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인권 침해 공간에서 재생의 땅으로,
지역과 함께 만개할 선미촌을 걷다

글.이경희 사진. 홍덕선

전주시에서는 물론,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성매매 집결지였던 선미촌이 마침내 문을 닫았다. 그리고 지금 그곳은 여성인권과 문화예술이 꽃피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중이다. 해와 달을 빼앗겼던 거리, 성 구매자들의 거리였던 선미촌에 과연 어떤 변화가 찾아왔을까? 다시 새로운 생명의 뿌리를 내리고 있는 선미촌을 직접 찾아가 보았다.

변화를 향한 발걸음을 내딛다

비가 흩뿌리는 날, 전주역에서 내려 택시를 잡아탔다. 선미촌으로 가달라고 말하자 택시기사가 백미러를 통해 흘깃 쳐다본다. “요즘은 선미촌이라는 말 안 씁니다”라는 단호한 한마디에 그간 선미촌이 어떤 이미지의 공간이었는지 적나라하게 느껴진다.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이고 도착한 선미촌은 묘한 매력을 풍기는 곳이었다. 낡은 집기가 굴러다니는 텅 빈 유리방, 소위 말하는 ‘힙’하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한 좁은 골목길, 공간 틈새에 핀 아름다운 들꽃들, 미술관, 카페, 작은 서점…. 우연히 보물을 발견한 듯 불쑥불쑥 반가움과 신기함이 교차하는 곳. 바로 이곳이 오늘의 목적지, 도시재생사업으로 새로운 생명을 얻은 선미촌이다.
전주시 서노송동에 위치한 선미촌은 일제강점기 이래 전국에서 손꼽히는 성매매 집결지였다. 불야성을 이루는 밤에는 은밀한 발걸음들이 이어졌고 쥐 죽은 듯 고요한 낮이면 간밤의 어둡고 음습한 기운이 골목골목으로 스며들었다. 무엇보다 선미촌에서 일어나는 모든 착취와 여성 인권 침해는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오랜 시간동안 묵인되어 왔다. 그런데 2000년 대 초반, 뜻밖의 곳으로부터 변화의 바람이 불어왔다. 군산 개복동 성매매 집결지에서 화재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감금상태에 있던 유흥업소 여성 14명이 화재로 목숨을 잃은 것이다. 이 참사는 성매매와 인권유린 나아가 성매매를 용인하고 존속시켜온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문제를 수면 위로 밀어올렸다.
“이 사건으로 인해 2002년도에 반(反) 성매매 운동을 하는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가 설립되었고 선미촌 지역을 중심으로 탈(脫) 성매매를 하려는 여성들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후2004년에 성매매방지법이 제정되었고 숱한 토론과 협의를 거듭하면서 선미촌을 폐쇄하기 위한 본격적인 방법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2014년 선미촌정비민관협의회 위원장을 맡아 지금껏 선미촌개발사업에 앞장서 온 조선희 소장(전주시사회혁신센터 성평등전주)의 설명이다.

전주시 서노송동에 위치한 선미촌은
일제강점기 이래 전국에서 손꼽히는
성매매 집결지였다.
불야성을 이루는 밤에는
은밀한 발걸음들이 이어졌고
쥐 죽은 듯 고요한 낮이면 간밤의
어둡고 음습한 기운이
골목골목으로 스며들었다.

선미촌 폐쇄를 위한 민간과 지방자치단체의 2인 3각 질주

그러나 선미촌 철거에는 커다란 장벽이 있었다. 바로 비용이었다. 전주시와 전주시의회가 다각도로 검토하고 민간개발업자에게도 의뢰했지만 천문학적인 비용 문제로 번번이 가로막히고 만 것이다. 하지만 물러서지 않고 민간에서 할 수 있는 일부터 찾아 나선 끝에 ‘선미촌정비민관협의회’를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선미촌정비민관협의회에는 행정, 경찰, 관계기관 및 단체, 교사, 정치인, 언론 관계자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참여하며 힘을 실었고, 이에 전주시는 2014년 선미촌의 단계 폐쇄 정책을 본격적으로 펼치기 시작했다. 성매매 업주들의 반응은 거셌다. 선미촌 성매매업소 업주들은 물론 전국업주협회까지 몰려와 집회를 했고 여성들의 알몸시위를 예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성착취와 인권 문제를 해결하고 선미촌을 인권과 성평등, 문화예술의 거리로 만들겠다는 민관의 의지는 흔들리지 않았다.
“성매매는 불법인 만큼 토지나 건물을 몰수당할 수 있다는 유사 판결사레를 모아 선미촌 토지주나 건물주들에게 공문을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건물주와 업주들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면서 업소들이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하더군요. 전주시에서는 도시재생사업비를 통해 선미촌 내 건물 매입에 나섰습니다. 그렇게 매입한 7개의 건물이 선미촌 변화를 위한 거점이 되었죠.”
조선희 소장은 여성인권과 성평등, 생태환경, 문화와 예술 등 각각 명확한 지향점을 가진 7개 건물이 선미촌 도시재생의 큰 힘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그 힘은 탈(脫) 성매매를 원하는 여성들의 자립을 지원하기 위한 조례 제정 및 시행, 순찰차 3대를 배치해 석 달간 매일 저녁부터 새벽까지 선미촌 일대를 돌아보게 하는 마중물이 되었다. 이렇듯 급진전하는 상황과 무언의 압박은 성을 사는 사람들과 성매매 업소 주인들을 움츠리게 했다. 그리고 2021년 6월, 마침내 선미촌의 마지막 성매매 업소가 문을 닫았다. 길고 긴 싸움이 끝난 것이다.

쓸모와 변화,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는 길

이후, 빈 유리방과 낡은 건물들이 창업 공간과 팝업스토어로 채워지면서 선미촌에는 새로운 기운이 스며들었다.
“초창기 목표가 업소 폐쇄였다면 현재의 목표는 새롭게 태어난 ‘선미촌’을 여성인권과 문화예술이 꽃피는 곳으로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도시재생’ 측면에서 또 다른 언어로 지역을 관리해 가는 과정도 필요하겠죠. 하지만 단 기간 내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여기까지 오는 데 10년이 걸렸으니, 앞으로 10년, 20년 꾸준히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봅니다.”
지난 3월, 선미촌정비민관협의회가 선미촌도시재생민관협의회로 새 출발하며 위원장을 맡은 박정원 위원장의 설명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작년에 이어 올해도 진행하고 있는 리빙랩 사업은 선미촌 진화의 중요한 교두보다. 새로운 콘텐츠로 공간을 채워 쓸모와 변화를 꾀하는 이 사업은 지난해 7개로 시작해 올해는 9개로 확장됐다. 청년, 여성, 경력보유여성 등에게 기회를 주는 동시에 선미촌 변화의 디딤돌이 될 이 공간들은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일등공신으로 제 몫을 다할 것이다.
“선미촌이 여성인권과 문화예술을 지향해온 만큼 리빙랩 사업 역시 같은 맥락에서 사업자를 선정해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민참여 등 거버넌스 기능들이 훼손되지 않도록 힘쓰는 것이죠. 특히 사업 응모자들의 주체성과 하고 싶은 일을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지켜야 할 최소한의 원칙만을 만들어서 자율성을 갖고 자연스럽게 확산되도록 하는 게 목표입니다.”
자본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도시가 정화되고 성장하길 바라고 있다는 박정원 위원장은 이를 위해 현재 3가지를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첫째 다시 유흥업소가 들어오지 않도록 업종 관리를 위한 지구단위계획 제도를 도입하는 것, 둘째 대규모 자본이 들어와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는 일이 없도록 공공 소유 자산을 확보하는 것, 셋째 민관이 문제해결을 위해 함께 고민하고 실천해온 거버넌스의 지속적인 힘 등이 바로 그것이다.
“저희는 선미촌이 여성인권의 상징적인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국내는 물론, 세계 각국에서 견학을 오는 이유도 이런 케이스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거든요. 저희들의 최종 목표는 선미촌이 글로벌 여성인권 테마파크로 자리매김하는 것 그리고 전주를 이야기할 때 꼭 찾고 싶은 주요 스팟이 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선미촌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이야기하며 조선희 대표와 박정원 위원장이 함께 웃었다. 그 웃음 사이로 선미촌을 ‘가장 성공적인 도시재생사업 모델’에만 머무르게 하지 않겠다는 소망과 각오가 내비쳤다. 오랜 기다림과 땀방울로 생명력을 되찾은 선미촌이 여성인권과 문화예술 공간으로 찬란히 만개할 것을 확신하는 이유다.

리빙랩 사업은 선미촌 진화의 중요한 교두보다.
청년, 여성, 경력보유여성 등에게 기회를 주는 동시에
선미촌 변화의 디딤돌이 될 9개의 리빙랩들은 사람들의 발길을
선미촌으로 이끄는 일등공신으로 제 몫을 다할 것이다.

Mini Interview

맛있는 음식과 유익한 공간으로
선미촌의 미래에 보탬이 되고 싶어요

최춘경 대표(카페 이응다움)

샌드위치와 음료를 판매하고 쿠킹클래스도 운영하는 카페 ‘이응다움’은 경력단절여성들의 모임인 ‘아중맘공동체’의 일원으로 2년째 리빙랩 사업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선미촌 근처에서 있는 회사를 다닌 적이 있어서 이곳을 늘 위험한 동시에 마음 아픈 공간으로 기억해왔어요. 그래서 리빙랩 사업자로 일하면서 어른들은 물론, 아이들까지도 마음껏 오가며 놀 수 있는 동네로 바뀌길 소망하고 있죠. 작년보다 올해 훨씬 많은 분들이 이응다움과 선미촌을 찾아주고 계셔서 정말 기뻐요. 앞으로도 더 맛있는 음식과 유익한 공간으로 선미촌의 미래에 보탬이 되겠습니다.

여성이 행복한 동네로의
변화를 적극 지지합니다.

박미영 대표(별별상점)

저희 ‘별별상점’은 핸드메이드 물품을 판매하고 제작 체험도 할 수 있는 제로웨이스트 공간입니다. 평소 저는 조물조물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데다 여성인권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기에, 올해 리빙랩 사업에 지원하게 됐어요. 제로웨이스트의 관점에서 저는 ‘물건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라고 믿고 있는데요. 별별상점을 통해 이를 실천하면서 환경과 생태는 물론 선미촌 도시재생사업에도 기여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여성들이 폭력을 당했던 공간을 여성들이 행복한 공간으로 바꾸는 일에 저와 별별상점의 활동이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