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공간의 큐브 속

문화재 발굴과 복원을 위한
공간정보

글.강동석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장

모든 문화재는 위치 정보를 가진다. 때문에 공간정보는 문화재를 보존·관리하는 CRM(CULTURAL RESOURCE MANAGEMENT) 목적뿐만 아니라, 고고학적 조사와 연구에 매우 유용한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또한 고대 도시의 모습을 복원할 수 있는 콘텐츠 제공자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그 쓰임새를 들여다보고, 앞으로의 기대를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매장문화재 유존지역은 발굴할 수 없다

문화재, 특히 고고유적(考古遺蹟)을 대표하는 매장문화재는 역사적·학술적 가치를 지닌 보호, 보존, 관리의 대상이다. 법에서는 이러한 매장문화재 유존지역(매장문화재가 존재하는 것으로 인정된 지역)이 개발사업으로 인해 훼손되지 않도록 국가와 지자체에게 보호의 의무를 부여하고 있으며, 누구든지 법에서 정하지 않은 발굴을 할 수 없게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대략 10만 개소의 매장문화재가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땅 위에서 볼 수 있는 고인돌, 삼국시대 고분들, 땅속에 묻힌 선사시대 집자리, 그리고 땅에 흩어져 있는 토기 조각들, 이 모두가 매장문화재에 해당된다. 사실상 사람들이 생활하고 접근할 수 있는 모든 곳에 매장문화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집을 짓고, 택지를 조성하고, 도로를 만든다. 이 과정에서 매장문화재는 훼손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처럼 보존과 개발이 공존하는 현실에서 법이 정한 보호의 의무는 어떻게 수행할 수 있을까?

모든 문화재는 공간정보를 가지고 있다

고고학자들은 고인돌을 보았을 때, ‘이것은 청동기시대에 만들어진 것이고, 하천에서 직선거리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매장문화재는 특정한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시간의 정보를 갖고 있으며, 또 한편으로 지리적 좌표로 표현되고 만들어진 장소로서 위치의 정보를 가지고 있다. 이처럼 매장문화재는 ‘시간과 공간의 큐브’에 존재하기 때문에, 지오데이터베이스로 구축 가능한 특성을 지닌다. 만약 모든 매장문화재에 대해 공간정보를 구축하여 서비스할 수 있다면, 건설공사 계획 수립 단계에 매장문화재를 피하거나 훼손을 최소화할 수있을 것이다. 또한 개발사업 부지 내에 매장문화재의 존재 가능성을 예상할 수 있기 때문에 유적 발견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 부담에 대한 대비책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관계법령 시행 이전에는 문화재 정보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공사를 하다가 사업이 중지되거나 지연되는 사례가 다수 있었다. 문화재청에서는 이러한 공간정보 구축의 효과성에 주목하여 2002년부터 전국 단위의 문화유적 분포조사를 실시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지오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였다. 2009년부터는 문화재공간정보활용체계(이하 HGIS) 구축 사업을 진행하여 ‘문화재공간정보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이제는 집을 짓거나 도로를 건설할 때, 땅 위나 밑에 어떠한 매장문화재가 있는지 누구나 미리 알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예측 가능한 공사 진행이 이루어졌으며, 많은 유적들을 보호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문화재공간정보에서는 1945년 해방 이후에 우리나라에서 실시된
거의 모든 발굴조사 내용을 공간정보로 관리하고 있다.
이 정보는 모두 폴리곤 형태로 구축되어정확하게 어디를 발굴하였는지 알 수 있고
시대와 유적의 종류, 출토유물, 조사기관과조사기간 등 매우 상세한 정보를 담고 있다.
이와 같은 공간정보를 이용하여 사실상불가능에 가까웠던
우리나라 전역의청동기시대 마을과 고인돌 분포도를작성할 수 있게 되었다.

경주 첨성대

땅 속의 유적지도를 만들다

‘발굴은 유적을 파괴하는 행위’라는 어느 고고학자의 말처럼, 한번 파헤쳐 진 유적은 본래의 모습을 유지할 수 없다. 특히 건설공사 현장에서 발굴된 유적은 거의 대부분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 자동차가 달리고 있는 도로 아래에 유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유적들은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이것은 공간정보라는 새로운 객체로 보존되고 있다.
HGIS에서는 1945년 해방 이후에 우리나라에서 실시된 거의 모든 발굴조사 내용을 공간정보로 관리하고 있다. 이는 매장문화재 조사구역도, 유적위치도, 유구배치도 등, 이른바 ‘발굴된 매장문화재 위치도면’이라는 도형정보와 조사 내용을 포함한 속성정보로 구축되고 있으며, 모두 170,000여 건에 달한다. 다시 말하면, 전국의 땅속에서 조사된 발굴 유적이 지도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정보는 모두 폴리곤 형태로 구축되어 정확하게 어디를 발굴하였는지 알 수 있게 한다. 시대와 유적의 종류, 출토유물, 조사기관과 조사기간 등 매우 상세한 정보도 담고 있다. 이와 같은 공간정보를 이용하여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던 우리나라 전역의 청동기시대 마을과 고인돌 분포도를 작성할 수 있게 되었고, 신라, 백제, 가야 고분의 분포 밀도, 유적 간 공간적 자기상관성 등 각종 공간통계분석이 가능하게 되었다.

신라의 수도, 경주 왕경(王京)을 그려보다

경주, 부여, 공주, 익산 등 고도(古都)는 신라와 백제의 옛 수도였기 때문에 발굴조사 과정에서 많은 건물지와 도로, 연못, 무덤들이 확인되고 있다. 이것들은 고고학적 용어로 ‘유구(Feature)’라고 하며, 고고학자들은 이러한 유구들의 배치도를 작성하여 기록·보존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들 유구는 과거 신라인, 백제인들이 생활하였던 도시를 구성하는 시설들이었다. 비록 작은 구역에서 확인되고 있는 고고학적 자료들이지만, 이것은 고대 도시의 기능 공간과 공간 구조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퍼즐 조각이라고 할 수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원 고고연구실에서는 2020년부터 이 퍼즐을 완성하기 위해 유구 배치와 관련한 공간데이터세트를 구성하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지능형GIS 플랫폼인 ‘고대 도시유적GIS’를 구축하고 있다. 이것은 신라 왕경과 백제 사비 도성의 전체 모습을 복원하는 소스가 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수도의 안과 밖에서 공간적으로 상호작용하고 있었던 도시 네트워크를 밝혀내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이다.

그림1. HGIS를 이용한 광주전남지방 고인돌군 분포도

그림2. 유적공간정보 데이터세트 활용 모델

문화재 공간정보가 만드는 새로운 미래를 꿈꾸다

문화재 공간정보가 국가 주도로 구축되기 시작한 지 20년이 지나고 있다. 15종이 넘는 다양한 주제도와 20만여 건의 공간데이터를 보유한 건장한 20살의 청년으로 성장하였다. 이제는 문화재 보존관리라는 일차적인 성장 목표를 뛰어넘어, 타 분야와 소통하면서 고유의 가치를 돋보이게 하고, 사회의 리더로서 올곧게 성장하는 미래를 설계할 시점이 되었다. 우리의 문화재 콘텐츠를 공간정보와 함께 새롭게 해석하고, 공유·공감하는 플랫폼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문화재청의 ‘한양도성 타임머신’, 경상북도에서 추진하는 ‘신라왕경 메타버스’ 등은 이러한 문화재 공간정보의 새로운 미래 모델로서 그 진가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

그림3. 고대도시 복원연구를 위한 공간정보 구축

그림4. 문화재 공간정보서비스 (http://gis-heritage.go.kr) 화면 예시

중요 문화재 문화콘텐츠 기록화 사업

우리나라 문화재와 문자 기록물은 나무로 만들거나 목재에 새긴 경우가 많아, 자연적 또는 인위적으로 멸실 및 훼손될 가능성이 높아 이를 잘 관리하고 보존하려면 실측 데이터가 꼭 필요하다. 이에 LX한국국토정보공사는 2019년부터 중요 문화재 문화콘텐츠 기록화 사업을 진행해왔다. 라이다 장비를 활용해 문자 기록물을 3D로 측량해 데이터를 취합한 후 포토샵, 오토캐드 편집 등을 통해 고해상도 이미지와 관리 도면으로 제작하는 방식이다. 대표적으로 전남 고흥군 능가사의 대웅전과 천왕문, 범종 등의 문화재에 등록된 목조건축물과 능가사 사적비에 대한 3D 스캔 작업을 통해 데이터를 제작했고, 전남 완도군의 충무사와 이광사 선생 현판에 대한 데이터도 기록해왔다.