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지명의 의미와
우리말 해저지명

글.성효현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

기술 발전으로 인해 해양 데이터에 대한 접근이 개선되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먼저, 지구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육상에서 해양으로 근본적으로 바뀌었으며 이로 인해
해저지형 영역과 해저지명이 중요한 관심사로 대두됐다.
본 글에서는 ‘해양지명은 육상지명과 어떻게 다른가?
그리고 이들은 어떻게 결정되는가?’부터 ‘우리말 해저 지명을 등재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마지막으로 해양지명 명명 및 활용에서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없는가?
에 대해 서술해 보려고 한다.

해양지명은 육상지명과 어떻게 다를까?

해양지명은 바다나 해저지형에 부여한 언어기호로서 지명을 통해 그 지형의 위치와 특성을 파악할 수 있다. 육상지명과는 달리 해양지명은 영해뿐 아니라 영해 밖 수역에도 명명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명명한 우리말 해양지명이 영해 밖 공해에서도 통용되면 우리나라 해양 문화의 확산과 함께 해양 권익을 창출하기 위한 기틀을 마련하는 셈이 된다.
해양지명은 해상지명(해수면 위)과 해저지명(해수면 아래)을 동시에 포함한다. 해양지명 중 해상지명은 구체적으로 해양, 해협, 만(灣), 포(浦), 수로 등의 이름으로 정의한다. 반면에 해저지명은 수심 측량 기술 발달로 해저의 숨겨진 모습들이 밝혀지며 새롭게 발견된 해저지형에 고유한 이름을 부여한 것이다. 이러한 해저지명은 초(礁), 퇴(堆), 해저협곡, 해저분지, 해산, 해구(海溝) 등의 이름으로 명명한다.
해양지명을 표준화하여 국내 고시하거나 IHO(International Hydrographic Organization, 국제수로기구)와 같은 국제기구에 등재시키기 위해서는 해양지명의 구성요소를 이해해야 한다. 해양지명은 고유지명1)과 속성지명2) 으로 구성되며 해양지명을 명명할 때는 고유지명 표준화원칙과 속성지명 표준화 원칙을 각각 따라야 한다.
우리나라는 1961년 중앙지명위원회를 통해 처음 고시된 이래 새로운 해상 및 해저지명 발굴을 위한 지속적인 조사와 지명 관리가 이루어져 왔다. 특히 1987년 IHO의 기술결의, ‘지명의 국제표준화’를 계기로 육상지명과는 별개의 해양지명위원회가 2002년 7월에 발족하였다.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 전 해역에 대한 현지조사를 통해 새로운 해양지명의 발굴과 잘못 사용하고 있는 해양지명의 오류 수정 등 해양지명의 표준화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1) 고유지명: 해양지명의 전부 요소로서 해양지명을 고유한 뜻으로 명명하는 것으로 ‘장보고해산’에서 ‘장보고’에 해당한다.

2) 속성지명: 해양지명의 후부 요소로서 해상 및 해저지형의 종류를 구분하여 짓는 이름으로 ‘장보고해산’에서 ‘해산’에 해당한다.

그림1. 프랑스 해도(1893)에 나타난 외래지명으로부터 ‘돋힌여(2006)’로 지명 변천 과정

그림2. 해저지명의 국제 등재 절차

해저지명의 신청은 주로 각국의 지명 담당기관(예를 들어 국립해양조사원(한국),
해상보안청 해안정보부(일본))이 제안서를 제출하여 발의한다.

해양지명은 어떻게 결정될까?

1800년대부터 일제강점기 시대까지, 우리나라 해역에서 고유지명은 우리나라를 측량하기 위해 온 강대국들이 임의로 붙이는 외래지명이 많았다. 이런 지명들은 지역 주민들이 부르는 이름과는 당연히 달랐기에 해양조사를 거쳐 지역의 주민이 부르는 지명으로 표준화해 고시되었다. 예를 들어 1892년 일본선박 ‘출운환’이 폭풍에 좌초된 수중 암초에 붙여진 이름 출운초는 2016년에 인접지역의 명칭을 따서 ‘완도초’로 명명하여 고시하였다. 1893년 프랑스 해도에 나타난 경남 진해 부근의 간출암(干出巖)3)인 ‘Récif du Chenal’은 1959년 ‘챤넬초’로 한국해도에 표시하다가 2006년 지역주민이 부르는 ‘돋힌여’로 표준화하여 고시하였다(그림 1).
이러한 해양지명 제정을 위해서는 지형 및 현지 조사와 함께 역사적 유래 등에 대한 문헌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해양지명의 기본 정보는 국가관할해역에서 해양지명 조사를 통해 수집되는데, 해양지명조사 결과 해양지명을 제정 또는 변경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해양조사와 해양정보활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해양수산발전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해양지명을 제정 또는 변경하고 그 결과를 국민이 활용할 수 있도록 고시한다.
해양수산발전위원회에서 의결한 해저지명의 대부분(50% 이상) 혹은 그 전부가 유엔해양법협약(UNCLOS)에 따라 연안국이 설정하는 12해리 영해 외측에 위치하는 경우에는 IHO와 IOC4) 산하 GEBCO5) SCUFN6)에 「해양지명 국제등재 제안서」를 제출할 수 있다. 제안된 해저지명은 SCUFN의 심의·의결을 통해 국제 등재된다. 국제 등재된 지명은 GEBCO 해저지명 목록집에 포함되어 전 세계해도 제작 기관이나 각국의 지명 관련 기관에서 사용하도록 권고한다. 다만 영해 내 해저지명이라도 전 세계가인식해야 할 정도로 중요한 해저지명은 예외로 국제 등재가 가능하다. 따라서 우리말 해저지명이 국제 등재된다는 것은 우리말 해저지명이 표준화된 지명으로 해도 제작이나 교육 및 미디어 등에서 세계적으로 사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해저지명의 국제 등재 절차는 [그림2]와 같다.

그림3. 국제등재된 우리말 해저지명의 분포

우리나라는 2007년에 처음으로 동해상에서 영해 외측에 있는 10개의 해저지명에 대해 IHO-IOC 산하 GEBCO 해저지명소위원회(SCUFN)에 「해양지명 국제등재제안서」를 제출하였고 해저지명소위원회(SCUFN)의 심의·의결을 통해 국제등재 되었다.
2007년 이후 매년 제안서를 해저지명소위원회에 제출하여 현재 우리말 해저지명은 황해와 제주 부근 해역에 7개, 동해에 20개, 태평양에 20개, 남극해에 14개로 총 61개가 국제 등재되었다(그림 3). 동해에서는 해산, 해저대지, 퇴(Bank), 해저융기부, 해저분지, 해곡, 해저절벽, 해저수로, 초, 해저협곡, 해저구릉, 해저계곡 등 매우 다양한 해저지형에 우리말 해저지명을 부여하였다. 태평양에서는 해저놀과 기요(Guyot)7), 해산에 우리말 해저지명을 부여하였고 남극 해역에서는 주로 해저구릉과 해산 및 해저놀에 우리말 해저지명을 명명하였다.
황해와 제주도 부근해역에서는 초, 퇴, 해저계곡, 사퇴, 해저분지, 해저절벽에 우리말 해저지명을 부여하였다. 국제 등재한 우리말 해양지명은 우리나라 영해 바깥에서 표준화된 공식 지명으로 사용하게 되어 우리나라 해양권익과 해양문화 인식 확대에 기여하고 있다(그림 4).

3) 간출암(干出巖): 저조(low water) 시에만 노출되는 바위

4) IOC: 정부간해양학위원회 (Intergovernmental Oceanographic Commission)

5) GEBCO: 대양수심도운영위원회 (General Bathymetric Chart of the Oceans)

6) SCUFN: 해저지명소위원회 (Sub-Committee on Undersea Feature Names)

7) 기요(Guyot): 해저로부터 높게 솟아 있고 정상부가 평평한 해산으로, ‘평정해산’이라고도 부른다.

그림4. 국제 등재된 우리말 해저지명의 사례(서태평양 해역)

우리말 해저지명을 등재하는 것이 왜 중요할까?

K-pop과 같이 세계 공해상에서도 Korea 열풍 또는 한류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 해양지명은 인간과 해양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는 연결 고리일 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실과 지역적 특징에 대한 오랜 기록이기도 하다. 지명의 유래와 변천 과정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역사에 대한 식견과 이해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그 지명이 어떤 민족과 언어에서 유래되었는지, 또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과는 어떤 관련이 있는지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명명한 해양지명이 전 세계에서 통용된다면 우리나라 해양 문화를 세계적으로 확산시키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해양지명은 해양권익을 창출하기 위한 기본 틀을 마련하는 일이기도 하다. 해저지명을 등재시키기 위해서는 해양 탐사나 연구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탐사나 연구 과정에서는 해류 순환, 조수, 해일 예보, 어업자원, 퇴적물 운송, 환경 변화, 수중 지리적 위험, 케이블 및 파이프라인 라우팅, 광물 채취, 석유 및 가스 탐사 및 개발, 인프라 구축 및 유지 보수 등에 매우 중요하다고 평가되는 요소인 해저지형을 파악하게 된다. 파악하게 된다. 예를 들어 망간, 니켈, 구리, 코발트를 포함한 망간단괴는 심해저평원에 있는 경우가 많고 코발트, 니켈, 백금, 희유금속 등을 다량 함유한 고코발트 망간각은 해산 사면에 부존(賦存)하는 경우가 있다. 또한 해저열개 중심지에서는 금, 은, 구리, 아연을 함유하는 해저열수광상((海底熱水鑛床)이 발달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해저지형은 물속에 분포하고 있기 때문에 육상지명과는 달리 고도의 장비와 기술 및 자본을 이용하여 조사하고 해저지형의 특색을 파악한 후에만 해저지명을 부여할 수 있다. 공해상에 위치한 해저지형에 지명을 명명하는 국가 대부분이 해양 강국인 이유다. 해저자원 탐사 등을 할 수 있는 경제력과 기술력에 더해 외교적으로 해양을 선점할 수 있는 국가들인 셈이다. 따라서 육상지명과는 달리 해양은 자국 문화를 내포하는 지명을 공해에서도 부여할 수 있기 때문에 해양 권익의 잠재적 확대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해양지명 명명 및 활용을 위해 점검해야 할 것들

1. 표준화된 해양지명을 공공문서에서 현행화하여 사용하고 있는가?

표준화된 해양지명이 적절하게 잘 활용되고 있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특히 새롭게 고시한 해양지명이 해도뿐 아니라 행정지도나 온맵 등 공공문서에 현행화하여 사용하고 있는지를 검토해야 한다. 일본식 지명이 수정 고시되었는데도 이를 즉시 반영하지 못하는 공공문서가 있기 때문이다.

2. 해외 사이트에도 잘 반영되어 있는가?

구글어스에는 순천만이 Yoji Wan으로, US BGN과 NGA DB에서는 도나해가 Tonai Kai로 표기되어 있는 등 다수의 지명이 일본식 지명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는 동해와 일본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면서, 영해 밖 해역에서 인접 국가 간에 합의를 이끌어 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절실히 경험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작 우리나라 영해 내 해양지명이 일본식으로 표기되어 해외 사이트에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허용되어서는 안된다. 국립해양조사원에서 수정을 요청하고 있지만 국민들의 적극적인 관심도 반드시 필요하다.

3. 선제적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일제 강점기인 1929년에 출판된 IHO의 출판물 『Limits and Names for Oceans and Sea; S-23(1929) – 1stedition』에서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되면서 발생한 이슈가 정의롭고, 평화로우며, 포용적이고, 안전하며, 지속 가능한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였는가? 대답은 “No”다. 다시는 이러한 갈등을 초래하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해저지명을 명명할 때 성인적 의미를 지닌 속성지명은 해저 수심 자료에 의한 형태적 특성 뿐 아니라 지질 또는 지구물리학적 형성 과정에 대한 증거를 포함해야 한다. 따라서 해양학적 연구가 충분히 이루어지도록 정부의 지원과 전문가들의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해역에 대해서는 정치적이며 정책적 관여가 작용할 수 있다. IHO-IOC 산하 GEBCO 위원과 SCOPE(Sub-committee on Communication, Outreach, and Public Engagement, 홍보 및 소통 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역임하면서 국제위원들이 민감한 이슈가 발생할 때 어떻게 선제적 대응을 할 수 있는가를 경험하였다. 가끔은 국제위원 한 명이 중요한 결정을 하기에 버거울 때가 있다. 이럴 경우 정책자문단의 도움이 절실하다. 일본의 경우, 국제위원을 지원하는 정책자문단이 영향력 있는 의견을 제시하는 경우를 보아 왔다. 우리나라의 많은 해양 전문가들이 국제위원회에서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정책자문단 구성 등 적극적 지원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