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海籍)
제도 도입의
필요성

글.박성현 국립목포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오랫동안 우리나라는 국토공간에서 해양을 소극적으로 다루어 왔으며, 이로 인해 육지 중심적 삶과 사고방식이 고착화되어 가고 있다. 즉, 조선시대의 초장기적 해금(海禁)과 공도(空島)의 정책으로 인하여 바다를 두려움의 대상이자 금기의 영역으로 여겨온 것이다.
그러나 근래 들어 해양주권과 자원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더욱 높아지면서 인습화된 육지 중심의 공간인식을 극복하고 해양의 시대에 걸맞은 공간의 관리와 그에 따른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게 되었다.

바다를 끼고 있는 해양 선진국은 해양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하여 해적(海籍)제도를 구축해 빠르게
대처하고 있으나, 우리 정부는 아직 구체적인 움직임을
나타내지 않은 상태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해양 관련
관리대장은 공적인 장부로서 갖추어야 할 공시 기능에
대한 신뢰성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

무궁무진한 자원의 보고인 바다, 권리와 권익 수호가 우선이다

과거 해양은 소유권이 없는 공유자원으로 해양에 서식하는 생물을 식량자원으로 이용하거나 해안을 따라 운송로를 개척하거나 투기의 장소로 이용함에 있어 아무런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무방했다. 반면 최근에는 해양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확대되면서, 이해 갈등 및 분쟁이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더구나 종래의 해양 분쟁은 주로 사적 영역에서 발생했지만, 오늘날에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나 공공기관을 당사자로 하는 공적 영역의 분쟁으로 확대되는 실정이다. 또한 해양관할권을 둘러싼 주변국과의 분쟁과 지방자치단체 간의 어업 관련 해양경계 분쟁1)이 계속 발생하고 있으며, 해양행정경계에 대한 명시적 규정이 없어 특히 지방자치단체 간의 행정경계에 관한 분쟁 발생2)도 빈번하다. 바닷가를 포함한 해양공간은 무궁무진한 자원의 보고로 최근에는 등록·관리 대상으로서의 가치로 인식되어 육지·바닷가·해양활동에 따른 권익이 다양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각종 권리 및 권익은 공적장부에 등록될 때 비로소 형식을 갖추게 되어, 권리의 보호와 함께 권리에 따른 제한과 책임도 부여된다.3) 즉, 토지와 마찬가지로 해양도 각종 이해관계로 인한 분쟁의 소지가 상시 존재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국가가 해양에 대한 가치·이용·권리·권익의 한계 등의 정보를 공적장부에 등록하여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해양 관련 관리대장은 공적인 장부로서 갖추어야 할 공시 기능에 대한 신뢰성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다를 끼고 있는 해양 선진국은 해양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하여 해적(海籍)제도4)를 구축해 빠르게 대처하고 있으나, 우리 정부는 아직 구체적인 움직임을 나타내지 않은 상태다. 학술연구 차원에서는 2004년 조형진 외 연구에서 해양지적 도입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형성된 가운데, 2006년부터 지적학 연구자를 중심으로 2014년까지 해양지적의 등록 객체, 등록 방법, 해양지적정책의 운영 모형 등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었으니 최근에는 연구마저 미미한 실정이다.

1) 2013년 4월 새만금 관할권을 둘러싸고 전북 김제시, 부안군, 군산시 등 지방자치단체 사이에 벌어진 분쟁을 심리 중인 대법원이 사상 처음으로 현장 검증을 실시할 정도로 해양경계 획정 사안은 시의성을 다루고 있는 부분이다. 이러한 새만금 방조제 관할권은 2015년 10월 27일에 어렵사리 일단락된 바 있다. 또 한 사례로 전국 최대 규모의 김 양식장인 ‘마로해역’의 어업권을 높고 전남 진도군과 해남군 어민들이 40년간 벌여온 분쟁이 2022년 11월에 들어 대법원 판결로 끝내 마침표를 찍었다.

2) 전통적인 어업인 간 분쟁이 대부분을 이루었던 우리나라의 바다 공간도 최근 해상풍력-어업, 바닷모래 채취와 관련해 건설업-수산업 등 다른 산업 분야 간 분쟁의 장으로 바뀌고 있다.

3) 출처: 김행종·김영학, 2006, 해양지적의 개념정립에 관한 연구, 한국지적학회지 제22권 제2호, p.168.

4) 해양지적(海洋地籍, Marine Cadastre)이라는 표현도 쓰지만, 그 또한 육지 중심적 사고에서 태동한 개념이라 판단하여 바다에 대한 기록(정보)이라는 의미에서 본고에서는 해적(海籍)으로 표현한다.

지적과 해적의 근본적인 차이에 주목해 해적제도 도입해야

다행히 우리 정부는 2018년 4월 17일, 「해양공간계획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며 종합적인 해양 관리체계 정비를 해왔으며 이에 따라 각 광역지방자치단체 역시 해양공간계획을 수립해 발표하는 중이다.「해양공간계획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대한민국이 관할권을 행사하는 광역 해양공간까지 관리범위를 확대하고, 공유재로서의 해양자원에 대한 현재와 미래 수요를 고려한 해양공간 이용 및 관리 계획을 수립하며, 해양공간의 선점식 이용에서 공간의 특성과 생태계 가치를 반영한 선계획 후개발 체제로 관리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등 해양의 지속가능한 이용·개발 및 보전을 도모하고자 해양공간 통합관리의 근거가 된다. 다만 해양관리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이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시도라고 판단되지만,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과 같이 해양 용도를 구역으로 지정하여 관리한다는 측면에서 해양공간에서 파생되는 각종 권리와 권익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는데 이것이 해적제도를 도입해야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해적이란 무엇일까? 지적(Cadastre)은 국가가 자기 영토의 토지 현상을 공적으로 조사·측량하여 일정한 장부에 등록한 토지정보원으로5) 국토의 효율적 관리와 소유권 보호를 그 목적으로 한다.

그림. 지적과 해적의 공간적 등록범위

지적의 대상이 되지 않는 연안해역은 해적의 등록범위가 된다.

같은 맥락에서 해적은 해양공간을 공적 기관에 의하여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해양활동에서 파생되는 권리를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할 것이다. 해양 역시 국가의 주권이 미치는 영토의 일부이기 때문에 이를 효율적으로 이용·관리할 자료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지적과 맥락이 같다. 다만 지적과 해적의 근본적인 차이도 분명히 존재한다. 육상의 토지와 달리 해양은 전적으로 국가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고려해 해외 연구자들은 해적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해양 관할구역 내에 다양한 권리와 의무, 소유권에 관하여 부동산 권리와 권익에 대한 공간적 범위와 본질을 포함하는 해양정보시스템’ 또는 ‘공간적인 관리를 위하여 해양의 권리와 권익의 경계가 기록되고 인접 국가와의 경계 또는 근원적인 권리와 권익에 관하여 물리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시스템’.6) 또한 국내에서는 ‘해양을 대상으로 가치·이용·권리·권익의 한계를 공적기관에 의하여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해양지적관리시스템’7)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이상의 개념에 준하여 공공기관이 해양공간에 관련된 정보를 조사·측량하여 공적장부에 등록·관리하고 등록된 정보를 이해관계자에게 제공함으로써 효율적인 해양공간관리 및 해양공간에서 파생되는 각종 권리와 권익을 보호함을 그 목적으로 한다고 설명되기도 한다.
해적에 대한 정의를 정리하자면, 해적이란 해양의 가치·이용·권리·권익 등을 국가 또는 국가의 위임을 받은 기관이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인 셈이다.

5), 6), 7) 출처: 김영학 외, 2015, 지적학원론, 화수목.

제도로서 해적(海籍)의 필요

제도로서 해적은 왜 필요한가? 먼저, 정책적 필요성이다. 주변국들과의 해양경계 및 자원을 둘러싼 분쟁이 끊임없이 발생함에 따라 해양경계 획정이나 해양영토의 체계적인 관리 등을 포괄하는 정책 수립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둘째, 법률적 필요성이다. 지자체 및 부서별 해상경계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해양과 관련된 분쟁 및 갈등을 중재·조정하기 위한 법률 제정과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특히 해적은 연안지역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정부의 각종 행정행위에 있어서의 객관적인 준거가 될 수 있다. 셋째, 경제적 필요성이다. 해양활동에서 파생되는 권리의 한계를 명확히 조사·측정하여 등록함으로써 어업, 지하자원, 운송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한 국가의 재정수입을 증대할 수 있으며, 해양자원의 관리 및 지리적 이용의 지침이 될 수 있다. 넷째는 사회·문화적 필요성이다. 사회가 발달하고 개인 여가에 대한 인식이 변화함에 따라, 국민들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해양정보를 기반으로 한 대국민 서비스 지원이 필요하다. 마지막은 환경적 필요성으로, 경제성장과 환경보존의 조화를 추구하는 지속가능한 발전이 범 지구적으로 중요한 시점이며 국제사회에서 연안지역의 환경 변화에 대한 관심이 증대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2000년대 들어오면서 해양 국가인 캐나다, 호주, 네덜란드, 뉴질랜드, 미국 등은 이미 해적과 해양정보시스템에 대한 연구 활동과 제도적 정비를 진행했다. 중국 역시 해역관리를 위하여 해적 조사와 해적 측량을 진행하는 등 해적관리시스템을 운용 중이다. 이들 국가는 해양환경을 미래의 자원 보고로 삼고 그 중요성에 무게를 싣고 있으며, 경제환경과 사회개발에서의 법률상 공간 자료 창출에 기여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인습화된 공간인식으로 인해 뒤늦게 해양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기에 한참 나아갈 길이 멀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처럼 해적제도의 도입에 대한 국민적 홍보와 함께 학계와 현장에서 다양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출처: 강왕구(2020) KISTEP 수요포럼 ‘새로운 시대를 위한 비행, 드론과 안티드론’ 中 eVTOL 비행체 발전 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