는 공간이다. 반대로 환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치유에 도움이 되는 병실이나 창의성을 높여주고 행복을 키워주는 공간, 일의 능률을 높여주는 생활공간도 있다. 머물고 있는 공간이 단순한 건축공간이 아닌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는 사례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Writer. 범상규(공간심리학자, 건국대학교 교수)

도시재개발의 사업성

우리가 사는 곳을 흔히 3차원의 세계라고 한다. 공간은 시간과 함께 3차원을 구성하는 요소이지만 현실에서는 단지 숨을 쉬고 두 발을 놓을 수 있는 ‘장소’를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이런 ‘공간(Space)’, 즉 집이나 학교, 병원, 사무실, 쇼핑센터를 떠올릴 때면 우리는 으레 미관상의 아름다움이나 생활의 편리함, 아니면 자산 가치의 유무를 먼저 떠올리곤 한다. 집을 살 때도 학군은 좋은지, 교통은 편리한지, 평수는 큰지와 같은 외형적 공간만을 주로 살핀다. 집이 단순한 장소 혹은 건축 공간만을 의미하는 건 아닐진대 말이다. 일찍이 미셀 푸코나 르네 데카르트처럼 유명 철학자들은 건축 혹은 이러한 환경이 우리 인간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을 간파했다. 미셀 푸코는 ‘건축가들의 자유를 향한 의도가 사람들의 실제적인 행위와 부합할 때, 건축은 긍정적인 효과를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 했으며, 르네 데카르트는 ‘두뇌가 환경으로부터 감각 정보를 받아 행동을 만들어낸다’고 통찰했다. 즉 집이나 병원 또는 학교와 같은 공간을 건축의 한 요소로써가 아닌 그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과 불가분의 관계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뿐인가? 철학자이자 소설가로 인기 많은 알랭 드 보통은 <행복의 건축>이라는 저서에서 ‘공간이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의 희망과 일치할 때 비로소 그 공간을 집이라 할 수 있다’라고 했다. 더 나아가

크든 작든 하나의 ‘공간’은
우리들의 행동에 많은 영향을 준다.

현대에 들어서는 공간 속의 ‘사람’이 갖고 있는 다양한 감정도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보여준다. 일례로 2006년 국제신경학회에서 유명 건축가이자 하버드대학 교수인 프랭크 게리는 ‘인간의 뇌가 모양, 색깔, 질감과 같은 건축 요소들에 대해서 왜, 그리고 어떻게 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반응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면 건축가들이 더 나은 건축과 공간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예나 지금이나 하나의 ‘공간’이 사람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 되었다.
공간은 외형적 혹은 물리적인 차원에서 단순하지 않을 뿐더러 공간이 담아내고 있는 의미 역시 다양하다. 예를 들어 물리적 공간은 개인과 만날 때 ‘개인적 공간’으로써 그 정의가 달라진다. 인류학자인 에드워드 홀은 ‘호랑이가 자신의 채취를 남겨두는 영토 개념’과 유사한 네 가지 개인적 공간을 제시하고 있다. 즉 자기방어본능이 작용하는 가장 근접한 친밀한 거리인 대략 45㎝ 이내에서부터 사적인 거리, 사회적 거리 그리고 공적 거리 순으로 확장된다. 특히 모르는 상대가 지극히 사적인 거리인 대략 1.2m 이내로 접근하면 사람들은 긴장하고 스트레스를 받게 되며, 반대로 연인이나 가족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이보다 멀어지면 오히려 관계가 멀어지는 것을 걱정하고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또 일상적인 사무적 관계가 이루어지는 사회적 거리는 30피트 즉, 3.6m 이내로 이보다 멀어질 땐 공적 거리가 된다. 공적 거리에 해당하는 공간은 비사교적이며 대중연설처럼 연대감이 없어져서 사적보다는 공식적인 관계가 나타나는 공간을 말한다.
이처럼 크든 작든 하나의 ‘공간’은 우리들의 행동에 많은 영향을 준다. 평소에 출근하는 엘리베이터 내에서 모르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를 생각해보자. 이 시간은 대체로 짧지만 이 공간에서는 자연스럽게 상대방을 의식하게 된다. 공간이라는 한정된 링 속에서 생존을 걱정하도록 진화된 본능이 현대인에게도 남아있다는 반증이다. 상대방에게 애써 무관심하게 보일 요량으로 스마트폰을 뚫어져라 쳐다보거나 반대로 우호적인 어떤 행동의 일환으로 한번 싱겁게 웃어준다. 이는 개인적 공간 속에 들어온 상대방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대처하는 방법인 것이다. 비단 엘리베이터에서뿐만 아니라 학교 교실에서, 마트에서, 사무실에서, 병동에서 공간은 인간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행복을 가져다주는
공간 설계는
비단 병원의 치유공간을 넘어
일상생활 속에서도
접목될 수 있다.

치유의 공간 : 신경건축학이 뜬다!

앞서 우리는 공간의 개념을 살피는 과정에서 공간은 단순히 비어 있는 공(空)간이 아니고 직·간접적으로 인간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물리적이고 심리적인 매개체라는 점을 살펴봤다. 또 시간적 관점 에서 공간은 과거에는 살면서 일하는 장소로 국한되었지만, 최근 에는 인간의 감정까지도 투영된 장소로 인식되고 있다.
이에 공간과 건축이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히 측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건축을 탐색하는 학문으로 신경과 학과 건축학이라는 학문 간의 통섭이 일어나고 있다. 바로 신경과 학과 건축학의 합성어인 ‘신경건축학(neuroarchitecture)’이다. 신경건축학의 태동은 1984년 환경심리학자인 로저 울리히 교수 가 ‘병실의 창으로 자연풍경이 내다보일 때 환자들은 더 빨리 회복 된다’는 다분히 심리적인 현상을 과학적인 측정을 통해 처음 입증 해 보인 것이 계기가 되었다. 울리히 교수는 비슷한 증상과 병적 예 후를 가진 환자라 해도 단순히 병실 벽만 쳐다보도록 설계된 병실 에서보다는 병실 창문을 통해 아름다운 노을, 푸른 잔디와 나무, 때 때로 파란 하늘을 보도록 배치된 병실에 있을 때 며칠에서 많게는 몇 주 더 빨리 퇴원한 사례를 통해 공간, 즉 건축 환경이 인간 행동 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입증하였다.
그 이후 단순히 건축가들은 공학적 혹은 경제적인 관점이 아닌 신 경건축학적 관점에서 병원을 짓는 데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Healing Place> 저자인 에스더 스턴버그 박사가 ‘기억력이 현 저히 떨어져 자기 방도 제대로 못 찾는 치매 환자들을 위한 요양 원의 경우 기숙사와 같은 복도식 구조가 매우 부적합하다’고 주장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많은 요양원이나 요양 병원이 정상적인 사람을 감안한 건축공간으로 지어지고 있는 것 이 실정이다. 정작 노인요양시설을 짓는 건축가들은 자신들이 설 계한 건축 공간에 특정한 증세를 앓고 있는 사람들이 살게 될지 그 들을 위한 공간은 어떠해야 하는지 이해가 부족한 것 같다. 반면 에 치매환자 병동에는 두뇌발달에 도움이 될 포커게임이나 오락 기보다는 운동기구를 설치하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된다고 한다. 무 엇보다도 이들 치매환자들은 자기 방은 물론 사용하던 물건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기억에 도움이 되도록 어린 시절 사 진이나 물건을 많이 비치할 수 있도록 구성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처럼 신경건축학은 공간의 어떤 요소가 구체적으로 인간 뇌의 어느 부분에 영향을 미치는지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을 지향한 다. 예를 들어 인간이 어떤 공간을 접할 때 행복을 느끼는 순간 분 비되는 세로토닌과 반대로 고통을 경감하기 위해 분비되는 엔도 르핀의 측정을 통해 뇌와 신경계가 행복하다고 반응하는 공간을 찾는 것이다.

신경건축학이 실제적으로 사용된 사례를 몇 가지 들어보자. 미국 서던캘리포니아주립대학 어빙 비더먼 교수에 따르면 아름다운 노 을, 숲, 경치와 같은 풍광을 볼 때 엔도르핀과 관련된 신경세포가 활성화된다고 한다. 즉 아름다운 풍광을 가진 공간 속에 있는 것만 으로도 많은 양의 모르핀을 우리 뇌에 투여해 주는 것과 같은 효과 가 있다. 분명 행복에 대한 과학적 근거만으로는 행복한 공간을 만 들 수는 없다. 그러나 건축가와 신경과학자의 협업을 통해 더 창의 적이고 행복한 공간을 꿈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을 것이 다. 대표적으로 유명 건축가이자 하버드대학 교수인 프랭크 게리 박사는 ‘인간의 뇌가 모양, 색깔, 질감과 같은 건축 요소들에 대해 서 왜, 그리고 어떻게 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반응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면 건축가들이 더 나은 건축과 공간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2006년 국제신경학회에서 주장하기도 했다.

행복을 가져다주는 공간 설계

행복을 가져다주는 공간 설계는 비단 병원의 치유공간을 넘어 일상 생활 속에서도 접목될 수 있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설거지를 하 면서도 거실의 가족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아일랜드 키친에서 큰 만족감을 느낀다고 한다. 아일랜드 키친에서는 애착 형성 호르 몬인 옥시토신의 분비가 늘어나기 때문이란다. 또 모서리가 둥근 경우 긴장감이 줄어들고 따뜻한 색깔의 인테리어를 사용할 경우 행 복감을 높여주는 세로토닌 분비가 늘어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단순한 색상일지라도 공간과 만나면 우리들의 사고와 행동에 영향 을 주기도 한다. 2009년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 라비 메타 연구팀 에 따르면, 파랑 조건의 실험자들이 빨강 조건의 실험자들보다 창 의적인 결과물을 두 배로 많이 생산했다. 파란색뿐만 아니라 햇볕 이 잘 드는 열린 공간 역시 창의성을 높일 수 있다고 한다.
면역학자인 조너스 솔크 박사는 소아마비 백신 개발에 진척이 없 어 스트레스를 받자 풍광이 뛰어난 이탈리아 아시시로 안식년을 떠 났다. 이곳에서 머무르는 동안 천장이 높은 수도원 성당에서 불현 듯 아이디어가 떠올라 문제를 해결하고 마침내 백신 개발에 성공 했다. 솔크 박사는 천장이 높은 장소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 다는 믿음을 가지고 미국으로 돌아와 샌디에이고 근처의 라호이아 에 솔크연구소를 건립하면서 보통 건물 천장(2.4m)보다 높은 3m 높이의 천장으로 지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천장을 가진 연구소 로 통하는 솔트연구소에서는 지금까지 5명의 노벨수상자를 배출 했다. 또 조앤 마이어스-레비 미국 미네소타대 교수는 실제로 천 장 높이가 인간의 창의력에 영향을 미치는지 실험을 통해 살펴보 았다. 천장 높이가 각각 2.4m, 2.7m, 3m인 세 건물에서 실험 참 가자들에게 창의적인 문제와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문제를 풀도록 한 결과, 천장 높이가 3m나 되는 방에서 문제를 가장 많이 풀었다. 반대로 2.4m 천장 높이의 방에서는 창의력보다는 집중력이 높은 효과를 보였다.
세계 최고 회사 중 하나인 구글의 사무공간은 단순한 사무공간이 아닌 자유로운 놀이의 공간으로 꾸민 이유도 공간의 중요성을 반 영한 결과다. 일이 아닌 일 자체를 즐기며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 들어주기에 가장 창의적인 결과물들이 나올 거라는 확신인 것이 다. 덴마크의 레고 사무실에는 미끄럼틀이 꾸며진 놀이공간이 있 을 정도로 놀이에 초점을 맞춰 설계되어 있다. 재미와 창의력, 혁 신을 기반으로 디자인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고 있다. 지금까 지는 건축을 단지 예술가의 감과 오랜 관행으로 지탱해 왔다면, 오 늘날 신경건축학은 향후 인간을 배려할 수 있는 소중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좁은 엘리베이터는 낯선 사람과 함께 있을 때면 스트레스를 받게 하는 공간이다. 반대로 환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치유에 도움이 되는 병실이나 창의성을 높여주고 행복을 키워주는 공간, 일의 능률을 높여주는 생활공간도 있다. 머물고 있는 공간이 단순한 건축공간이 아닌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는 사례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Writer. 범상규(공간심리학자, 건국대학교 교수)

도시재개발의 사업성

우리가 사는 곳을 흔히 3차원의 세계라고 한다. 공간은 시간과 함께 3차원을 구성하는 요소이지만 현실에서는 단지 숨을 쉬고 두 발을 놓을 수 있는 ‘장소’를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이런 ‘공간(Space)’, 즉 집이나 학교, 병원, 사무실, 쇼핑센터를 떠올릴 때면 우리는 으레 미관상의 아름다움이나 생활의 편리함, 아니면 자산 가치의 유무를 먼저 떠올리곤 한다. 집을 살 때도 학군은 좋은지, 교통은 편리한지, 평수는 큰지와 같은 외형적 공간만을 주로 살핀다. 집이 단순한 장소 혹은 건축 공간만을 의미하는 건 아닐진대 말이다. 일찍이 미셀 푸코나 르네 데카르트처럼 유명 철학자들은 건축 혹은 이러한 환경이 우리 인간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을 간파했다. 미셀 푸코는 ‘건축가들의 자유를 향한 의도가 사람들의 실제적인 행위와 부합할 때, 건축은 긍정적인 효과를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 했으며, 르네 데카르트는 ‘두뇌가 환경으로부터 감각 정보를 받아 행동을 만들어낸다’고 통찰했다. 즉 집이나 병원 또는 학교와 같은 공간을 건축의 한 요소로써가 아닌 그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과 불가분의 관계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뿐인가? 철학자이자 소설가로 인기 많은 알랭 드 보통은 <행복의 건축>이라는 저서에서 ‘공간이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의 희망과 일치할 때 비로소 그 공간을 집이라 할 수 있다’라고 했다. 더 나아가

크든 작든 하나의 ‘공간’은
우리들의 행동에 많은 영향을 준다.

현대에 들어서는 공간 속의 ‘사람’이 갖고 있는 다양한 감정도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보여준다. 일례로 2006년 국제신경학회에서 유명 건축가이자 하버드대학 교수인 프랭크 게리는 ‘인간의 뇌가 모양, 색깔, 질감과 같은 건축 요소들에 대해서 왜, 그리고 어떻게 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반응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면 건축가들이 더 나은 건축과 공간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예나 지금이나 하나의 ‘공간’이 사람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 되었다.
공간은 외형적 혹은 물리적인 차원에서 단순하지 않을 뿐더러 공간이 담아내고 있는 의미 역시 다양하다. 예를 들어 물리적 공간은 개인과 만날 때 ‘개인적 공간’으로써 그 정의가 달라진다. 인류학자인 에드워드 홀은 ‘호랑이가 자신의 채취를 남겨두는 영토 개념’과 유사한 네 가지 개인적 공간을 제시하고 있다. 즉 자기방어본능이 작용하는 가장 근접한 친밀한 거리인 대략 45㎝ 이내에서부터 사적인 거리, 사회적 거리 그리고 공적 거리 순으로 확장된다. 특히 모르는 상대가 지극히 사적인 거리인 대략 1.2m 이내로 접근하면 사람들은 긴장하고 스트레스를 받게 되며, 반대로 연인이나 가족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이보다 멀어지면 오히려 관계가 멀어지는 것을 걱정하고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또 일상적인 사무적 관계가 이루어지는 사회적 거리는 30피트 즉, 3.6m 이내로 이보다 멀어질 땐 공적 거리가 된다. 공적 거리에 해당하는 공간은 비사교적이며 대중연설처럼 연대감이 없어져서 사적보다는 공식적인 관계가 나타나는 공간을 말한다.
이처럼 크든 작든 하나의 ‘공간’은 우리들의 행동에 많은 영향을 준다. 평소에 출근하는 엘리베이터 내에서 모르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를 생각해보자. 이 시간은 대체로 짧지만 이 공간에서는 자연스럽게 상대방을 의식하게 된다. 공간이라는 한정된 링 속에서 생존을 걱정하도록 진화된 본능이 현대인에게도 남아있다는 반증이다. 상대방에게 애써 무관심하게 보일 요량으로 스마트폰을 뚫어져라 쳐다보거나 반대로 우호적인 어떤 행동의 일환으로 한번 싱겁게 웃어준다. 이는 개인적 공간 속에 들어온 상대방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대처하는 방법인 것이다. 비단 엘리베이터에서뿐만 아니라 학교 교실에서, 마트에서, 사무실에서, 병동에서 공간은 인간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행복을 가져다주는
공간 설계는
비단 병원의 치유공간을 넘어
일상생활 속에서도
접목될 수 있다.

치유의 공간 : 신경건축학이 뜬다!

앞서 우리는 공간의 개념을 살피는 과정에서 공간은 단순히 비어 있는 공(空)간이 아니고 직·간접적으로 인간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물리적이고 심리적인 매개체라는 점을 살펴봤다. 또 시간적 관점 에서 공간은 과거에는 살면서 일하는 장소로 국한되었지만, 최근 에는 인간의 감정까지도 투영된 장소로 인식되고 있다.
이에 공간과 건축이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히 측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건축을 탐색하는 학문으로 신경과 학과 건축학이라는 학문 간의 통섭이 일어나고 있다. 바로 신경과 학과 건축학의 합성어인 ‘신경건축학(neuroarchitecture)’이다. 신경건축학의 태동은 1984년 환경심리학자인 로저 울리히 교수 가 ‘병실의 창으로 자연풍경이 내다보일 때 환자들은 더 빨리 회복 된다’는 다분히 심리적인 현상을 과학적인 측정을 통해 처음 입증 해 보인 것이 계기가 되었다. 울리히 교수는 비슷한 증상과 병적 예 후를 가진 환자라 해도 단순히 병실 벽만 쳐다보도록 설계된 병실 에서보다는 병실 창문을 통해 아름다운 노을, 푸른 잔디와 나무, 때 때로 파란 하늘을 보도록 배치된 병실에 있을 때 며칠에서 많게는 몇 주 더 빨리 퇴원한 사례를 통해 공간, 즉 건축 환경이 인간 행동 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입증하였다.
그 이후 단순히 건축가들은 공학적 혹은 경제적인 관점이 아닌 신 경건축학적 관점에서 병원을 짓는 데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저자인 에스더 스턴버그 박사가 ‘기억력이 현 저히 떨어져 자기 방도 제대로 못 찾는 치매 환자들을 위한 요양 원의 경우 기숙사와 같은 복도식 구조가 매우 부적합하다’고 주장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많은 요양원이나 요양 병원이 정상적인 사람을 감안한 건축공간으로 지어지고 있는 것 이 실정이다. 정작 노인요양시설을 짓는 건축가들은 자신들이 설 계한 건축 공간에 특정한 증세를 앓고 있는 사람들이 살게 될지 그 들을 위한 공간은 어떠해야 하는지 이해가 부족한 것 같다. 반면 에 치매환자 병동에는 두뇌발달에 도움이 될 포커게임이나 오락 기보다는 운동기구를 설치하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된다고 한다. 무 엇보다도 이들 치매환자들은 자기 방은 물론 사용하던 물건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기억에 도움이 되도록 어린 시절 사 진이나 물건을 많이 비치할 수 있도록 구성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처럼 신경건축학은 공간의 어떤 요소가 구체적으로 인간 뇌의 어느 부분에 영향을 미치는지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을 지향한 다. 예를 들어 인간이 어떤 공간을 접할 때 행복을 느끼는 순간 분 비되는 세로토닌과 반대로 고통을 경감하기 위해 분비되는 엔도 르핀의 측정을 통해 뇌와 신경계가 행복하다고 반응하는 공간을 찾는 것이다.

신경건축학이 실제적으로 사용된 사례를 몇 가지 들어보자. 미국 서던캘리포니아주립대학 어빙 비더먼 교수에 따르면 아름다운 노 을, 숲, 경치와 같은 풍광을 볼 때 엔도르핀과 관련된 신경세포가 활성화된다고 한다. 즉 아름다운 풍광을 가진 공간 속에 있는 것만 으로도 많은 양의 모르핀을 우리 뇌에 투여해 주는 것과 같은 효과 가 있다. 분명 행복에 대한 과학적 근거만으로는 행복한 공간을 만 들 수는 없다. 그러나 건축가와 신경과학자의 협업을 통해 더 창의 적이고 행복한 공간을 꿈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을 것이 다. 대표적으로 유명 건축가이자 하버드대학 교수인 프랭크 게리 박사는 ‘인간의 뇌가 모양, 색깔, 질감과 같은 건축 요소들에 대해 서 왜, 그리고 어떻게 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반응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면 건축가들이 더 나은 건축과 공간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2006년 국제신경학회에서 주장하기도 했다.

행복을 가져다주는 공간 설계

행복을 가져다주는 공간 설계는 비단 병원의 치유공간을 넘어 일상 생활 속에서도 접목될 수 있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설거지를 하 면서도 거실의 가족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아일랜드 키친에서 큰 만족감을 느낀다고 한다. 아일랜드 키친에서는 애착 형성 호르 몬인 옥시토신의 분비가 늘어나기 때문이란다. 또 모서리가 둥근 경우 긴장감이 줄어들고 따뜻한 색깔의 인테리어를 사용할 경우 행 복감을 높여주는 세로토닌 분비가 늘어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단순한 색상일지라도 공간과 만나면 우리들의 사고와 행동에 영향 을 주기도 한다. 2009년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 라비 메타 연구팀 에 따르면, 파랑 조건의 실험자들이 빨강 조건의 실험자들보다 창 의적인 결과물을 두 배로 많이 생산했다. 파란색뿐만 아니라 햇볕 이 잘 드는 열린 공간 역시 창의성을 높일 수 있다고 한다.
면역학자인 조너스 솔크 박사는 소아마비 백신 개발에 진척이 없 어 스트레스를 받자 풍광이 뛰어난 이탈리아 아시시로 안식년을 떠 났다. 이곳에서 머무르는 동안 천장이 높은 수도원 성당에서 불현 듯 아이디어가 떠올라 문제를 해결하고 마침내 백신 개발에 성공 했다. 솔크 박사는 천장이 높은 장소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 다는 믿음을 가지고 미국으로 돌아와 샌디에이고 근처의 라호이아 에 솔크연구소를 건립하면서 보통 건물 천장(2.4m)보다 높은 3m 높이의 천장으로 지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천장을 가진 연구소 로 통하는 솔트연구소에서는 지금까지 5명의 노벨수상자를 배출 했다. 또 조앤 마이어스-레비 미국 미네소타대 교수는 실제로 천 장 높이가 인간의 창의력에 영향을 미치는지 실험을 통해 살펴보 았다. 천장 높이가 각각 2.4m, 2.7m, 3m인 세 건물에서 실험 참 가자들에게 창의적인 문제와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문제를 풀도록 한 결과, 천장 높이가 3m나 되는 방에서 문제를 가장 많이 풀었다. 반대로 2.4m 천장 높이의 방에서는 창의력보다는 집중력이 높은 효과를 보였다.
세계 최고 회사 중 하나인 구글의 사무공간은 단순한 사무공간이 아닌 자유로운 놀이의 공간으로 꾸민 이유도 공간의 중요성을 반 영한 결과다. 일이 아닌 일 자체를 즐기며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 들어주기에 가장 창의적인 결과물들이 나올 거라는 확신인 것이 다. 덴마크의 레고 사무실에는 미끄럼틀이 꾸며진 놀이공간이 있 을 정도로 놀이에 초점을 맞춰 설계되어 있다. 재미와 창의력, 혁 신을 기반으로 디자인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고 있다. 지금까 지는 건축을 단지 예술가의 감과 오랜 관행으로 지탱해 왔다면, 오 늘날 신경건축학은 향후 인간을 배려할 수 있는 소중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