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대신해
지하·지상 누비는
로봇 전성시대

글.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아주 오랜 전부터 사람들은 힘들거나 귀찮은 일을 누군가 대신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뭐든지 척척해내는 로봇을 만들기 시작했다. 최근엔 각종 로봇이 도심 땅 밑을 돌아다니고 있다. 카메라, 음파 탐지기, 레이더 같은 각종 센서로 무장한 로봇들이 벽을 타고 오르거나 거미줄처럼 얽힌 하수도 곳곳을 돌아다니며 문제를 찾아내기까지 한다. 이렇게 지하와 지상을 탐사하는 로봇들은 어떤 종류들이 있고, 또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 그림1. 하수도 벽에 발을 대는 것만으로도 하수관이나 콘크리트의 상태를 바로 알아내는 로봇개, 애니말(ANYmal)
    출처: 스위스연방공대

  • 그림2. 물속에 잠긴 상태에서도 하수관을 자유자재로 달릴 수 있는 차량형 로봇, 레볼루션 내브(Revolution NAV)
    출처: 딥트레커

도심 속 지뢰, 싱크홀과 하수도 결함 막는 로봇들

도심지에 매설된 지 20년이 넘은 노후 상하수관은 지반 침하와 도로 함몰 현상(싱크홀)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지하수 유출이나 하수관에서 물이 새면서 인근 지반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또 하수도에 문제가 생길 경우 질병이 확산되거나 가정과 회사로 하수가 범람하고, 호수와 바다 수질이 악화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문제를 로봇을 활용해 해결하고 있다.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대의 마크로 후터 교수팀이 개발한 ‘애니말(ANYmal)’이라는 네 발 달린 로봇개도 그 중의 하나다. 애니말은 하수도 벽에 발을 대는 것만으로도 하수관이나 콘크리트의 상태를 바로 알아낸다. 로봇에 달린 4개의 카메라와 발바닥에 촉각 센서가 장착된 덕분이다. 카메라로 포착한 주변 환경의 시각 정보를 발에 닿는 촉감과 결합하여 지하 공간을 3차원(3D) 영상으로 재구성해 지하의 균열을 찾아낸다. 뿐만 아니다. 하수관 내 파손된 위치와 크기 등의 정확한 값과 실제 파손된 부분 등의 영상을 자동 분석해 ‘위험도’ 보고서까지 작성한다. 이 같은 기술로 지하에 토사가 쓸려나가며 발생하는 싱크홀 피해를 미리 파악해 사고를 방지하는 것이 가능하다. 가파른 계단과 자갈길, 눈밭, 미끄러운 풀밭과 나무뿌리 등 어떠한 험난한 길도 빠르게 돌파해 나가는 게 특징이다.
영국의 원격 조종 차량 회사인 딥트레커(Deep Trekker)는 물속에 잠긴 상태에서도 하수관을 자유자재로 달릴 수 있는 차량형 로봇인 레볼루션 내브(Revolution NAV)를 등장시켰다. 카메라가 장착된 바퀴 달린 로봇은 이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하수도의 박테리아, 부식성 황화수소 등을 견뎌내야 하는 극한 조건 때문에 문제 지점을 발견하는 수준에 그쳐왔다. 반면 딥트레커의 차량 로봇은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문제점을 정밀하게 알아내고, 그 부분을 수리까지 해내는 능력을 갖췄다.
하수도 수색에는 드론도 이용된다. 미국의 드론 스타트업 플라이어빌리티(Flyability)가 개발한 충돌 방지 드론 ‘엘리오스(Elios) 2’가 그것이다. 둥그런 보호구를 끼운 형태여서 벽면 등에 충돌해도 금방 다시 튕겨져 나와 균형을 잡은 뒤 계속 비행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전면에 설치된 카메라 등 자체 시스템을 이용,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해 하수도 내부를 초고화질 동영상으로 전송한다. 서기 960년대에 건설된 중국 송나라 시대의 하수도까지 탐색해 지도를 완성시킬 정도로 성능이 뛰어나다. 엘리오스2는 현재 유럽, 아시아, 북미 지역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

그림3. 둥그런 보호구를 끼운 형태로 벽면 등에 충돌해도 금방 다시 튕겨져 나와 균형을 잡은 뒤 계속 비행할 수 있는 하수도 수색 드론, 엘리오스2
출처: 플라이어빌리티

땅속 자원 탐색하는 두더지 로봇 ‘몰봇’

지구촌 땅속에는 수많은 지하자원이 매장되어 있다. 지구만이 아니라 달과 화성 같은 우주 땅에도 희토류 자원들이 묻혀 있다. 이를 채굴하려면 굴착 작업을 거쳐야 한다. 기존 굴착 작업은 시추기와 파이프라인, 펌프 등의 각종 중장비를 조합해 작업이 진행된다. 이 방법은 복잡할 뿐 아니라 시추 작업에 사용되는 유체가 환경오염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제 ‘몰봇(Mole-bot)’ 로봇 하나면 끝이다. 두더지의 우수한 굴착 능력과 구조를 모방한 몰봇은 기존의 거대한 드릴링 장비 사용과 이로 인한 복잡한 공정, 환경오염 문제 해결은 물론 숨겨진 지하자원을 거뜬하게 탐사한다. 몰봇은 지난 6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전자공학부 명현 교수팀이 개발했다. 기존 에너지원인 석유, 석탄을 대체해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사용될 탄층 메탄가스(Coalbed Methane)나 전자기기에 이용되는 희토류가 매설된 지역의 탐사, 더 나아가 우주 행성의 표본 채취 작업에 활용될 예정이다.
몰봇은 크게 드릴링부, 잔해 제거부, 360도 방향 전환이 가능한 허리부, 그리고 이동 및 고정부로 구성된다. 크기는 지름 25㎝, 길이 84㎝이며, 무게는 26㎏이다. 지하에서 로봇의 위치를 측정할 수 있는 자기장 센서가 포함된 관성항법 센서와 알고리즘도 장착되어 있다. 지하 깊숙한 환경은 주변이 암석과 흙으로 이뤄져 있어 전파가 거의 터지지 않기 때문에 통신이 불가능하고, 내부도 협소하고 어두워 비전 센서나 레이저 센서를 사용하기 어렵다. 몰봇은 관성항법 센서로 지구 자기장 데이터의 변화를 측정해 로봇 위치를 인식할 수 있어서 지하 공간에서의 자율 주행이 가능하다. 몰봇의 지하자원 탐사가 기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 대신 ‘자율 터널 탐사’ 로봇이 동굴·원전 탐사

지난 6월에는 한국의 국방과학연구소(ADD)와 미국의 지상군 차량체계연구소(GVSC)가 공동으로 지하 동굴 등을 수색·정찰하는 첨단 로봇 하나를 더 추가시켰다. ATE(Automated Test Equipment)라고 불리는 ‘자율 터널 탐사’ 로봇이다. 이 로봇은 기능과 임무에 따라 형상을 바꿀 수 있는 모듈화된 시스템, 인공지능 기반의 인식·판단·탐사 소프트웨어에 힘입어 탄생됐다.
자율 터널 탐사는 미지의 지하시설 또는 재난지역 등과 같은 위험한 공간에 투입되어 정찰 임무를 수행하는 기술이다. 병사를 대신해 지하시설 작전, 도심 전투 등에 활용된다. 핵이나 생화학 작용제 탐지 센서로 대량 살상무기의 조재 유무를 감지해 위험을 보고하는 작업도 가능하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신호 수신이 불가능한 동굴, 지하시설에서도 사전 지형 정보 없이 로봇 스스로 주행하고 탐사하면서 다수의 정보를 결합해 수㎝급 해상도의 3D 지도를 생성한다. 재난 현장이나 원전 시설 등에도 투입돼 붕괴된 건물 내의 사람과 물체를 탐지하기도 한다. ‘자율 터널 탐사’ 로봇은 휴대폰이나 태블릿에서 원격 조종이 가능하기 때문에 운용자 한 명이 로봇 여러 대를 동시에 운용할 수 있다.

뱀, 두더지, 개 등 다양한 형태를 갖춘 로봇들이 우리 삶 곳곳에서 사람을대신하고 있다.
도심 속 싱크홀 발생 예측, 지하자원이나 동굴 탐사, 지진이나 쓰나미 현장 확인 및 구조
그리고 폭발물 처리까지 투입되는 현장도 다양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들 로봇이 결국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자연스럽게 또 하나의 어젠다(Agenda)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바로 버추얼 휴먼이다.

지진·쓰나미·전장 현장에서 활약하는 뱀 로봇들

땅속에서 활동하는 로봇에게 최대 과제는 로봇 움직임에서 발생하는 마찰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 캘리포니아대 산타바바라와 조지아공대 연구팀은 뱀 로봇을 만들었다. 가볍고 부드러운 소재를 이용해 유연하게 구부리거나 비틀 수 있도록 구현한 로봇이다. 활용 공간은 땅속으로, 뱀의 가장자리 움직임으로 지하를 뚫는다. 가스 배관 등 좁고 사람이 직접 내부를 관찰하기 힘든 곳에서는 뱀 모양 로봇이 효과적이다. 고고학 연구 도구로서의 활용은 물론 지뢰가 있는 전장이나 벽, 장애물 아래로 잠입하는 군사적 활약도 기대되고 있다. 드릴 같은 걸 장착한다면 화성 같은 곳에서 굴을 파는 연구에 나설 수도 있다.
일본 도호쿠대 타도코로 사토시 교수팀은 액티브스코프카메라(Active Scope Camera, 이하 스코프)라는 뱀 로봇을 제작해 후쿠시마 원전 폭발 현장에 활용했다. 총 길이 8m의 스코프는 사람이 직접 수색하기 어려운 지역의 잔해더미 속을 파헤쳐서 숨겨진 생존자를 찾는다. 몸 전체에 촘촘히 깔린 섬모가 미세한 진동을 일으켜 초속 82㎝의 고속으로 이동하며 폭발 현장을 고해상도의 광 카메라로 촬영, 전송한다. 2007년 미국 잭슨빌 벨칸 플라자 공원 주차장 붕괴 때에도 자갈더미를 헤치고 7m 지하로 들어가 피해 현장을 촬영한 바 있다.
뱀 로봇은 일반적으로 몸 둘레에 작은 바퀴를 달거나 관절 부위마다 모터를 달아 움직이게 된다. 사인 곡선을 그리며 앞으로 나아가거나 옆으로 구르는 동작, 도랑과 터널을 오갈 때의 움직임 등 뱀의 모든 동작을 그대로 따라 했기 때문에 수십 개의 관절과 모터가 동작 구현에 쓰인다. 물 위에서나 땅 위에서도 두루 쓸 수 있는 수륙양용 뱀 로봇(ACM-R5)도 있다.
이스라엘 방위군이 2009년 개발한 뱀 로봇 ‘스파이카메라’는 적군의 동태를 염탐한다. 뱀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에 고성능 카메라가 붙어 있어 움직임 포착에 뛰어난 성능을 발휘한다. 총 길이 60㎝의 이 로봇은 뱀처럼 기어서 좁은 통로나 숲길에서 자유자재로 이동하고, 몸의 절반을 코브라처럼 꼿꼿하게 세우기도 한다. 스파이카메라는 정찰용 목적으로의 이용뿐 아니라 폭탄을 탑재해 적의 기지에서 폭파시키는 데도 활용될 수 있다.

폭발물·불발탄 처리 로봇 '센토’

위험 물체를 원격으로 탐지·확인·식별·처리할 수 있는 ‘무인 지상 차량(UGV, Unmanned Ground Vehicle)’ 로봇도 있다. 미국 공군이 급조폭발물, 불발탄을 해제하는 데 사용하고 있는 ‘센토(Centaur)’이다. 무게가 약 160파운드나 되는 이 로봇은 첨단 전자광학·적외선(EO/IR) 카메라 스위트와 6피트 이상까지 도달하는 조종 팔이 있고, 계단 오르기 기능이 갖춰져 있다. 또 모듈형 탑재체는 CBRNE(화학·생물학·방사능·핵 및 고성능 폭발물) 탐지 등의 임무에 활용이 가능하다. 원격 조종으로 먼 거리에서 위험을 감지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전투 지대의 합동 서비스 작전이 증대되는 시대에 모든 부대의 군 폭발물 처리팀이 센토와 같은 공통의 장비를 사용하면 더 표준화된 전략과 기법을 지원할 수 있다. 또 앞으로 다년간 이를 지속하고 훈련하는 데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센토의 가장 큰 목표는 많은 전투병을 위험한 곳으로부터 지키는 것이다. 앞길에 피할 수 없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면 바로 지금 로봇을 투입해 적절히 대응하자. 그것이 지름길이다.

그림6. 위험 물체를 원격으로 탐지·확인·식별·처리할 수 있는 무인 지상 차량 로봇, 센토(Centaur)
출처: 플리어시스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