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되살리고 미래를 꿈꾸게 하는
디지털 공간정보의 모든 것

(주)테크캡슐

글.이경희 사진.남윤중

과거는 사라졌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러나 과거와 미래의 깊은 상관관계는 인류와 역사가 이미 숱한 사건으로 증명해왔다. 그래서 (주)테크캡슐의 사업은 재화를 얻는 이윤 활동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지난 시간의 공간정보를 첨단 기술로 남겨 미래 세대에 전해주는 막중한 사명을 실천 중이기 때문이다.

건축학도, 컴퓨터에 빠지다

(주)테크캡슐 황지은 대표는 회사 대표인 동시에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다. 이러한 황지은 대표의 정체성은 (주)테크캡슐을 설명하는 데 매우 중요한 단초가 된다. 제도판 위에 도면을 그리던 건축학을 기본 베이스로 미국 하버드대에서 디자인컴퓨팅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에 돌아와 교수이자 공간정보 벤처사업가로 일하기까지의 과정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는 컴퓨터를 좋아하는 건축학과 학생이었어요. 대학에 입학해 독학으로 캐드를 익혔고 그걸로 아르바이트도 했죠. 졸업하고 설계사무실에 취직을 했을 때는 캐드를 잘 쓰는 신기한 신입 직원으로 관심을 받았는데 그즈음이 OS(Operating System)가 막 바뀌던 시기였거든요. 도스(DOS)를 쓰던 우리 사무실도 윈도(Window)로 바꿔야 한다고 대표님께 틈만 나면 말씀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황지은 대표가 본격적으로 디지털 영역으로 관심을 확장한 것은 석사 때였다. 캐드를 만든, 개발자 출신을 지도 교수로 만나면서 IT 공부에 재미를 느낀 그는 세부 전공으로 디자인 컴퓨팅을 선택했고 미국 하버드대 디자인스쿨에서는 머신러닝을 적용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서울시립대 건축학과 교수로 임용되어 전통적인 건축 과목 외에 설계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가르치는 기초 수업을 했고, 방학이면 협동창작 스튜디오를 열어 학생들과 함께 3D 스캐너를 이용한 작업들을 진행했다.
그러던 와중 2017년 세운상가에서 열린 전시인 ‘생산도시’는 그에게 큰 전환점이 되었다. 전시에서 황지은 대표는 디지털 기술에 기반한 신제조업 현장으로서 새로운 세운상가를 만들어 선보이면서 화제를 모았고, 그간 쌓아온 이론과 실무 경험을 집대성해 벤처회사 (주)테크캡슐을 탄생시켰다.

기술을 넘어선 콘텐츠 기업, (주)테크캡슐

공간 기반 콘텐츠 미디어 창작그룹 (주)테크캡슐은 스스로를 “디지털 정보기술을 기반으로 건축과 도시 공간을 창의적인 관점으로 해석하고 계획할 수 있는 지식서비스를 제공하는 콘텐츠 회사”라고 소개한다. VR/AR, 디지털트윈, 디지털 패브리케이션(Digital Fabrication)1) 등 공간 기반 혁신 기술을 현장에 적용하고 도시 건축 기록화 및 디지털 재현, 뉴미디어 콘텐츠 기획·제작, 디지털 아카이브 개발 및 컨설팅 등이 이 모두 (주)테크캡슐 사업영역이다.
“창업은 했지만 막상 시작해 보니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저의 본캐(‘본래의 캐릭터’의 줄임말)와 부캐(평소의 모습이 아닌 다른 캐릭터)가 헷갈렸던 데다, 교육자로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소명 같은 게 있었거든요. 저희의 사업이 현재는B2G(Business to Government)가 주류를 이루는 이유도 공공에서 필요하지만 차마 못 하는 일들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새로운 가치를 부여받는 지역이라도 부동산 논리를 결코 이길 수는 없는 상황에서 기록의 의미는 점점 중요해졌다. 최근, 현장 연구자들은 사라지는 공간을 사진으로 찍고 그림으로 그리고 주인들을 인터뷰하면서 방대한 인문학적 기록들을 남겼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핵심은 이 모든 기록이 한곳에 모이지를 못하고 흩어져 있다는 점이었어요. 그래서 학교에 있던 스캐너 장비로 공간 스캔을 시작했습니다. 공간을 스캔하기 위해서는 그 공간에 들어가야 하는데, 그러려면 그곳에 있는 사람들과 관계가 좋아야 했죠. 기술적으로도 모든 것을 혼자 할 수는 없었기에 활동가 네트워크의 일원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니 디지털 정보들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공간과 사람, 기술 네트워크를 만들어나간 것이죠. 그렇게 모은 정보들이 하나의 플랫폼에 쌓이게 되었고요.”
청계천 일대 도심제조업 기록화사업, 스페이스살림: VR 건축물 투어 콘텐츠 제작, 국립현대미술관 올림픽 이펙트 VR전시+VR코멘터리 시리즈 기획 제작 등 (주)테크캡슐은 그간 수많은 작업들을 해왔다. 이 작업 과정에서 사용된 기술들은 공간 3D 스캔, 포토그래메트리(Photogrammetry)2) 스캐닝, 레이저 스캐닝, 스캔 조사 서베이 맵, 건조환경 건축 도면화, 캐드 도면 작업, 웨어러블 모바일 매핑 솔루션, 드론 매핑 3D 모델 자동 솔루션 등 일일이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다양했다. 황지은 대표는 작업 과정에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한데 모인 협업에 큰 만족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1) 디지털 패브리케이션(Digital Fabrication):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여 특이한 형상을 지닌 부재(部材)를 제작하는 방법

2) 포토그래메트리(Photogrammetry): 사진을 사용하여 텍스쳐를 포함한 3D모델을 직접 만드는 기술

“과거의 지도는 굉장히 비싼 정보였고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어요. 그만큼 접하기가 힘들었죠.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디지털 기술로 구현된 공간정보는 인간의 삶을 바꾸고 있다고 생각해요. 부동산 시장 논리에 매몰되는 공간 문화에서 탈피해, 뜻밖의 곳에서 내가 하고 싶은 비즈니스에 도전할 용기 나아가 자생할 힘을 주는 것이 바로 공간정보예요.”

현실에서부터 쌓아올리는 미래도시를 향한 꿈

“저희가 시행했던 많은 작업 중 반포주공 1단지 기록은 매우 특별했었습니다. 기관으로부터 의뢰를 받아서 한 일이 아니라 저희가 필요성을 느껴서 시작했던 일이라 출발 지점부터 달랐지요.”
황지은 대표는 반포주공 단지는 강남 개발의 시작,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상징성을 가진 곳으로 우리나라 도시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지역이라 반드시 기록물로 남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필요성에서 시작한 일인 만큼 반포주공 1단지 기록에는 굉장한 정성이 투입됐다. 먼저 최첨단 기술이다. 단지 전체, 단지 내 도로를 드론으로 상세 스캔했고 3D레이저 스캐너를 활용한 3D공간정보, 자율주행자동차 개발 시 활용되는 SLAM(Simultaneous Localization and Mapping, 동시 위치 추적 및 지도작성 기술) 등을 동원해 데이터를 만들고 VR 플랫폼 위에 병합시켰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데이터뿐만 아니라 그 데이터가 지칭하는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끄집어내기 위해 다큐멘터리까지 제작한 것이다. (주)테크캡슐팀은 당시 남아 있었던 관리사무소 직원들이 계절마다 어떤 일을 했는지 인터뷰하고 그 동선들을 3D 스캔한 영상으로 만들어 공간정보와 스토리텔링을 하나의 유기적 콘텐츠로 만들어냈다.
“과거의 지도는 굉장히 비싼 정보였고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어요. 그만큼 접하기가 힘들었죠.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디지털 기술로 구현된 공간정보는 인간의 삶을 바꾸고 있다고 생각해요. 부동산 시장 논리에 매몰되는 공간 문화에서 탈피해, 뜻밖의 곳에서 내가 하고 싶은 비즈니스에 도전할 용기 나아가 자생할 힘을 주는 것이 바로 공간정보예요.”
이렇게 (주)테크캡슐은 미래와 현실 사이의 중간 지대에 서서 현실에서부터 쌓아 올리는 미래도시를 향해 가고 있다. 그에게 디지털 기술과 공간 서사를 기본으로 한 공간정보 콘텐츠의 진화는 황지은 대표에게 ‘사명’임에 틀림없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